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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Me Too, 성평등을 향한 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다

[미투 칼럼] "미투 운동, 이제 이 사회가 답을 내놓을 때"

송경숙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장)( jbchamsori@gmail.com) 2018.03.14 14:24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증언과 고발 이후 미투(#MeToo, 나는 고발한다) 운동은 연일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문화예술, 대학, 종교, 초·중고교, 국회, 정치... 그야말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며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매일 매일의 증언이 충격이고 상처다.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의 고통과 부서져버린 시간들이 아프다. 우리 사회 성폭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단단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크나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결국 피해자들의 2차, 3차 피해를 감수한 용기에 기대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작년부터 미국 헐리웃을 뒤흔들고 있는 캠페인이 영화 제작자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피해자들의 미투 캠페인이다. 미투 운동은 지금 전 세계 80여개국으로 확대되어 진행 중이다. 여성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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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에서도 전라북도 도의회 여성의원들의 남성의원들에 의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최근 지역의 명망 있는 연극 극단 대표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피해자에 의해 고발되었고 이후 대학 교수, 인권운동가에 의한 성폭력 등이 계속 미투 운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투 운동, 우리 사회 성별권력과 성폭력의 뿌리를 드러내다”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 모든 영역, 일상관계 안에 성희롱, 성추행 등 성적 폭력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보아야 한다. ‘권력형’ 성폭력이라 명명되며 소수 권력을 가진 남성 개인들이 권력을 남용한 그릇된 성적 행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성폭력은 ‘성별권력’의 구조적 문제이다. 성별권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고 억압한다. 성불평등한 시스템에서 권력과 자원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은 그 자원을 배분해 주거나 배제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조직 내 성폭력이 은폐되고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 온 이유는 그 자원의 연결망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묵인과 동조이기도 하다.
 
특히 진보진영의 조직 내 성폭력이 은폐되는 이유는 ‘조직보위론’과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보수세력으로부터 진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만 침묵하고 참으면 될 일 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피해를 드러내면 조직을 깨는 행위로 보수세력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비난받았다. 미투 운동은 ‘무엇이 진보인가’에 도전하고 있다. 진보는 여성들의 경험을 기준으로 재구성 되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로 여겨졌다.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성매매를 범죄로 명시하고 피해여성을 지원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연대한 여성인권 운동의 결과이다. 여성인권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저항과 투쟁의 산물이다.
 
성별권력 관계에서 여성은 ‘성적 존재’로만 여겨진다. 여성의 지위가 검사이든 교수이든 정치인이든 학생이든 성폭력 피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성들의 연대는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구성되고 작동된다. 성희롱과 성폭력, 성매매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여성혐오적 폭력이다. 여성의 몸을 가진 더욱 빈곤한 여성이 더욱 폭력적인 현실에 내몰리고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성별권력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과 성매매 구조에 내몰린 여성을 정숙하지 못한 여성으로 낙인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지”, “ 왜 그 곳에 있었어, 왜 거절하지 못했어”, “본인도 즐긴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피해 여성들이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성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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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성평등 사회로 이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미투 운동은 기울어진 운동장, 성불평등한 구조가 어떻게 여성들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성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게 하는지를 폭로하고 고발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뉴스에 연일 올라오는 여성 대상 폭력 및 살해사건 관련 기사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여성에게 안전하지 못한가를 실감하게 한다.

2년 전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이후 20, 30여성들의 페미니즘 물결이 커진 이유는 나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한국여성의전화의 통계에 의하면 2014년 한 해 동안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수는 최소 114명이라고 한다.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데이트 폭력과 몰카를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 피해도 증가하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남성들의 근본적인 인식 및 태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한 법 제도적 장치도 강화되어야 한다. 초·중고 제도교육 과정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 하자는 청와대 청원 서명이 20만명을 넘어섰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차별적 구조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 남성들의 인식, 문화, 태도, 행동의 문제이다. 여성폭력 가해자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성별 권력관계를 이용한 차별과 폭력행위는 ‘먼지’처럼 만연하다.
 
그에 비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은 빈약하고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교육은 형식적이고 일회적으로 진행된다. 사법부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매우 관대하다. 성폭력 범죄가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인권’의 실현은 인권 감수성을 요구한다. 성별, 인종, 성적지향, 장애, 나이, 외모, 건강.... 등의 차별구조를 인식하고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지향을 담은 감수성이다. 여성인권 감수성은 성불평등한 현실을 인식하고 성평등한 변화를 지향하는 감수성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의 위치와 시선을 가지고 차별 행동을 하거나 묵인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각하고 반성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이미 거대한 변화는 시작되었다. 수많은 피해 당사자의 증언과 증언들이 서로를 불러내어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강해지고 있다. 당사자 말하기는 고통을 넘어 치유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이다. 말할 수 없었던 존재에서 증언하고 발설하는 존재, 세상의 변화를 추동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가, 국가가 이 혁명적 흐름에 응답해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응답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
#metoo를 너머 국가는 응답하라.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달라진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성별권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그 맥락을 바로 보자.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초중고 제도교육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

 

참소리는 앞으로 지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미투 칼럼을 지속적으로 연재합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시민은 언제든 jbchamsori@gmail.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참소리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보다 많이 소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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