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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상파 위기 속에서 지역방송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차원(언론노조 전북협의회 의장, 전주MBC 노동조합 위원장)( jbchamsori@gmail.com) 2018.08.03 15:23

지상파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면 두가지 입장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사양산업 종사자로서 미래에 대한 불투명과 경쟁매체의 선전을 바라보며 속이 상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회적 자산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지상파 사업자의 공익적 위상을 감안해 사회적, 국가적 조치를 요구하는 입장이다. 물론 두가지 입장의 기저에는 해당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여야 하며, 그동안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꽤 솔직하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아진 게 사실이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안을 제출하면서 지방분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방분권은 아직 요원한 상태이기에 분권시대의 시작이라는 상상은 꽤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권의 한주체가 지역방송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역방송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확인하면서 필자는 적잖이 놀랐다. 개헌안에 지역 혹은 지역성이란 단어를 삽입해서 지역방송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에 이르는 것을 보면 논리적 비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지역방송의 문제를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것은 10여년 전 지상파의 호황기를 벗어나면서 시작됐다. 과거에는 네트워크 KEY사의 재원 과점에 대해 치열한 논쟁과 투쟁이 가능했고 실제로 재원 배분 방식이 점차 유연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호황기를 지나면서 재원 배분은 다시 경화됐다. 광고나 사업 매출이 과거보다 줄어들면서 이젠 KEY사들도 자기 몫 챙기기에 경쟁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본사와 지역사간 협상의 분위기가 최근들어 해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쯤되면 두가지 논리가 매우 강하게 충돌한다. 하나는 본사가 잘돼야 지역사도 잘되는 것이니 우선은 본사의 콘텐츠를 살리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불공정한 재원 배분으로 지역사는 더 이상 양보할 여력이 없으니 이제 재원배분 조정부터 하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는 각 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비유가 산소마스크이다. 지역사는 이미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고 지금 당장 재원배분 조정이 안되면 산소 마스크를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본사와 지역사간 논쟁을 할 때에는 생존권이라는 말이 오가기도 한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본사나 지역사나 입장이 동일하다. 문제는 투자에 쓰일 재원이 갈수록 줄어든다는데 있다. 지상파를 통한 광고매출이 급격하게 줄고 있는데다 그나마도 10년이상 퇴행의 시간을 겪었던 MBC의 사정은 SBS보다 더 안좋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KBS는 수신료라도 받으니 모든 방송사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실제로 내부에서는 기발하고 지역 시청자를 사로잡을 만한 프로그램 개발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지역방송 종사자들의 능력의 부족인지 기획안을 뒷받침할 만한 제작비 지원이 불가능해 번번이 사장되는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는 사이에도 지역방송에 대한 무관심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방송 종사자들에게는 이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콘텐츠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기반으로 지역방송의 역할을 맹렬히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지역 방송의 유의미성은 종사자들의 바람과 달리, 사회적 논의 대상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지상파 사업자들이 힘을 가졌던 것은 시청률과 해당 권역내 독점적 언론사로서의 지위가 바탕이 됐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와 미디어를 접하는 행태를 시민들이 선택하게 되면서 과거의 지위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지금은 미디어로서의 신뢰와 산업적 생존의 가능성을 여부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지난해 총파업을 승리하고 난 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거 적폐 이전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십여년간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뒤쳐진 새로운 역할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는데 매진해야 한다. 촘촘한 네트워크와 막대한 물적 토대를 가진 지역방송이 다른 매체에 비해 지역 밀착성이 떨어진다면 우리 스스로 존재 의의를 주장하기가 부끄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정말 시간이 없다. 이제껏 우리를 지배해온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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