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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주민 등에게도 차별 없는 기초생활 보장을

기본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자격 기준

권영실( icomn@icomn.net) 2019.04.30 09:17

결혼이주민 P씨는 왜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나

P씨는 결혼이주민으로 한국에 5년을 넘게 살았으나 자녀는 없었다. 가정폭력으로 한국인 배우자와 이혼한 이후 위암이 발견되었고, 치료를 위해 일을 할 수 없게되자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P씨는 외국 국적이기에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원칙적으로 한국에 살고있는 외국인을 수급권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하여 한국 국적의 자녀를 낳아 기르거나 한국 국적의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에만 수급 자격을 인정하는 특례조항을 두고 있다(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5조의2). 별도로 난민인정자의 경우 난민법에 의해 기초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으나(난민법 제32조), 외국인을 수급권자로 인정하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 기준도 거주지원칙 또는 공동체의 편입 정도가 아니라, 전통적인 성역할을 토대로 한국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마련되어 있다. 

 

유엔사회권위원회와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

이주민이나 난민 처우에 관한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지탄받아왔다. 이미 2017년 유엔사회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제4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외국인이 사회보장제도 및 공공서비스에서 제외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외국인도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등록하고 복지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도록 촉구하였다. 2018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대한민국의 제17, 18, 19차 통합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에서 여러 이주민 집단이 사회보장제도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거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일부에게만 적용되어 다수의 이주민이 적절한 기본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하면서,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를 검토하여 영토 내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국적과 무관하게 기본적인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2018. 12.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주 글로벌 컴팩트」에서도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하여, 특히 취약한 이주민이 기초적인 사회보장 서비스에 접근 가능하도록 정부가 노력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유엔 적정 주거 특별보고관의 권고

그리고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였던 유엔 적정 주거 특별보고관 역시 2019. 3. 한국정부에 대해 이주민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지적하며 차별 없는 지원과 사회 안전망을 보장할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외국인 거주자에게도 차별금지 및 평등의 원칙에 따라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하는 주거급여를 포함한 사회보장급여를 보장할 것과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임대주택 및 사회보장 프로그램 역시 이주민을 포함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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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활보장은 거주지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최저생활보장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므로 기본권 중에서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기본권이다. 이는 보편적인 “인권”에 해당하기에 그 자격을 “국민”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잠시 여행 삼아 머무는 외국인의 최저생활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거주지원칙에 따라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이상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은 자연스레 공동체 내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게 된다. 국내에 거주하는 수많은 이주민은 이미 경제 주체로서 역할을 담당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참고로, 현행법상 한국 국민인 경우에도 이러한 거주지원칙에 따라 외국에 최근 6개월간 통산하여 90일을 초과하여 체류하고 있는 사람은 수급권을 배제하고 있다(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2조 제2항 제2호). 

 

이주민에게도 차별 없는 기초생활의 보장을

유학, 국제결혼, 해외취업이 낯설지 않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지 여부가 단지 부모의 국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국적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삶이 공동체와 어우러져 오랜 기간 지내왔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닐까? 이제는 한국 사회에 어느 정도의 기반을 형성하였는지를 기준으로 “우리”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 기초생활을 보장받는 대상도 결혼이주민, 영주할 자격이 있는 자와 보장시설에 입소한 자,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 그리고 5년 이상 체류한 장기체류자 중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포함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안을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이주민주거권네트워크’에서 제안하였고, 법 개정을 위해 현재 윤소하 의원이 대표 발의를 준비 중이다. 이주민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최소한의 기본권은 보장받도록 새로운 자격 기준이 필요하다. 차별없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인권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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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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