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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연의 이야기] 내가 받고 싶은 선물

누군가 칭찬해준다면 엎어지지 않고 더 잘할 것도 같은데....

김수연( icomn@icomn.net) 2019.05.06 07:44

지금 이 순간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답하겠다.

 

첫 번째 소원은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마흔이 넘어가기 전까진 체력에 꽤 자신하던 나였다. 감기에 걸려도 이삼일만 가볍게 앓고 지나갈 정도였으니까. 마흔 중반인 지금은 행여 감기가 올까 체온 유지에 특별히 신경 쓴다. 5월이 시작된 지금도 밤에 덜덜 떨며 전기매트의 온도를 높인다.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엔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사는 삶이니 가능한 이야기다. 반나절 마라톤 회의를 해도 끄떡없던 몸이 중간중간 당분을 보충해줘야 버틴다. 체력이 떨어지니 정신의 에너지도 떨어진다. 예전엔 에너지 수치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알아서 자동보충하곤 했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 가서 차도 마시고 갓 개봉한 히어로무비를 보면서 나도 저런 글 써야지 하며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냈다. 요즘은 가장으로서 치열한 삶에 치여, 곧 갱년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나이듦에 치여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다. 더 이상 흥분과 감탄, 자극을 받지 못하는 마음 상태가 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하다가 지니를 불러본다. “지니! 끝내주는 에너지 음료 한 잔 부탁해~!!”

 

두 번째 소원은 경제적인 안정이다.

좀 더 정확히 콕 찝어 말하면 내 집 마련이랄까? 한부모 가정에 글 쓰는 프리랜서의 삶은 꽤나 고달프다. 뭔가 열심히 버는 것 같은데 버는 족족 나가기 바쁘다. 최소한의 기본을 누리고 사는 데에도 지금의 사회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집이 내 집이 아니니 매달 몇 십 만원의 월세가 나간다. 프리랜서 업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값비싼 스마트폰을 써야 하고 사람들도 종종 만나야 한다. 무한경쟁 사회 속에 살아가는 것이 때론 지치고 다 놓고 싶다가도 믿고 의지하는 가족을 생각하고 버틴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하고. “지니! 마당 딸린 큰집 다 필요 없고 청소 간편한 원룸 어때? 난 그 정도면 만족~!”

 

세 번째 소원은 정신의 안정이다.

금전이 따라오면 정신의 안정이 될 것도 같은데 그건 좀 다른 영역이다. 마음이 즐겁다가도 우울해지고 힘들어지는 이유는 정확한 걸 좋아하고 사소한 거짓말도 싫어하고 빠른 피드백을 좋아하는 내 성격 탓도 크다. 이런 성격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별로 좋지 않은 듯 하여 요즘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무언가를 버리기. 뇌를 꺼내 정신을 싹 다 씻어내릴 순 없으니 물질부터 하나씩 버리고 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오래된 옷, 쓰지 않는 그릇 등등. 잡다한 물건들을 버리다 보면 나 자신도 어느 순간 버려진다.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강한 열망. 누군가 칭찬해준다면 엎어지지 않고 더 잘할 것도 같은데, 엎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것 같은데. 그래, 이 시점에서 지니라도 불러보자. “지니!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그지? 칭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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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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