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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레몬법과 자동차

자동차의 구매에는 이상한 문화가 있어왔다

오길영( icomn@icomn.net) 2019.05.08 23:51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이다. 이 때가 되면 큰 맘 먹고 세차를 하러 가곤 한다. 가족들과 함께 다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즐거운 드라이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에게 자동차란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담고 행복을 운반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다. 지난해 그러했듯 화재가 난다거나, 또 언젠가 그러했듯 급발진이 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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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도 공산품이므로, 제작과정 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한 요소 때문에 하자나 결함이 생길 수 있다. 여기서 ‘하자’란 계약당시 약속했던 원래의 상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결함’은 하자 가운데 주로 안전과 관련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자동차의 결함을 시정하지 않으면 인명피해와 직결되므로 이는 냉장고가 결함으로 작동을 멈추는 것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자동차의 결함에 관한 시정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관여하게 된다. 즉 ‘리콜’이라고 하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결함을 발견하면 스스로 시정을 할 기회를 일차적으로 부여하고(자발적 리콜), 여의치 않으면 국가가 행정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시정을 명령하는 절차로 진행하게 된다(강제적 리콜).

 

한편 하자는 좀 다르다. 신차를 구매하여 인수받았는데, 도색 상태가 문제가 있다거나 내장재 어딘가에서 자꾸 이상한 마찰음이 난다는 것도 하자이다. 다시 말해 안전과 무관해도 하자가 인정된다. 물론 시동이 꺼지거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등의 결함도 역시 하자이긴 하다. 즉 하자는 결함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결함이 있는 경우에는 결함의 시정(리콜)을 요구할 수도, 하자의 치유(교환 또는 환불)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했는데 색깔이 화면으로 보던 것과 너무 다르면 반품을 요구할 수 있는 것과 똑같다. 자동차도 공산품인 이상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동차의 구매에 있어서만큼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문화가 있어왔다. 새차를 받고 등록을 한 이후에는 교환이나 환불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정확히 왜 그러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자동차등록증이 나오면 ‘낙장불입’이 된다. 이유를 되물으면, “수리는 가능하나, 교환이나 환불은 안됩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위험할 지경이라고 큰소리로 이의를 해봐도 앵무새마냥 동일한 답변만 돌아온다. 그래서 열을 제대로 받은 누군가는, 1억이 넘는 고가의 외제차를 회사의 매장 앞에서 골프채로 두들겨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뽑기’를 잘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기도 하다.

 

오렌지를 사왔더니 레몬이 끼어서 온 경우를 생각해보자. 상큼함 맛을 기대하며 큰 입으로 물었는데 레몬이었다면, 그 표정이 어떠할까?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강렬한 신맛에 다들 화들짝 놀래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레몬을 오렌지인줄 알고 ‘뽑기’를 잘못한 경우를 구제하는 법을 ‘레몬법’이라고 한다. 원래는 널리 공산품에 대한 품질보증을 위한 법제였는데, 미국의 각 주들이 레몬자동차에 특별히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요즘은 레몬법이라고 하면 당연히 레몬자동차를 생각해야 한다. 즉 하자있는 신차에 대해 교환 또는 환불을 강제하는 미국의 주법을 레몬법이라고 칭한다.

 

낙장불입의 문화가 팽배해 있던 우리에게도 금년 1월 1일자로 한국형 레몬법이 도입되었다. 물론 조건이 있다. 먼저 차를 구매하여 인도받은 후로부터 1년 또는 주행거리가 2만 킬로미터 이내이어야 한다. 즉 ‘새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레몬인 이유가 결함인 경우와 하자인 경우로 구분하여 그 세부조건이 다르다. 결함의 경우에는 그 수리를 2회 이상 했는데도 문제가 있는 경우이거나 1회 이상 수리했는데 수리누적기관이 총 30일을 초과한 경우이어야 한다. 그냥 하자인 경우에는, 수리횟수만 3회 이상으로 강화되고 다른 조건들은 결함과 동일하다. 까다롭긴 하나, 이제 억울하게 레몬을 삼켜야하는 이가 줄어들게 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은 입법인가?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한방’이 있었다. 자동차회사가 서면으로 된 계약서에다 레몬법을 수용하기로 하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즉 레몬법을 적용할지 말지는 ‘사또 마음대로’인 셈이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입법에서 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비자가 알아서 ‘각서’를 받아내라는 것과 다름없다.

 

법적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금 자동차 시장은 엉망이다. 레몬법을 적용하겠다고 명시적으로 의사를 밝힌 회사도 있고,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는 회사도 있다. 또한 적용은 하기로 했는데, 언제부터 적용할지는 말을 아끼는 회사도 많다. 이제는 ‘각서 서비스’가 신차를 구매할 때 추가해야 하는 새로운 ‘옵션’이 되는 모양이다. 마치 ‘선루프’를 선택하듯 말이다. 아마도 이런 특이한 조건이 ‘한국형’인가 보다. 다들 레몬법이라 부르지 않고 ‘한국형 레몬법’이라고들 하니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형에 적응을 하기 위해, 꼼꼼히 따져가며 구매를 해야 한다. ‘서면’인 계약서에 레몬법 내용을 포함시켜주는, ‘각서 서비스’가 가능한 브랜드인지를 각자가 알아서 체크해야만 한다. 그래야 레몬에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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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부교수, 정보통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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