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사람 살리는 인사

김수연( icomn@icomn.net) 2019.08.03 08:02

며칠 전 일이다. 혼자 사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얼마 전부터 눈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오랜 당뇨가 있어 이젠 합병증이 온 게 아닌가 시름에 잠긴 엄마를 두고 그냥 전화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 기다려. 금방 갈게.” “야야! 오지 마. 괜찮아. 안 와도 돼~ 뭘 또 오고 그래~” 여느 모녀들처럼 잠시 실랑이를 하고 20분을 택시 타고 엄마집으로 달렸다. 초인종을 누르니 오지 말라던 엄마는 큰딸을 반갑게 맞으신다. 가자마자 엄마의 눈을 살피고 엄마의 푸념을 듣고 함께 저녁까지 먹고 나니 엄마의 걱정이 좀 수그러드는 게 보인다. 의사도 아니고 뭣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 못 뵌 3주 동안의 이야기들이 엄마의 입에서 술술 쏟아진다.

noname01111.png

말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표정이 밝아지셨다. 엄마의 병이 반은 치유가 된 것이다.

 

엄마가 사는 아파트는 평수가 작아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다. 대체로 50대에서 70대까지의 시니어들이다. 엄마는 삼남매를 두셨지만 언젠가부터 혼자 사신다. 남편과 사별을 하고 막내가 장가를 가면서 빈 둥지가 되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삼남매들이 엄마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 이내에 모여 산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어느 날은 큰딸인 내가, 어느 날은 둘째인 여동생이, 또 어느 날은 막내인 남동생이 출동한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나는 가끔 부러운 말로 엄마를 위로한다. “엄만 좋겠어. 키울 땐 고생했지만 세 명이 번갈아 엄마를 보러오니 얼마나 좋아?” 엄마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말동무하고 돌아서면 불고기 재운 것, 오징어 볶은 것 등 반찬이며 생활 필수품들을 곧잘 챙겨주신다. 양손에 보따리 들고 나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 마음이 허전해진다. 언제까지고 저리 혼자 사실 수는 없는데...

 

나이를 가리지 않는 고독사 뉴스. 나라고 예외일까?

 

요즘 부쩍 고독사를 알리는 뉴스가 넘친다. 예전엔 독거노인, 빈민층의 안타까운 죽음들이 종종 알려졌다면 지금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혼자 사는 20, 30대도 어느 날 죽음이 들이닥치면 알릴 방법이 없다. 잘 때 방문을 두드리며 “잘 자.”, “굿나잇!”할 가족이 사라지고 있다. 아침에 눈 뜨고 부스스 일어나면 “잘 잤어?” 안부를 물어줄 식구가 없다. 밤새 안녕이 낮에도, 어느 때도 안녕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도 아이가 자라 언젠가 독립을 하면 1인 가구가 된다. 내 주변엔 벌써 1인 가구가 된 언니들도 많다. 그 언니들이 만나면 매일 하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우리 돈 벌면 언젠가 모여서 살자. 각자 살 공간은 따로 두고 바로 옆 건물, 바로 옆 동네에서 살면 좋겠다. 밥때가 되면 같이 먹고 수다 떨고 영화도 같이 보면 좋겠다. 언젠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며 거창한 꿈들을 꾼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생각한다. “아~ 돈 많이 벌어야겠다!!” 하고. “잘 잤어? 잘 일어났어?”라고 챙겨야 할 사람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큰 건물 하나 지어서 각자 방 하나씩 줘야 하나 생각도 한다. 그게 조금 더 발전하면 공동체고 마을이고 그런 형태가 될 것도 같다.

 

아무리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사람의 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우리가 예전에 늘 물어보고 살았던 말들. 밥 먹었어? 오늘은 어땠어? 몸 아픈 덴 없어? 요즘 뭐해? 등등... 그 말 몇 마디가 어려워서 소중한 사람들을 우리도 모르게 어이없이 떠나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독거 시대의 안부는 예전에 우리가 자주 했던 인사를 의무감을 갖고 더 나누어야 한다. 오늘은 주변에 혼자 사시는 분들에게 전화 한 통씩 돌려야겠다. 그 전화가 사람을 살리는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

김수연 : 작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