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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민에 의해 보장되는 이주아동의 권리

권영실( icomn@icomn.net) 2019.09.02 14:27

어린이집 등원을 희망해도 이주아동이란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 현실

 

한국에 살지만 한국 국적은 없는, 소위 이주아동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아동은 아동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차별없이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함에도, 이주아동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국가차원의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보육과 관련한 보육료 지원이나 양육수당, 아동수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집 등원을 희망해도 이주아동이란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 현실인데 국가는 모른 척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가 차원에서 외면하는 것과 달리,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이주아동의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 앞장선다는 점이다. 체류하는 이주민의 수가 많고 인구대비 거주 외국인의 비율이 높은 경기도의 경우 이주아동의 보육에 대한 지원을 일부나마 하고 있다. 아동을 보육하는 현장에서는 이주아동에 대한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경기연구원이나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그리고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다양한 연구 및 실태조사를 진행해왔고, 그 결과 이주아동의 보육과 관련해서도 몇 가지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되었다.

 

경기도는 2006년부터 외국인근로자 자녀 보육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저소득 외국인근로자 자녀를 보육하고 있는 어린이집에 교사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9년 기준 보육교사 76명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또한, 안산시의 경우 2018년 7월부터 전국 최초로 안산시 내 외국인으로 등록된 이주아동을 대상으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와, 유치원에 재원 중인 이주아동의 학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어린이집 인건비 지원 사업 내용을 들여다 보면, 외국인자녀 전담 어린이집 교사 인건비를 최대 3명까지만 지원하고 있고, 통합 어린이집은 이주아동이 3명 이상이기만 하면 그 수와 무관하게 교사 1명의 인건비만 지원하고 있어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많은 수의 아동을 받기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본 사업은 「경기도 보육조례」 제17조(비용의 보조)에 근거한 것으로 이주아동에 대한 보육료 지원의 근거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언제든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안산시 사업의 경우 각 「안산시 외국인주민 및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와 「안산시 교육발전지원조례」 에 근거하여 외국인 아동에 대한 보육료 지원을 자체 사업으로 지정하여 시행 중이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 등에 의하여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법적지위를 가지지 않은 이주아동은 그나마 지원에서 배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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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2019년 4월 10일 열린 <경기도 이주아동의 실태와 지원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기점으로 경기도이주아동지원조례 발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본 조례안은 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하여 경기도 내 이주아동의 기본적 인권 보호 및 차별 없는 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기본조례이다. 이는 경기도이주아동보육네트워크 차원에서 제안한 안으로 경기도의회 몇몇 의원들이 추진 의사를 밝혔다.

 

경기도이주아동보육네트워크는 경기권에서 이주아동 보육사업을 하는 4곳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네트워크로, 경기권 내 이주아동 보육을 위한 공동의제를 발굴하고 지방정부 차원의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주된 활동목표로 한다. 2018년 네트워크 내 법률팀에서는 단체들이 공유해준 사례들을 바탕으로 <경기도 이주아동 법률사례연구집>을 발간하였는데, 이주아동의 출생신고, 모성보호, 보육, 그 외 장애아동, 빈곤가정의 아동, 학대 받는 아동의 사례 등을 담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을 경기도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으로 현재 시행 중인 경기도 조례를 검토하여 각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이를 포괄하는 내용의 경기도이주아동지원조례안도 제시하였다. 현재 위 조례안을 발의하고자 노력 중이나 아직까지도 미정인 상태이다. 본 조례안 제정이 어려워질 경우, 네트워크에서는 경기도 조례 중 관련 조례의 개정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적을 기준으로 하는 국가와 달리, 지자체는 관할 구역 안에 주소를 주민을 기준으로 지원하기에 이주민 지원 가능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민과 비국민을 기준으로 하여 정책적 차별을 두는 한계를 지역사회에서는 충분히 극복할 여지가 있다. 국적의 유무를 기준으로 하여 주권을 국민에게 부여하는 국가와 달리,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자”인 “주민”을 구성요소로 하기 때문이다(지방자치법 제12조). 지방정부는 자치입법권을 발동하여 지역의 “주민”을 위해 국가의 법 제정 없이도 스스로 조례로 인권규범을 제정할 수 있다. 즉 「영유아보육법」 등 법률에 「아동권리협약」과 같은 국제규범과 보편적 인권에 부합하지 않은 문언상 또는 해석상 공백이 있는 경우, 지연되는 국가의 정책을 기다리기보다 지역 내 이주아동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선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례를 토대로 인권이 국적을 뛰어넘는 보편적 권리라는 당위적 명령을 지자체에서 더욱 실질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동이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웃과 지역사회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을 내에서 특정 아동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아동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경기도에서 이주아동을 보육할 책임의 근거를 명시적으로 마련하고 도비 및 시군비로 가능한 보육료 지원 사업을 정비, 확대하는 일은 이주아동지원조례의 제정 또는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가가 공동체 내 아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더는 묵과하지 않고,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지역 내 모든 아동을 보육할 책임을 다하여 변화를 이뤄나가는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온 마을이 나서서 모든 아동의 차별 없는 보육을 위해 노력하는 더 많은 지역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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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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