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똑똑병이 넘치는 사회

김수연( icomn@icomn.net) 2019.09.07 22:10

직업이 작가이고 글쓰기 강사라 그날의 뉴스, SNS 글, 유행하는 노래, 영화 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과한 인풋은 머리를 딱딱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소식과 그 소식을 뒤집는 소식, 또 그 소식을 바로 뒤집는 소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눈 딱 감고 싶을 때가 많다. 정신이 피곤할 때나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일부러 뉴스를 며칠 끊어보기도 한다. 며칠 안 보면 시류에 한참 뒤처질 것 같지만 희한하게도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잠깐 거리를 두고 현상을 보면 전체가 보이듯 뉴스도 며칠 거리를 두고 다시 보면 무엇이 맞는 건지 명확해진다. 읽기 지루하고 피곤한 긴 문장을 짧은 문장으로 요약정리 받는 느낌이랄까?

 

말 많은 사람은 피곤하다. 그렇다면 난 어떤 사람인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보면 똑똑한 사람들의 언어가 차고 넘친다. 감성글, 유머, 뉴스, 전문가의 팁이 초당 엄청난 양으로 쏟아진다. 보다가 눈이 침침해지면 유튜브로 들어간다. 눈 감고 귀로만 들어도 요즘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역시나 그곳에도 세상 똑똑한 사람들의 말들이 여기저기 떠다닌다. 똑똑병이 차고 넘치는 사회.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피곤한 사회. 쏟아내는 말들은 많아도 그 말들을, 그 생각들을 한데 모으는 사람은 없는 사회. 지금의 우리 사회다.

 

연예인이 이혼했다고 하면 그 과정에 대해 기가 막히게 편집해서 사생활을 낱낱이 까발린다. 요즘 잘 나가는 누가 실은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다는 것이 던져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캡처와 증언 등으로 새로운 글, 영상을 만들어 한 사람의 인생을 코너에 몰아넣는다. 사람들은 이에 우르르 몰려가 그 대상을 욕하고 처단하고 함부로 짓이긴다. 한 번 먹잇감이 되면 어지간한 맷집이 있는 사람 아니면 재기 불가다.

noname0111.png

 

 

기다림이 없는 사회.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사회.

 

똑똑병이 넘쳐 분노병으로 흐르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차분히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해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잊었다. 어릴 때 봤던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모든 걸 아는 척 하는 똘똘이 스머프와 모든 일에 투덜대는 투덜이 스머프가 나온다. 둘 다 상당한 비호감 캐릭터지만 만화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랑받았다. 우리는 귀여운 만화 캐릭터들이 아니다. 미간을 찡그리고 아는 척 하고 분노를 쏟아내는 어른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들의 끝 모습은 결국 외로워지는 일이다.

 

외롭고 우울해지면 우리는 또 다른 골방에 들어가 분노를 쏟아낼 수밖에 없다. 혼잣말이 늘고 분노의 언어가 늘어간다는 건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신호다. 인생이 어디 뜻대로 흘러가던가. 내가 원하는 툴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대로만 어디 사람들이 움직이던가. 자기주장이 강한 똑똑한 사람보다 상대의 의견도 수렴할 줄 아는 온화한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늘 당장 술자리, 모임이 있다면 그곳에서부터 온화한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똑똑한 말수를 줄이고 상대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어색했던 관계가 개선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

김수연 : 작가

60797293_2253799934837670_2784239831264264192_n.jpg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