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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권의 눈으로 본 ‘인성교육법’의 정치학

고영남( icomn@icomn.net) 2019.09.26 11:19

강요된 인성교육

 

2015년 1월 제정되어 6개월 뒤부터 시행되고 있는 ‘인성교육진흥법’(이하 “인성교육법”이라 한다) 제4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기 위하여 인성교육에 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하며 ‘학생의 발달 단계 및 단위 학교의 상황과 여건에 적합한 인성교육 진흥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특히 교육부장관은 인성교육진흥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 급별로 학교에 대한 인성교육 목표와 성취 기준을 정하며, 학교의 장은 위 인성교육의 목표 및 성취 기준과 교육대상의 연령 등을 고려하여 교원, 학생 및 학부모의 의견 수렴과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년 인성에 관한 교육계획을 수립하여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또한 학교의 장은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덕목을 중심으로 학생의 인성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여야 한다. 현재 인성교육은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2016-2020)’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인성교육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인성교육법을 우선 적용하여야 하는데, 인성교육법에 의하면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 특히 인성교육의 목표로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제시한다. 아울러 학교는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덕목을 중심으로 학생의 핵심 인성 역량을 함양하는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여야 한다며, 핵심 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하는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등이 통합된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요구된다고 한다.

한편 ‘인성교육’ 내지 인성교육법에 관한 다수의 문헌들은 학교에서의 도덕교육이 중요함을 전제하면서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문헌이나 견해에 의하면 인성은 그 개념 자체부터 규범화하기 어렵고 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할 수 없다며 인성교육법이 오히려 인성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현행 인성교육법은 인성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국가가 미리 확정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방법을 채택하기 때문에 국가의 중립성과 양립할 수 없다며 이를 개방형으로 바꾸면 적용가능하다는 절충적 견해 또는 현행 인성교육법은 시민화단계의 시민교육에 불과하여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교육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인성이 갖는 내면적 가치는 사실 ‘인권’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학생인권의 가치조차 학교에서 규범화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인성교육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의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성교육법의 제정에서부터 촉발된 ‘인성’의 정립과 인성교육, 그리고 그 프로그램인증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와 관련하여 인권 가운데 자유권의 여러 인권지표에 의거하여 인성교육과 인성교육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인성교육의 기획과 운영에서 학생인권의 가치가 옹호될 수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생각과 감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성교육법

 

인성은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설명하는 관념이므로 ‘생각의 자유’와 ‘감정의 자유’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 또는 사상의 자유’와 관련하여 ‘학생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학생은 의견 제시를 강요받지 아니한다.’ 및 ‘학교는 학생의 사상을 사전 또는 사후에 검열하지 아니한다.’는 지점까지 모색할 수 있다. 또한 ‘감정의 자유’와 관련하여 ‘학교는 학생이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를 존중한다.’는 평가지표도 생각할 수 있다.

 

인성교육법은 ‘인성교육’을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하며 그 성품을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의 가치 또는 덕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핵심 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을 요구한다. 이렇듯 인성교육법은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넓은 의미의 ‘인성’, 또는 교육의 대상인 ‘인성’으로 이해한다.

 

먼저, ‘인성’ 그 자체를 검토해보자. 도대체 인성을 이해하는 개념으로서 예(禮)와 효 등의 핵심 가치·덕목을 제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성을 ‘인간다운 성품’으로 이해하든 ‘인간으로서의 성질’로 이해하든 인간(人間)의 존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가치나 덕목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반면에 인성을 구체화하는 데에서도 어려움이 생긴다. 인성을 인격이나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치환하더라도 그 내면의 세계와 관련하여 구체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기 어렵다. 이처럼 인성의 가치나 덕목은 다양하지만 그 구체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개념은 추상적이고 일반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점이다. 따라서 비록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나열하여 인성의 핵심가치나 덕목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정당화근거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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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법에 따라 인성교육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인성교육지원센터의 홈페이지)

 

인성교육법의 정치학

 

더군다나 인성교육법이 제시한 핵심가치나 덕목들은 매우 정치적 성질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효, 정직 내지 협동 등의 개념은 일정한 정치조직 구성원들의 덕목이자 그 조직 자체의 원리에 해당하며,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에 따라 그 핵심가치나 덕목은 수시로 그 자리를 바꾸거나 그 수준을 달리할 뿐이다. 오히려 이 개념들은 개인들을 억압하거나 민주주의의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데 작동하기도 한다. ‘예의’를 차리지 않고 교문으로 등교하는 학생을 지도한다며 ‘인성’의 이름으로 그 학생에게 인간다운 성품을 훈시하거나 저항하는 학생을 체벌하는 경우 도대체 무엇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소통’의 미덕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다시 뒤집는 정치적 위압을 행사하거나 ‘협동’을 강조하며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이나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우 도대체 무엇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특히 인성교육법이나 그 조례 등은 인성의 핵심적 가치를 인간 그 자체보다는 타자와의 관계 또는 공동체 속에서의 관계를 전제로 이해한다. 인성교육법의 가치나 덕목은 결코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성교육법을 ‘학교에서의 인성교육법’으로 다시 고쳐 읽는다면, 인성교육법 등이 강조하는 인성은 학교에서의 집단적 질서에 순응하는 데 필요한 학생 개개인의 순종과 이에 기초한 집단적 이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성교육법이 제시하는 인성의 핵심적 가치나 덕목은 매우 상대적 개념이라는 데 두 번째 문제점이 놓여있다. 학교에서의 억압과 위계가 살아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하나의 사례로서 ‘존중과 배려’는 권력관계에 따른 복종과 자신의 고유한 권리의 포기로 이해된다. 물론 위계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당사자들 사이에서의 존중과 배려는 매우 긍정적인 가치나 덕목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존중과 배려’라는 독자적 개념만으로 인간존엄성의 가치를 충족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왜냐하면 인간 그 자체의 존엄성은 타인이나 집단이 아닌 넓디넓은 우주 속에서도 나 홀로의 존재자에서 비롯되며 이는 어떤 존재자와 비교할 수 없어야 한다. 이렇게 홀로 존재하는 인간 그 자체의 성질이 밝혀진 후, 다시 말해서 인권의 전통적 관념이 정립된 후 비로소 타자나 집단과의 긍정적 가치나 덕목이 다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학생은 자신의 고유한 사상과 생각, 그리고 양심을 스스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인성교육법이 제시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라는 핵심적 가치 또는 덕목은 학생이 지닌 다양한 ‘사상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몸(신체)의 자유와 집단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성교육법

 

‘몸(신체)의 자유’와 관련하여 ‘학생은 학습을 강요받지 아니한다.’, ‘학생은 인권의 내용을 강요받지 아니한다.’는 세부 지표, 그리고 ‘집단의 자유’와 관련하여 ‘학생은 모임이나 집단의 구성을 강요받지 아니 하며, 학교는 이를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세부 지표에 의하여 인성교육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성교육법은 인성의 개념에 대하여 그 자체로서 독자적 가치나 덕목의 의미를 지니는 데 두지 않고 별도의 실천역량을 요구하는데, 이는 내면의 가치를 부정하고 지식과 기술 등 외연을 갖춘 가치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인성을 구체화된 가치나 덕목으로 분화하려고 하거나 정치적이고 집단적 성질을 가진 데에서 이미 내포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인성의 교육을 ‘핵심역량의 강화를 도모하는 교육과정(안)’이라고 바꿀 수 있다면 아마 논쟁적으로나마 검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인성교육법이 제시하는 핵심적 가치나 덕목으로서의 인성을 ‘역량’으로 확대하고자 한다면 인성이 지닌 정치적·집단적·상대적 개념의 한계를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인성교육법이 제시한 인성의 관념이 정치적이고 집단적으로 매우 상대적일수록 그 인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역량’에 의하여 타인에게 또는 집단에게 정치적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런 실천 또는 실행은 집단적으로 평가되고 매우 상대적으로 수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문제의식은 <2015 개정교육과정>이 제시하는 핵심 역량, 즉 자기관리역량, 심미적·감성역량, 의사소통역량 및 공동체역량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자기관리하고 심미적 역량, 감성역량, 또는 의사소통역량을 키울 경우 이는 개인의 내면적 가치와는 관련이 없는 타인이나 집단과의 원활함을 위한 일종의 관계역량, 즉 ‘공동체역량’의 종속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자기관리역량은 일종의 학습능력을 의미하며 심리적·감성역량은 소위 인문예술의 능력, 그리고 의사소통역량은 언어능력을 의미하는데, 이런 핵심 역량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교사가 설정한 목표 영역으로 이해할 뿐이다. 결국, 인성교육법이 요구하는 핵심역량은 아직 개념과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지를 인성교육의 지지자들도 예단할 수 없다고 한다. 정창우도 ‘미래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비하여 핵심 인성역량을 선정하고 그것을 인성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시론(試論)의 성격’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있다.

 

인성을 ‘교육’하겠다는 발상

 

다음으로 결정적인 문제는 인성을 ‘교육’하겠다는 발상이다. 우선, 모든 국민은 ‘대한민국헌법’에 따라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되며 동시에 ‘학교교육은 법률’로 정한다. 즉,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한 교육받을 권리는 대체로 법률이 정한 학교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교육의 자주성 등 역시 법률에 따라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헌법의 태도에 의거하여 ‘교육기본법’에서도 교육을 유아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 및 고등교육 등으로 나누고 이를 위하여 학교를 둠으로써 학교를 통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도모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교육기본법은 ‘국민의 인격 도야’를 교육의 목적으로 삼을지언정 이를 학교교육의 대상으로 설정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人性)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듯이, 교육의 고유성과 그 지향 가치를 규정하기는 하여도 대한민국헌법과 교육기본법을 비롯하여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및 고등교육법 어느 곳에서도 ‘교육’ 그 자체의 대상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경우는 없다. 교육이 무엇인지 아니면 무엇을 교육할 것인지는 규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철학과 사상에 맡겨진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법은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한다. 예(禮)와 효(孝)의 역사나 정치경제적 의미를 교육하는 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성품을 예(禮)와 효(孝)로 채울 것을 학교에 명령한다. 또한 학생은 원래 ‘정직’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학생이 ‘정직’하지 않으면 ‘책임’을 진다는 일종의 ‘도덕법’이 엄연히 존재함을 공식적으로 알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 홀로 서있기도 힘든 학생에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타인이나 집단과 ‘소통’하고 그들과 ‘협동’하라고 교육한다.

 

인성교육법은 위헌

 

굳이 찾자면 교육의 대상, 즉 ‘교육받을 권리’의 내용은 ‘학습권’이다(교육기본법 제3조). 또한 이 ‘교육받을 권리’를 위하여 대한민국헌법과 법률은 교육의 기회균등, 자주성, 전문성, 그리고 중립성을 보장하도록 한다. 특히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기 때문에(교육기본법 제4조) 학생 개개인이 지닌 신념이나 종교에서의 신앙 등이 외면되거나, 그 신념 등을 대체하는 일방적인 교육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성교육법은 위헌이다.

 

(이 칼럼은 고영남이 연구책임을 맡은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정책의 정립과 실행방안 모색>(2018년) 증 84쪽부터 101쪽까지의 내용을 재구성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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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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