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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외국인은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도 차별이 아닌 걸까?

권영실( icomn@icomn.net) 2019.10.11 12:23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가 개정된 지 2달이 넘었다. 기존에는 가입대상이 아니었던 인도적 체류자를 포함하여 6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은 지역가입자로 당연가입 되도록 변경되었다. 여전히 체류자격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한국에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주민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 되도록 한 개정 취지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한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주민도 사회보장 체계 안에서 건강권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차례 보험료를 납부한 이주민들은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보험료와 세대구성에 있어, 그리고 보험료 체납시 받게 되는 불이익에 있어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을 토대로 보험료가 산정된다. 소득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것은 사회연대의 원리에 따른 사회보험의 당연한 원칙이다.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이상 이주민에게도 부담평등의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영주(F-5)와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을 제외한 외국인의 지역보험료 하한은 전년도 가입자의 평균보험료로 정해졌다. 소득과 재산에 따라 산정하되, 산정된 보험료가 전년도 건강보험가입자의 평균보험료보다 낮은 경우에는 평균보험료가 부과되는 것이다(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 제9항 단서, 보건복지부 고시 제2019-151호 제6조 제1항 별표2 제1호 단서). 그 액수는 2019년도 기준 월 113,050원에 이른다. 반면 내국인의 경우, 월별 보험료 하한액은 13,550원이고, 이조차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공공부조인 의료급여가 적용된다. 

 

세대구성에 있어서도 내국인의 경우 직계존비속 등의 가족도 동일 세대로 인정되지만,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개인을 하나의 세대로 보고,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을 동일 세대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다(보건복지부 고시 제2019-151호 별표2 제4호 본문). 이로 인해 성인이 된 자녀와 조부모 이렇게 3대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에는 매월 3배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차별적인 건강보험제도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취약한 저소득 이주민 가정의 생계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가족 단위로 한국에 이주한 고려인동포 및 인도적 체류자들은 당장 다음 달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4년 전 한국에 온 고려인동포 L씨는 75세의 노모와 막 성년이 된 20살 아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몇 달전 L씨의 뇌경색으로 일을 하기 힘들어지자 노모가 요양병원에 근무하며 벌어오는 월 180만 원의 수입으로 지내는데, 이들이 부담해야 할 월 보험료는 30만 원이 넘는다. 

시리아에서 한국에 온 인도적체류자 S의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내전 중 입은 총상으로 S의 아버지는 일하기 어려워 S가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오는 월 120만 원으로 온가족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상황인데, S의 수입에서 할머니와 아버지의 보험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보험료를 체납하는 경우 받게 되는 불이익은 더 큰 문제이다. 내국인과 달리 한 차례 체납만으로도 바로 다음 달부터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고, 이후에 체납된 보험료를 완납하더라도 보험급여를 소급해서 적용받을 수도 없다(동법 제109조 제10항 및 제53조). 이에 더해 보험료를 체납한 이주민은 출입국과 연계하여 체류기간을 6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4회 이상 체납하는 경우 체류를 불허하겠다는 방침이다(출입국관리법 제78조 제2항 제3호 및 법무부·보건복지부 공동보도자료). 

 

이번 개정은 지역가입을 의무화하면서 소득 및 재산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높은 보험료를 일괄 부과하고, 세대구성에 있어서 보험료를 과중하게 부담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보험료를 체납하는 경우 엄격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점에서 이주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불합리하게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다. 이에 해당 규정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자 준비 중에 있다. 

 

나아가 이번 개정에 대한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의 태도를 살펴보면 이주민에 대한 불신이 노골적이어서 인종차별 및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처음 도입을 발표했을 때부터 “필요한 경우 일시 가입하여 단기간 적은 보험료 부담으로 고액진료를 받고 탈퇴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함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소위 “먹튀” 프레임을 사용하며 일부 사례를 과도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법무부 역시 보험료 체납을 체류기간 연장허가와 연계한다는 내용을 다음과 같은 카드뉴스도 만들어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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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법무부 공식 블로그 “그는 왜 불법체류자가 되었을까?” 중 일부]

그동안 장시간 고된 노동을 도맡아 하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동포들의 경우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건강보험에 가입조차 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인도적 체류자의 경우 제도적으로 아예 가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생계에 위협이 되고 체류자격까지 박탈 가능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위와 같은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너무나도 기만적이지 않은가? 우리사회에 심화되는 인종차별적 분위기를 오히려 정부가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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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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