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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난민 인정 절차상 문제점

전수연( icomn@icomn.net) 2019.11.12 18:18

지난 저의 글에서는 한국에 들어와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난민인정 혹은 불인정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절차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난민심사 절차 중 출입국에서 이뤄지는 난민면접 및 심사과정에서 문제되는 부분을 짚어보려 합니다.

 

 난민은 난민협약의 개념상 인종, 종교, 정치적 사유 등으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물론 박해를 받을 합리적 가능성의 정도에 대하여 여러 이론들이 있으나, 미국 대법원은 1987년 Cardoza-Fonseca 사건에서, “박해를 당할 가능성이 10% 이상”이라는 확신이 들면, 난민신청자의 박해에 대한 우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봐야 하고, 합리적인 정도의 입증기준을 넘겼다고 봐야 한다는 판결을 한 바 있습니다.

 

즉 난민의 박해가능성을 판단할 때에는 진술의 일관성이나 현재 그 국가의 정황정보 등을 취합하여 박해받을 합리적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난민지위를 인정하여야 함에도, 실제 출입국에서 난민면접을 보고 심사를 할 때에는 박해의 ‘확실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난민신청자가 반정부시위에 참여했다가 불법체포 및 구금을 당하였고, 궐석재판 등이 이뤄졌다는 진술을 하면 이에 대한 ‘직접 증거’들, 즉 체포영장, 구금확인서, 판결문 등의 직접적 증거의 제출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들은 ‘나중에 한국에 가서 난민신청을 하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불법적인 사법절차가 진행될 때 그와 관련한 증거들을 꼼꼼히 챙겨두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합니다. 실제로도 ‘나는 그 당시에 내가 한국이란 나라에까지 와서 난민신청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두지 못했다’고 말하는 난민신청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박해가능성에 대한 물증이 없는 경우 대부분의 난민들은 ‘진술만 있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난민불인정 처분을 받곤 합니다.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은 실제로 난민지위가 불인정되는 대다수 난민들의 주요한 사유인데(실제로 제가 만난 난민들의 99%이상은 불인정 사유 중 하나로 물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난민판별방식은 난민협약과 난민법상에 정의된 ‘난민’의 개념과 배치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문제되는 점은 출입국에서 진행되는 ‘면접조사’의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인터뷰가 마치 ‘수사’와 같은 형태의 위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난민신청자가 본인의 박해상황에 대해 절실한 마음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하려하면, ‘묻는 말에만 답하라’,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 등 마치 ‘범죄자’를 다루듯 간결한 답변을 강요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점은 필자가 만나고 인터뷰하였던 대부분의 난민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면담이 진행되다보니 난민신청자들은 본인들이 강조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박해에 관한 구체적인 정황들을 충분히 진술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난민불인정 결과로 이어집니다.

 

사실 출입국에서 난민면접을 실시하는 조사관의 수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2018년 한 해 난민신청자는 16,000 명이 넘는데 전국에서 난민심사 담당자의 수는 고작 38명 뿐입니다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사관들이 난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여력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조사관 수의 부족이 난민면접의 위압적 진행방식과 부실한 면접내용에 대한 합리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산술적인 면만 보더라도 정상적이고 충실한 난민면접 및 심사가 불가능함은 명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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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민인권센터 2018년 국내난민현황 중 일부발췌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3% 남짓입니다. 이는 OECD 국가들의 난민인정률 평균인 24.8%의 약 1/8 수준인데요, 그렇다면 난민인정률이 30-40%가 넘는 국가들인 독일, 미국, 캐나다 등에는 흔히 말하는 ‘진짜’ 난민들만 가는 것일까요? 사실 난민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어느 땅이든 입국이 가능한 국가에 가게 되겠지요. 난민인정률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해당 국가의 난민심사 시스템, 더 근본적으로는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결국 난민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난민심사 과정 및 절차가 집행되는 구체적인 양상이 달라질테니까요. 

 결국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마음의 태도가 이들을 대하는 행동과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단순히 절차상의 결함이나 인원수의 부족 등 하드웨어적 문제라면 해결책은 간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선과 마음이 문제될 때에는 어디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고 시작해야 하는지 난감해지지요. 이러한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난민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생각해보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우리는 때로 ‘모르던 것을 앎으로 인해’ 우리의 시선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 한 분이라도 난민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고, 혹시 그전에 갖고 있던 난민들에 대한 생각에 아주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 저의 글은, 이 글을 쓴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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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We are all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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