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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라진 나를 마주하는 방법

김수연( icomn@icomn.net) 2019.12.07 20:07

거울을 보다가 무심코 왼쪽 관자놀이를 봤다. 흰머리 발견! 안 나던 곳에 삐죽 솟은 걸 보고 핀셋으로 과감히 뽑았다. 이미 몇 가닥 올라오는 정수리는 주기적으로 살핀다. 지금은 미련 없이 뽑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냥 두어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죄다 뽑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글 쓰는 게 직업이라 10시간 내리 앉아 있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한 시간에 한 번은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침침해진 눈과 삐걱거리는 허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집중력이 예전만치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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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는 강경화 장관 , 오마이뉴스 제공

 

에너지는 유한하다. 내 체력도 그렇더라.

 

몸이 달라지니 정신도 달라진다. 정확하고 빠른 걸 좋아하던 성격이 점점 느슨해진다. 대신 철저하게 분배를 한다. 내 체력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예전에는 어제 100을 쓰고도 오늘 100을 쓰는 게 가능했다. 내일도 100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오늘 100을 다 소진하는 일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어제 20을 썼으면 오늘은 30 정도를 쓴다. 내일 나머지 50을 쓰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일을 분배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도 분배하게 되었다. 사람을 가린다는 뜻은 아니다. 적당한 시간과 노력을 사람에게 쓴다. 정확히 말하면 타인이다. 몸이 바뀌면서 느낀 건 내가 제일 소중하다는 거였다. 예전엔 남의 일이 많이 고려되었다면 지금은 내 일이 가장 소중하다. ”아, 이래서 다들 꼰대가 되고 이기적이 되나?“ 싶기도 하다. 나눠줄 에너지가 없으니까 말이다.

 

잘 나이 든 사람은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잘 나이 든’ 유튜버들의 채널을 즐겨본다. 나보다 족히 2, 30년은 더 든 그들의 모습에서 활력을 본다. 물론 보여주기 위한 생활의 단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자세나 가치관, 생활습관은 그 사람의 모습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간다. 훌륭한 사람들이 꽤 많다.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 보면 바로 ‘구독’이다. 반대로 생각해본다. 나도 나이 들면 저럴 수 있을까. 그러고 싶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한해가 또 저문다. 올해도 그럭저럭 잘 넘겼다. 가장 큰 성과는 나 자신의 위치를 직시하게 되었다는 거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앞에서만 보던 나를 뒤에서도 보게 되었다. 나란 인간,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내년부터는 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고 싶다.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걷기라도 많이 하면 몸이 지금보다 더 건강해질 것이다. 사람에게 다소 무뚝뚝한 내가 잘 웃는다면 지금보다 인간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다. 예전보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한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또 아니면 어때!“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느슨하게 변한 내가 지금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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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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