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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나라에 성착취 인신매매가 아직도, 있다고? (1)

전수연( icomn@icomn.net) 2020.01.16 14:28

성착취라는 말도, 인신매매 라는 말도 언뜻 잘 와닿지는 않습니다. 성을 착취할 목적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것 정도로 쉽게 풀어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즈음, 뉴스에서 종종 보았던 장면인 봉고차로 여성들을 납치하여 성매매업소에 파는 장면들을 떠올리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봉고차로 사람을 납치해서 업소에 내다파는 범죄들이 지금도 있을까요.

형태나 방법, 그리고 착취당하는 피해자들은 조금 달라졌지만, 네 여전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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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의 개념은 팔레르모 의정서(_유엔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의 부속서이며, 정식명칭은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예방, 억제, 처벌을 위한 의정서)에 정의되어 있으며, 인신매매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1)목적, 2)수단, 3) 행위인데요, 1)목적은 다른 사람을 성매매 시키거나 강제노동 등을 시켜 ‘착취할 목적’으로 2) 협박이나 폭력, 사기, 취약한 지위 등을 이용하는 ‘위법한 수단’으로, 3) 사람을 모집하거나 이동시키고 숨기거나 주고받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Article 3 :Use of terms For the purposes of this Protocol:

(a) “Trafficking in persons” shall mean the recruitment, transportation, transfer, harbouring or receipt of persons, by means of the threat or use of force or other forms of coercion, of abduction, of fraud, of deception, of the abuse of power or of a position of vulnerability or of the giving or receiving of payments or benefits to achieve the consent of a person having control over another person, for the purpose of exploitation. Exploitation shall include, at a minimum, the exploitation of the prostitution of others or other forms of sexual exploitation, forced labour or services, slavery or practices similar to slavery, servitude or the removal of organs;)

팔레르모 의정서가 의미있는 이유는, 첫째로 피해자가 근로계약서 등에 형식적인 서명이 존재한다 해도, 즉 피해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위의 3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인신매매라고 판단하는 점입니다. 둘째는 아동의 경우(18세 미만)에는 ‘위법한 수단_폭력, 협박, 사기 등’이 없더라도 착취의 목적과 사람을 이동시키는 등의 행위만 있으면 인신매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피해자와 피해사실을 식별하고, 가해자 처벌이나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에 협약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지요.

 

위 팔레르모 의정서에 대하여 한국은 2015.5.에 국회 본회의의 비준 동의를 얻어 현재 한국도 협약발효국에 해당합니다. 이는 동 의정서가 그 취지에 맞게 이행될 수 있도록 협약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이행법안이나 정책 등이 마련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2013년에 형법 제289조에 인신매매죄를 신설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신매매를 규제하는 법안이 없습니다. 또한 그나마 신설된 ‘인신매매죄’는 의정서를 그 취치에 맞게 이행하기에는 역부족합니다.

 

 

<현행 형법>

289(인신매매) ①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추행, 간음, 결혼 또는 영리의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을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국외에 이송할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하거나 매매된 사람을 국외로 이송한 사람도 제3항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팔레르모 의정서와는 인신매매의 개념정의부터 차이가 납니다. 우리 형법은 인신매매의 다양한 수단이나 행위 등에 대한 언급없이 단순히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처벌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매매’를 무엇으로 보는지가 문제되겠지요. 그러나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형법의 조항을 확대해석하여 가벌 범위를 넓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위헌소지까지 있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매매’는 제한적인 의미로만 해석이 되는데, 우리 판례는 ‘사실상의 지배력의 행사를 전제로 한 매매를 인신매매행위의 성립요건으로 해석합니다. 즉, 판례에 의하면 감금이나 폭행 등의 심각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근로조건 등에 동의한 경우는 인신매매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즉 노동조건이나 환경 등을 실제와 달리 작성한 계약서에 속아 작성된 근로시간과 달리 실제 12-13시간씩 일을 한다거나, 한 달에 휴일이 하루 혹은 아예 없다하더라도, 본인이 멀쩡한 정신으로 서명을 하였다면, 현행 형법상 인신매매죄로는 처벌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형법상 인신매매죄가 포괄할 수 있는 행위양태들이 제한적이어서, 형법상 인신매매죄로 기소되는 건 자체도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형법 제289조 제3항(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착취, 장기적출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죄를 정의한 조항)으로 기소된 건은 2013-2016년까지 단 4건 정도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인신매매죄 조항으로 실제 ‘인신매매죄’로 처벌되는 건이 없다면 유명무실하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따라서 팔레르모 의정서의 내용을 잘 녹여낸 포괄적 인신매매법의 신설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인신매매 행위를 근절하고, 사전에 예방하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법안의 신설이 절실합니다. 사실 2012-2013년경 당시 19대 국회 하에 김춘진, 남인순 각 의원실에서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였고, 각 법률안 모두 팔레르모 의정서의 취지가 적실히 반영된 안이었지만, 아쉽게도 2개의 법률안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되어 버렸지요.

 

다음 저의 글에서는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성착취 인신매매의 실태를 통해, 포괄적 인신매매법안이 필요한 이유를 다뤄보겠습니다.

 

- 공익법센터 어필, 전수연 변호사 작성

 

소개:

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We are all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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