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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해자와 피해자

김수연( icomn@icomn.net) 2020.02.08 11:21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꼭 말하는 게 ‘쇼생크탈출’이다.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인 ‘앤디’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무죄를 끝없이 주장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앤디는 어느새 교도소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그가 교도소를 탈출하게 된 계기는 신참으로 들어온 ‘토미’의 어이없는 죽음 때문이다.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유일한 증인인 토미가 교도소장의 은밀한 지시로 살해된다. 앤디는 자기 때문에 토미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무척 괴로워한다. 신종 코로나가 창궐하는 요즘 뉴스를 보면 이상하게 이 영화가 생각난다. 누가 앤디가 되고 누가 토미가 될지 모르는 세상.

 

코로나가 낳은 신종 공포

 

코로나가 대유행하기 전에 2박 3일 짧게 해외를 다녀온 적이 있다. 패키지여행을 함께했던 일행 중에 한 할아버지가 여행 두 번째 날에 현지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아침부터 벌어진 당혹스러운 광경에 모두 웅성거렸다. ”혹시 코로나 아니야?“ 할아버지의 병명이 코로나라면, 아니, 작은 감기 증세라도 있다면 우린 격리조치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들 근심이 가득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받음과 동시에 또 누군가에게 가해를 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현장을 압도했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병명은 이명과 어지럼증이었고 우리는 무사히 귀국을 할 수 있었다.

 

재난영화는 좋지만 실제는 무섭다

 

2월이 된 지금,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중국을 보면 그 수치가 무섭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연스레 외출을 자제한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신음했던 자영업자들이 더 아우성친다. 중국 관련 일을 했던 사람들의 오더가 뚝 끊긴다. 아이들의 개학이 연기되고 확진자가 다녀간 영업장은 모두 폐쇄된다. 다들 뉴스에 촉각을 세우고 그 다음 행동을 대비한다. 재난영화를 좋아하는데 실제의 재난 상황은 좋아할 수가 없다.

 

상황은 무섭지만 담담히 현실을 또 살아낸다. 사람이 모일 법한 일을 덜 만들고 아이에게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당분간 조심하라고 일러둔다. 집안의 어르신들에게는 종종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는다. 떠다니는 바이러스로 어느 순간 내가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하면 오싹하지만 그것도 상황이 닥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뉴스는 ‘국민의 알 권리’가 먼저라서일까, 확진자를 마치 범죄자처럼 연일 보도한다. 동선과 사생활이 언급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그들도 피해자인데 동시에 가해자가 된 셈이다.

 

피하고 싶은 재난의 경험치

 

며칠 전 TV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다룬 짧은 다큐를 봤다. 그 당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던 사람은 누가 이 현장을 지휘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말에 ”여기 지휘자가 어디 있어요? 그냥 막하는 거지!!“라며 분개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재난 대처 능력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재난이 항상 새롭다는 거다. 어느 때는 건물이 무너질 수 있고, 어느 때는 지진이 일어날 수 있고, 어느 때는 화재가 날 수 있다. 지금처럼 치료약도 없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상황이 또 발생할 수 있다. 안 좋은 일은 경험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 안 좋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 어렵다. 어서 지금의 코로나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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