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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출생신고와 가족관계등록제도의 사각지대

권영실( icomn@icomn.net) 2020.03.05 15:44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어도 가족관계등록을 할 수 없는 자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아이가 홍길동전의 홍길동만이 아니다. 친부가 한국인임에도 출생신고 및 가족관계등록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다. 한국의 가족관계등록제도는 대한민국 국민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 국적자는 물론이고, 국민과의 가족관계를 입증하기 전 단계에 있는 아동까지도 가족관계등록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바로 법률적 혼인관계가 아닌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이 당면하게 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 국적법에 따르면 출생 당시에 부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국적법 제2조 제1항). 그러나 이는 친부와 자녀 사이에 법률상 친자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국한된다. 부모가 법률혼 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 즉 친부와 혼인외의 자녀는 인지 절차를 거쳐야만 법률상 친자관계가 인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인 부와 외국인인 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인외의 출생자에 대하여 부의 출생신고만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8. 11. 6. 자 2018스32결정).

 

위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아동의 경우, 우선 i) 친모의 국적법에 따라 출생신고를 한 후 인지신고를 하거나(가족관계등록법 제55조) ii) 친부가 인지의 효력이 있는 친생자출생의 신고(동법 제57조 제1항)를 마친 다음, 법무부장관에게 자녀의 국적취득을 위한 신고를 하고(국적법 제3조), 그 후 법무부장관이 국적취득 사실을 관할 시·읍·면의 장에게 통보하면 아동에 대한 새로운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된다(가족관계등록법 제93조).

 

현행법의 체계상 위의 절차에 따르는 것이 적법한 처리 순서이다. 하지만 국민의 자녀임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가족관계등록을 위해 거쳐야 할 절차가 너무 복잡하여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아동에게 필요한 지원이 제때 보장되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한다. 나아가 외국인 모가 조력을 거부하는 경우 부 혼자서 이를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i) 한국에서 곧바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고, 모의 국적법에 따라 출생신고를 하여야만 한다는 점 ii) 인지의 효력이 있는 친생자출생의 신고(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1항)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절차가 아동의 복리에 부합하는지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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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 http://www.ubrkorea.org/ )

 

현행 한국의 제도 하에서 불가능한 외국인의 출생등록 문제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아동의 경우, 우리나라는 외국인에 대한 출생신고를 허용하고 있지 않기에 자신의 존재를 공적으로 기록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비록 친부가 한국인인 경우라도 법률상 친자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혼인외의 자는 외국인에 해당한다. 그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는 수리될 경우 특종신고서류편철장에 편철이 될 뿐이다(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제429호). 특종신고서류편철장에 편철이 되면 신고서를 접수한 주민센터 등 해당 사건을 처리한 등록관서에서 출생신고 수리증명서 또는 신고서류 기재사항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는 있으나(가족관계등록법 제42조, 동법 규칙 제27조 제2항 및 제48조), 이는 신고를 수리하였다는 증명에 그치고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가 보관하고 확인한다는 증명은 될 수 없다. 결국 수리증명서를 통해서는 정보의 진위와 적법성에 대해 보장받지 못하므로, 아동의 법률상 신분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대한민국이 현재 가입 및 비준하여 국내에 발효된 국제협약 중 아동권리협약 제7조, 시민적·정치적 권리 규약 제24조 제2항, 장애인권리협약 제18조 제2항, 인종차별철폐협약 제5조 제4항 제3호는 공통적으로 아동이 차별없이 체약국에서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출생신고가 되지 못한 아동은 국가의 공적인 관리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필수예방접종이나 의무교육 등 기본 서비스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며 불법입양, 아동매매, 학대의 대상이 되어도 국가의 보호를 받기가 쉽지 않다.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에 보편적 출생등록과 관련한 권고를 여러 차례 하였으며,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모든 아동이 온라인 출생신고를 포함한 출생신고를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지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하였다.

 

수차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아직 보편적 출생등록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이유는 본 판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출생등록에 관한 가족관계등록법이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아동의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뿐만 아니라 본 사례와 같이 친부는 한국인이고 모는 외국인인 혼외자의 경우에도 출생신고를 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외국인 모의 본국 공관에서 본국법에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있으나, 국적에 따라 한국 주재 대사관(영사관)이 없는 경우도 있고,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자국 공관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미혼부의 출생신고 및 인지 절차의 한계

 

혼인외 자의 경우에는 일차적인 출생신고 의무자는 친모이기 때문에(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제2항), 외국인 모가 법률상의 혼인 등을 이유로 조력을 거부하는 경우 친부 스스로 출생신고를 하기에 한계가 있다. 외국인 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한국인 부는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1항에 따라 인지의 효력이 있는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할 수 있다. 만약 모에게 다른 법률혼이 있는 경우 국제사법 제40조에 의한 준거법에 따라 혼인관계에 있는 배우자와 자녀 사이의 친자관계가 배제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면이 첨부되어야 한다(가족관계등록 선례 제201002-1호). 그러나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1항에 따라 친생자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야 하기에 부가 이를 알지 못하는 경우 적용이 불가하였다. 이에 2015년도에 소위 “사랑이법” 시행으로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라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할 수 있고, 이 경우 그 신고는 인지의 효력이 있도록 개정되었다.

 

최근 2019년 전주지방법원에서 모가 외국인인 경우에도 본 조항을 활용하여 한국인 부가 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전주지방법원 2018호기2). 그러나 동조항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모의 인적사항을 모두 알지 못하여야 하는지, 인적사항을 일부라도 알 수 없어 친모를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포함되는지에 대해 일선 법원에서의 해석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대체로 실무상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출생증명서가 있는 경우에는 모를 특정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법원은 친생자 출생신고 확인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결국 “사랑이법”의 한계로 인하여 외국인 모의 경우에도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1항이나 제2항에 따른 친생자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소결

 

한국인 부와 외국인 모 사이의 혼외자의 경우, 출생신고와 가족관계등록에 있어 미혼부 및 외국인이 마주하는 법적·제도적 한계를 복합적으로 겪게 된다. 부모가 처한 다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동은 신속하게 출생신고를 하고 가족관계를 확정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행법과 실무가 아동 최상의 원칙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현행 법체계를 보완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의 도입과 사랑이법의 완화된 적용을 비롯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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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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