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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좀비의 등장 - 불통의 시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 못할 집단의 등장

한성주( icomn@icomn.net) 2020.03.31 10:53

공포는 피하고 싶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어떤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사람은 공포를 느낄 때 즐거움을 동시에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포영화, 공포소설, 그리고 괴담이 그렇게도 많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공포창작물의 유형도 동네마다 좀 다릅니다. 공포도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회적인 배경이 공포에 대한 공감을 만들어내지요.

 

서양인들은 주로 흡혈귀와 좀비(zombie)를 두려워합니다. 대표적 흡혈귀인 드라큘라 백작은 광견병에 걸린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실존인물의 이야기가 와전되어 생긴 괴담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인 것이죠. 이에 반해 좀비는 이미 죽은 자들이고, 무리지어 다니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괴물들입니다. 백인 정복자들이 신대륙의 원주민을 상대할 때의 공포심이 좀비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피부색이 어두워 죽은 사람 같고, 말이 안 통하니 아무리 백인문명의 상식으로 계약을 하고 설득을 해도 달려드는 모습, 그리고 총이 뭔지 몰라 앞사람이 쓰러져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모습에 대한 공포심. 그것이 좀비로 그려진 것은 아닐는지. (우스개지만 요즘은 Black Friday 같이 대폭 할인하는 날 쇼핑에 몰려드는 사람들이나 휴지 사재기를 하러 달려드는 사람들을 좀비로 표현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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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드라마 속의 좀비 (Walking Dead)

이들 공포물의 또 한 가지 특성은 전염성입니다. 드라큘라도 그랬고, 좀비도 그랬고, 피해자는 주로 괴물성이 전염되어 또 다른 괴물이 됩니다.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세균과 바이러스에 많은 피해를 주고받았던 유목민족들이 경험했던 공포의 특성이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농경민족도 여러 번 역병을 겪었지만 주로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유행이었고, 아무래도 유목민족보다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경험이 많지 않았을 것 같네요.

일본인들은 요괴(妖怪)를 많이 그립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요괴가 갑자기 나타나서 인간을 해치는데 이유는 없습니다. 아마 섬나라에서 기본적으로 가진 공포심이 아닐까 싶은데, 텐구(天狗) 같은 경우를 보면 코가 매우 큰 요괴로서, 외부에서 들어온 서양인의 첫인상이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진격의 거인이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섬에 갇힌 채 외부에서 몰려드는 정체 모를 거인들로부터 성을 지켜내는 상황이, 개항 전의 일본인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같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헌데 일본의 요괴이야기는 유독 ‘착한’ 요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기이한 생김새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들을 도와주는 요괴는 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경험도 같이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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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본의 텐구(天狗)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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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중국에는 ‘강시(殭屍)’ 가 있습니다. 굳어진 시체라는 뜻의 강시는 청나라 관료의 복장을 하고 빳빳하게 굳은 몸으로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뻗고 콩콩 뛰어다니며 인간을 잡아먹습니다. 강시는 매우 슬픈 배경을 갖고 있는데, 고향을 떠나 멀리서 전쟁을 치르다 사망한 많은 사람들의 유해를 고향으로 한꺼번에 옮기기 위해 두 개의 대나무 막대에 망자들의 겨드랑이를 걸쳐 한 줄로 나란히 적재하여 이송했다고 합니다. 도교의 전통대로 망자들의 앞에는 종을 치며 인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 망자들이 줄을 맞춰 꼿꼿이 선 채로 종소리를 따라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겠지요. 대나무의 탄성 때문에 아래위로 흔들리는 시신들은 콩콩 뛰어가는 모양이 되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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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영환도사’ 속의 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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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나무에 시신을 옮기는 모습 ,그림: 한채이)

한국의 공포는 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일단 귀신과 말이 통합니다. 그들은 일일이 한이 서려있는 사연이 있으며, 인간이 그 한을 납득하고 풀어주면 더 이상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 은혜도 갚지요. 대부분이 권선징악적인 내용이고, 결국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 답이 있으며, 힘이 없어서 생전에 당한 억울함은 망자가 되어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귀신이 된 뒤에 복수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야기의 결말도 대부분 귀신을 죽이는 것보다는 귀신을 달래서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스토리가 많고요. 대대손손 모여 사는 농경사회에서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경고하는 역할도 하고, 현재 계급사회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통쾌함을 주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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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좀비를 다룬 드라마 ‘킹덤’ ,Netflix)

최근 한국에서도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인들에게 생소했던 좀비의 등장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납득하지 못하게 된 데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한글이라는 쉬운 문자 덕에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도저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서로 이해 못하는 집단들이 생겨나고, 더구나 이제 더 이상 농경사회에서처럼 뿌리 깊은 관계도 아닌 사람들이 얽히고설키게 되면서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좀비처럼 답답하고 두렵게 여기는 일이 많아져서가 아닐까 걱정됩니다. 특히나 인터넷 공간에서 살인적인 악플이 난무할 때는 정말 좀비들이 몰려드는 환상이 보일 때가 많지요. 좀비가 아닌 우리들은 한 번 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납득하는 노력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를수록 두려운 법이고, 누군가를 잘 알면 미워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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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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