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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군가에게는 산넘어 산, 아빠 혼자 아이 출생신고하기(1)

일명 ‘사랑이법’ 적용의 사각지대

전수연( icomn@icomn.net) 2020.04.08 10:53

현행 가족관계의등록등에관한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 혹은 ‘동법’ 이라 합니다)상, 아이가 출생한 경우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신고의무자는 부부의 혼인상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즉 부부가 혼인 중에 출생한 자녀의 경우에는 ‘부 또는 모’ 누구나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혼인 외의 출생자의 경우 출생신고의무는 원칙적으로 ‘모’에게만 있습니다[1]. 여기에서 ‘혼외자’라함은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를 의미하는데, 즉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친부모가 법률혼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모두 ‘혼외자’로 분류됩니다. 그렇다면,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되는 법률혼이란 무엇일까, 추측하실 수 있듯 형식적으로는 혼인신고가 되어 있어야 하고, 실질적으로는 혼인관계에서의 의무 즉 동거의무, 부양의무 등을 다하고 있는 혼인의 실질이 있어야 하겠지요. 법률혼 관계가 아닌데, 부부관계의 실질이 있는 관계를 일컬어 ‘사실혼’이라 하며, 법률혼과 사실혼의 가장 명백한 구별기준은 ‘혼인신고가 되어있는지 여부’ 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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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실혼의 경우에도 아이의 출생신고의무는 원칙적으로 친모에게 있지만, 다만 아이를 낳고 친모가 행방불명 되었다거나 혹은 여러 이유들로 친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친부가 단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2015년도에 관련 조항(일명 ‘사랑이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개정조항의 내용은 부가 혼외자에 대한 친생자출생신고를 하면 이를 인지(認知, 자녀를 본인의 친생자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고, 다만 친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단순히 출생신고만으로는 안되고 법원에서 확인을 받아야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2].

 

사실혼과 혼외자, 그리고 출생신고에 대해 언급하였던 이유는 제가 만나게 된 가정의 케이스와 관련이 있어서인데요. 제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주로 이주민들 중에서도 취약한 난민이나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등을 소송이나 신청 등 여러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작년에 한 통의 이메일이 왔습니다. 태어난 아가의 출생신고를 못하고 있다는 한 아버지의 연락이었습니다.

 

사건의 요는 이러합니다. 아버지 본인은 7년 전쯤 귀화를 하여 한국국적을 취득하였고 현재는 한국인인데, 아내는 A국에서 난민사유가 있어 본국의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탈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마저 아내분의 활동이 발각되어 주일본 A국 대사관에서는 아내의 여권갱신을 불허하였습니다. 오갈데가 없어진 아내는 일본에서 난민신청을 하였지만, 일본정부로부터 난민인정은 못받은 채, 인도적 재류지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도적 재류지위란 우리나라 난민법 제도에서도 인정되는 ‘인도적 체류지위’를 의미하는데, 이는 난민불인정은 되었지만 난민신청인을 지금 당장 본국으로 송환시킬 경우에는 신청인의 생명과 신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허가되는 체류허가의 일종입니다. 아내는 한국에서 한국인인 남편과 혼인하였지만,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외국인인 경우에는 (이중혼을 방지하기 위해) 본국인 A국에서 미혼이었다는 확인서가 필요한데, 아내는 본국의 박해를 피해 탈출한 난민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본국 대사관에 출입할 수 없었고, 미혼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아내에게 여권 등 유효한 신분증이 없다는 점도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에서 받은 인도적 재류지위카드는 한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신분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와 같이 혼인신고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부는 아이를 출산하였고, 아이의 아빠는 한국인이므로 부모양계혈통주의를 따르고 있는 우리 국적법 체계에서는 당연히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국적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출생 당시에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경우에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필요한 실제의 법령과 예규는 아이의 ‘아빠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다는, 아이의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빠는 친자임을 증명하는 유전자검사확인서까지 주민센터에 제출하였지만, 부부에게 혼인관계 증명서와 친모가 출산 당시 미혼임을 증명하는 확인서 등이 없는 경우에는 친부라 해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으며, 법원의 확인을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의 엄마가 난민사유가 있어서 위 서류들을 발급받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지만, 요건미비를 이유로 출생신고신청의 접수 자체가 거부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하는 단체에까지 연락을 주셨던 것이지요.

 

이 경우는 혼외자의 자녀를 친부 혼자 출생신고를 해야하는 경우이므로,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 즉 모의 인적사항 등을 알 수 없음을 이유로 하여 친생자출생신고 확인신청을 관할 법원에 접수하였습니다. 아이의 친모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는 사람이었지만 유효한 신분증이 없었으므로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고, 이는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에서 말하는 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심의 결과는 ‘기각’이었습니다. 가사비송의 경우에는 심문을 진행하지 않고 재판부에서 서류만 검토한 후에 결과를 선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그러하였고 심문기일이 잡히지 않았던 까닭에 판사님 얼굴을 마주할 겨를도 없이, 아래와 같은 기각 결정문을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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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구구절절 적어낸 서면과 입증자료들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기각 이유에 대하여 유선상으로 듣게 되었는데, 정리하자면 이 사건은 ‘아이의 친모가 존재하고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동법 제57조 제2항이 적용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법 제57조 제2항은 아이의 엄마가 실종된 경우같이 소재파악이 안되는 경우라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렇지만 이는 위 관할 법원의 입장일 뿐입니다. 동법 제57조 제2항에서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법원의 해석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음 저의 글에서는, 이 사건의 진행상황과 동법 제57조 제2항의 해석이 법원마다 어떻게 다른지, 더 나아가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의 문제점 또한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출생신고제도’에 대하여도 살펴보겠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요즈음입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코로나로부터 건강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1]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신고의무자)

①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②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

[2]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57조 (친생자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

 ①부가 혼인 외의 자녀에 대하여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한 때에는 그 신고는 인지의 효력이 있다. [개정 2015.5.18] [[시행일 2015.11.19]]
②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할 수 있다. [신설 2015.5.18] [[시행일 201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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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센터 어필, 전수연 변호사 작성

 

소개: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We are all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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