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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이러스는 국민과 이주민을 구별하지 않건만

권영실( icomn@icomn.net) 2020.04.15 10:49

“제가 경기도에 산 지도 7년이 다 되어갑니다. 경기도에 오래 거주하여 도민이라 생각하고 살았기에 저도 당연히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받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경기도에 살고 있는 67만여 명의 이주민은 이 정책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주민은 도민도 아니고 한국사회의 구성원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경기도와 서울시의 코로나19 긴급생활비 지원대책에 항의하기 위해 이주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면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주민 당사자가 발언한 내용이다. 경기도는 모든 이주민을, 서울시는 국민과 가족관계가 있는 외국 국적자를 제외한 이주민을 재난지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전북의 경우는 어떨까. 전국에서 제일 먼저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한 전주시, 그리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시민에게 지급한다는 군산시나 남원시도 외국 국적자는 지원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그나마 작년 시장의 다문화가정의 자녀에 대한 혐오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익산시의 경우에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과 혼인 또는 자녀 양육 관계에 있는 결혼이민자에 한해 익산시민과 똑같이 1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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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주민 재난지원금 정책 국가인권위 진정 공동기자회견)

 

지방자치단체는 국적과 무관하게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자”인 주민을 구성요소로 하고(지방자치법 제12조), 영주권을 취득한 후 3년이 지난 외국인은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자격도 가진다(공직선거법 제15조 제2조). 또한 「전주시 외국인주민 및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 「익산시 거주외국인 지원에 관한 조례」 등 각 지자체의 조례에서는 이주민의 지위를 주민과 동일하게 시의 재산과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시의 각종 행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에서는 이번 코로나19 극복 차원인 긴급재난지원금 수혜 대상에서 이주민의 존재를 거의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난지원금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외국인의 경우 공적 마스크를 구매를 하려면 외국인등록증과 함께 건강보험증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미등록 외국인과 국민건강보험 가입대상에서 제외된 체류자격을 가진 이들, 높은 건강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미처 가입하지 못한 이들, 그리고 개정된 외국인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외국인 유학생들까지 공적 마스크조차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차별적 외국인정책이라는 비난과 지역사회 방역대책에도 구멍이 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후 서울시에서는 건강보험 미가입 외국인들을 위한 마스크 지원사업을 시행하였고, 광주시의 경우 외국인등록증만 제시하고 마스크 구매가 가능하도록 후속 대응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구성원 한 명이라도 방역 대상에서 소홀히 대우했을 경우 그 폐해의 여파가 어떠할지 예측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아닌가.

 

지역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의 환경이 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국적이나 인종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오는 현실에 직면하여 인간 평등성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처해진 환경이나 대처 상황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는 점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바이러스로 인한 결과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속한 이들에게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 기존 한국의 사회보장 체계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민의 경우, 본래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였기에 더 쉽게 실직을 당하고, 긴급 재난지원금에도 기댈 수도 없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방역을 위해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는 국민, 이주민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편, 주민에 대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지원 대상에서 이주민이 배제되는 것은 합리성을 잃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한다. 나아가 위기상황에서 이주민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생계수준을 보장하는 사회적 지원을 전혀 행하지 않고 만연히 외면하고 있다.

 

이주민에 대한 국가별 대처 방안도 다양하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서 긴급치료를 거부당하여 이송 중에 사망했다는 한국교포 이야기도 전해온다. 반면 독일의 경우 ‘코로나 즉시 지원금’을 통해 국적과 상관없이 세금번호를 받아 수익활동을 하는 모든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자에게 지원한다고 하고, 포르투갈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모든 이주자와 난민에게 임시로 시민권을 부여하여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하고 시민권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한다. 유엔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특별보고관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취약한 이주민을 포괄하는 조치들을 긴급하게 채택해야 한다고 각 국가에 촉구하였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설득력 있는 데이터와 언어를 통해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며,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소수자들은 긴장 속에서 삶의 전반을 지배당하여 결국 더 아픈 삶을 산다고 호소한다.

여느 때보다 혹한 시절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적 지원이 왜 소중한지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며,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공동체 구축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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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동천은 로펌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을 활성화하고 공익단체, 활동가 및 예비공익변호사를 지원, 양성하는 한편, 공익법 연구 및 법률구조, 제도개선, 입법지원활동을 함으로써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공익법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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