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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촛불시민들의 정치요구를 어떻게 이어낼 것인가

고영남( icomn@icomn.net) 2020.04.20 12:37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에 관한 나의 관심은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씨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던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새로운 의회질서를 만드는 지점까지 나아갔는지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을 얻어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그리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에 걸쳐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시위와 집회,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이어지면서 일단락되었고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탄핵을 요구했던 많은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연립정부로 이어지거나 민주세력들의 단단한 정책연대를 낳지는 않았다. 준연동형 비례선거로써 소수당의 의회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고 진단하였지만 정녕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연합 내지 정책연대를 어떻게 할지에는 침묵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2016년 탄핵소추안 의결에서부터 시작하여 여태까지 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세력들의 정책공약집을 들여다보면서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시 말해서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를 누볐던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구현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이번 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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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근혜 구속처벌을 외치는 김해시민들 : 2016년 12월 4일 김해집회)

 

정치연합을 외면한 공약들

 

이견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보지만, 이번 선거에 지역구나 비례대표후보를 낸 정당 가운데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수용될 수 있다고 나 스스로 나름대로 가려본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민생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민중당, 열린민주당, 노동당, 녹색당, 미래당, 미래민주당, 여성의당이다. 이들 정당마다 선거공약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주장들이 넘쳐났다. 허나 주요한 공약을 묶어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검찰개혁을 비롯한 사법개혁의 요구, 공정언론에 관한 요구, 경제민주화를 지향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책들, ‘코로나 19’를 계기로 쏟아지는 기본소득 혹은 이와 유사한 사회정책들, 주거권(주거민주주의) 보장과 토지보유세 신설 등 부동산정책들, 감초처럼 등장하는 교육개혁의 목소리와 무상보육정책,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파견 및 기간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고용정책, 적정 임금의 확보를 요구하는 노동정책들, 한반도평화의 구축을 위한 정책 등이 그 용어와 문장만 다를 뿐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담고 있었다. 더욱이 늘 공약집에 담기지만 관심을 받는 데 어려움을 보이던 농촌·농민·농업의 보호 내지 식량주권에 관한 정책,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위기)의 대책을 비롯한 환경 및 생태를 지키고자 하는 정책, 탈핵 및 탈탄소정책, 성차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정책, 동물권(복지) 보장에 관한 정책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보정치를 위한 마중물

 

하지만 어느 정당도 촛불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구현할 정치체제의 구축을 고민하지 않았다. 탄핵의 강을 건넜는지를 둘러싸고 입씨름을 하던 미래통합당이 그 내홍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정파의 입장을 굳건하게 대변하면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치질서 가운데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노라면, 촛불시민의 정치요구는 대선을 거치면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분해되어 버렸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수구세력의 부활이 언제든지 가능한 정치적 계기를 유보해두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다수당이라고 할지라도 1개의 정당만으로는 이런 정치 구도 안에서 앞서 언급되었던 여러 공약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봉합하고 다시 2016-2017년 촛불의 광장에 맞게 민주주의의 정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기회는 이번 총선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에 힘을 보탠 21대 국회의원선거였다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촛불시민의 정치요구를 구현할 연립정부체제를 잉태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전통적 여야구도 또는 이항대립적 정치구도를 발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민주연립정부를 잉태할 정치연합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는다면, 미래통합당 등을 비롯한 수구적 정치세력들의 부활은 언제든지 현실로 나타나며, 결국 ‘민주’의 형식적 미명 아래 진취적인 정치세력을 위한 토대는 언제든지 희생의 대상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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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일하게 촛불시민의 정치요구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모 정당의 공보물)

 

이제라도 촛불연립정부 수립하여

정치적 자유 신장하고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해소해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동의하는 제 정당과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연합체를 이뤄 시급한 일국 차원 혹은 지구적 차원의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현안들 둘러싼 지혜와 용기를 만든다면 시민들의 삶은 보다 가치 있는 경험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제 정당의 공약만을 검토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대체로 민주진보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이번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지나치게 좁혀 인식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선거공약집을 떠나 총선이 끝난 지금이라도, 의석을 많이 차지하게 된 정당이든 그렇지 않은 정당이든, 굳이 정당이 아니라도 정치적 요구와 실천을 꾸준히 이어온 사회세력이라면 부디 민주연립정부를 구성하여 21세기에 맞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등을 함께 정립하고 함께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파의 가치에 매몰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정당 등 정치공동체의 책무는 공동의 잇몸 아래에서 각각의 이빨을 오랫동안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 우려는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런 튼튼한 잇몸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자. 물론 광범위한 정치적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를 억압하던 악법과 그 문화를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이빨을 가질 계기를 여러 차례 빼앗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를 신장하고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그 이빨들이 쓰이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지난 촛불의 외침은 촛불을 들었던 그들 모두가 공유할만한 정치적 자산이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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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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