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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재키 로빈슨의 날(Jackie Robinson Day)

한성주( icomn@icomn.net) 2020.04.30 09:58

올해는 COVID-19 으로 인해 미국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아 볼 수 없었지만, 지난 4월 15일은 본래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와 코칭 스탭은 물론 심판들까지 모두 등번호 42번을 달고 나오는 ‘재키 로빈슨 데이 (Jackie Robinson Day)’ 였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날이자 저에게는 42번을 함께 달고 뛰는 미국 야구계의 끈끈한 연대감,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미국인들의 시민의식을 느끼게 해주는 날입니다.

 

그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1947년에만 해도 흑인 선수들을 위한 ‘니그로 리그’ 가 따로 있었습니다. 야구에 대한 큰 자긍심과 애정을 가진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는 아직 그들의 무대에 흑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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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재키 로빈슨 데이를 맞아 그의 등번호 42번을 달고 나온 메이저리그 선수들)

 

UCLA 대학에 다니면서 야구는 물론 농구, 수영, 테니스, 육상, 미식축구까지 각종 스포츠 종목을 섭렵할 정도로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군에 입대하여 육군 장교로까지 임용된 엘리트였으나 흑인은 버스 뒷자리로 가라는 어느 백인 장교의 인종차별 발언에 반발했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불명예제대를 당하는 바람에 결국 야구선수가 된 로빈슨이 야구를 통해서 마침내 인종차별의 장벽을 넘어섰다는 건 필연 같은 우연이라고나 할까요.

 

재키는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활약으로 브루클린 다저스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끈 대 스타가 되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인 중에도 대졸 학력자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UCLA를 졸업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라면 미국에서 충분히 존경을 받을 경력을 갖고 있어도 대다수의 백인들의 시선에 그는 그저 흑인일 뿐이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그는 수많은 협박과 압력, 그리고 조롱과 멸시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상대 팀 투수로부터 몸으로 날아드는 빈 볼도 무수하게 맞았고 주루플레이 중에 그의 발목을 걷어차고 발을 밟는 비열한 반칙도 쏟아졌죠. 아마 분노하는 순간도 많았고 그러나 그의 곁에는 외로운 흑인이 버틸 수 있도록 함께 싸워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브랜치 릭키 (Branch Rickey) 단장이 바로 이 전설의 시작입니다. 그는 재키 로빈슨 영입 이전에도 이미 현대 야구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업적이 많은 사람입니다. 마이너리그 팀을 인수해서 ‘팜 시스템’ 이라 부르는 선수육성을 최초로 시도했던 사람이고, 스프링 캠프의 훈련방식과 배팅 케이지, 헬멧, 피칭머신 등의 신문물을 보급시키기도 했으며 심지어 현대 데이터 야구의 핵심인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는 미국야구연구협회(SABR – the Society for American Basball Research)의 측정방식이라는 뜻으로, 야구의 수많은 기록들의 경기적 가치를 계량화해서 평가하는 개념. 예를 들어 똑같이 100개의 안타를 쳤더라도 단타냐 장타냐의 차이, 또 동점이나 역전 등의 상황에 따른 차이에 가산점을 매겨 선수의 활약을 평가하는 기준이 됨)의 개념을 가장 먼저 주장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이버메트릭스의 통계를 선수들의 연봉을 깎을 때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진정 야구를 사랑해서 천재적인 두뇌로 야구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 릭키는 급기야 니그로 리그에서 뛰고 있는 재키 로빈슨을 메이저리그로 진출시키기까지 하면서 인종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미국을 바꿔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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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이저리그 계약서에 사인하는 재키 로빈슨과 브룩클린 다저스의 브랜치 릭키 단장)

 

그가 흑인 인권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만, 그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누가 봐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야구에 대한 본질적 애정이 그로 하여금 어떤 흑인 인권운동가보다도 빠르고 강력하게 인종차별의 벽을 깰 수 있게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는 다저스의 구단주로서 좋은 팀을 만들어 경기에서 이겨야 했는데 인종차별은 그의 성공을 막는 거추장스런 장해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흑인 선수와 함께 뛸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던 주전 선수를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보내기도 했는데, 다행히 당시 구단의 레오 듀로셔(Leo Durocher) 감독도 그와 생각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레오 감독은 재키 로빈슨의 영입에 반대하여 항의하던 선수들에게 “나는 그가 노랗든 까맣든, 아니 얼룩말 무늬 따위가 있다고 해도 상관 안 해. 난 이 팀의 감독이고 내가 할 말은 그가 이 팀에서 뛸 거라는 거야!”(“I don't care if the guy (Jackie Robinson) is yellow or black, or if he has stripes like a god-damn zebra. I'm the manager of this team and I say he plays.") 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같은 팀의 선수들도 처음엔 반발이 매우 심했습니다. 심지어 흑인에게 자기 밥벌이를 뺏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반발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렇기에 피위 리즈(Pee Wee Reese) 선수가 유난히 돋보입니다. 주장이자 유격수였던 피위는 군복무 중 니그로 리그의 선수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대뜸 니그로리그 성적이 어땠냐, 나와 같은 포지션이냐 부터 물었다고 하니 그 역시 피부색은 신경도 안쓰고 야구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니그로 리그에서 유격수를 보던 재키가 1루수와 2루수로 보직을 변경하는 바람에 그의 자리를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는지, 피위는 재키에게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인종 차별이 매우 심한 켄터키 출신의 피위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가 로빈슨을 팀원으로 감싸안은 스토리는 정말 감동적입니다. 신시내티 원정 경기 날, 게임을 시작하기 전 백인 관중들이 ‘검둥이(니그로)’를 연호하며 리그의 유일한 흑인 선수에게 야유를 던지고 있을 때 다

저스의 백인 주장 피위 선수는 일부러 그라운드에 서있는 재키 로빈슨에게 걸어가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를 본 신시내티 경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일 때문에 고향에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피위는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피부색은 이유가 될 수 없다.(You can hate a man for many reasons. Color is not one of them.)” 는 명언을 남겼고 이후 미국역사에 등장한 모든 흑인 스포츠 선수들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지요.

 

“만일 나더러 흑인 리그에 가서 뛰라고 한다면, 난 어떨까요? 무서울까요? 혼자 백인이라서? 아니, 나는 좋은 유격수니까 그걸 보여주려고 할 겁니다. 내 피부색이 아니라. 내가 경기에 나갈 자격이 있다는 걸 말이죠. 난 로빈슨도 그렇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가 내 자리를 뺏을 정도의 사나이라면, 난 짜증이 나겠죠. 하지만 뭐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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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키 로빈슨을 다룬 영화 ‘42’ 의 영화 포스터에 그려진 재키 로빈슨과 피위 리즈)

재키 로빈슨의 탁월한 플레이와 피위의 이런 태도는 결국 팀 동료들을 모두 변화시켰고, 어느 무식한 백인으로부터 “한 번만 더 경기에 나오면 42번 검둥이 너를 총으로 쏴버리겠다” 는 협박이 들어오자 락커룸에서 농담처럼 누군가 “그럼 우리 모두 42번 달고 나가지 뭐” 라고 했고, 실제로 모든 선수들이 등에 42번을 달고 경기를 뜀으로써 ‘재키 로빈슨과 우리는 하나’라는 무언의 시위를 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훗날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일인 4월 15일에 모든 팀과 심판들이 42번을 달고 나오는 감동적인 전통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의 등번호 42번은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을 무기로 남이 노력하여 얻은 것을 뺏고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피부색, 출신지, 성별, 학연, 그 외에도 많은 것들로 쉽게 차별하고 편견을 이용해 게임을 공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이도 어린 게 뭘 한다고?” “여자한테는 무리 아니야?” “거기 출신들은 글러먹었어” 이런 말들이 우리 생활 속에서 낯설지 않다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이죠. 그러나 결국 승리는 올바른 자격을 갖춘 자들의 것이니만큼, 우리는 피부색의 장벽을 스스로 허물고 재키 로빈슨과 함께 승리를 할 것인지, 지금 당장 알량한 기득권을 누리자고 무의미한 편견에 기댄 차별을 통해 패자가 될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을 계속 맞이할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피위가 고향에서 모진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내가 차별의 장벽을 깨면 동시대에 칭찬을 받지 못할 확률이 더 높고, 내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자칫 동류의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60년 전 브루클린 다저스 구단이 팀의 승리를 위해 ‘야구를 더 잘 하는’ 선수를 주전으로 내보냈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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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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