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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소록을 들고 떠나는 여행

한성주( icomn@icomn.net) 2020.07.02 15:27

어느새 2020년의 반을 접어 7월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COVID-19 으로 꽁꽁 묶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또 이 때를 웃으며 추억하는 때가 오게 되길 바랍니다. 햇살이 뜨거운 걸 보니 이제 곧 휴가철입니다. 저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편이 아니라서 불쑥 떠나는 여행의 일탈을 좋아하는 편인데, 낯선 곳에서 홀로 서서 나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여행의 재미도 있지만 먼 곳의 친구를 찾아가는 여행도 좋아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당분간 여행을 떠나기는 힘들 것 같으니 옛 여행의 추억을 더듬어 위로를 삼아봅니다.

 

스무 살 시절, 대학생으로 맞는 첫 여름방학을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부담감까지 덧씌워진 신입생의 설렘으로 친구 J 와 함께 야심찬 여행을 기획했습니다. 사실 기획이라고 해봤자 어느 선배에게 들은 조언에 솔깃해서 충동적으로 의기투합했던 것인데, 바로 학번 동기들 주소록만 손에 들고 전국 일주를 떠나는 것이었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대학에 입학해서 각 지역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사귀는 게 왜 그리 좋았던지, 그 녀석들의 사투리만 들어도 자꾸 웃음이 나서 왜 그리 웃냐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 어리버리한 자신들의 모습이 억울했는지, 그래도 서울로 유학을 올 정도면 나름 자기 동네에서는 어깨 펴고 걷던 녀석들이라 그런지 술만 마시면 자기 집에 한 번 내려오라고 했던 동기들의 말을 진심이라 믿고 정말로 주머니에 동기들 주소록과 여비 5만원만 들고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J를 만나 무작정 차표를 끊고 남쪽으로 출발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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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울남부터미널 (By Asfreeas - 자작,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0300013)

 

우리는 무조건 어느 도시에 도착해 그 곳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한 학기 동안 전체 모임에서야 자주 어울렸지만 개인적으로 연락해 만나는 친구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에 동기라고 해도 따로 집에 찾아올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우리가 왔다는 전화에 처음엔 다들 흠칫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섭섭하게 내치는 친구들은 없었고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 분명 반가운 기색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우리가 너를 보러 왔노라 전하면 하나같이 자기 집으로 기꺼이 초대를 하거나 심지어 서울 촌놈을 걱정하여 직접 데리러 나와 주기도 했습니다.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예상외의 반응은 그 친구의 부모님들이었습니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딜 가나 친구들보다 부모님들께 기대 이상의 환영을 받았고, 가차 없이 집으로 초대를 받아 진수성찬을 대접받았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들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똑똑하긴 해도 말 잘 듣는 착한 아들 서울로 유학을 보내놓고 학교에선 잘 지내는지 얌체 같은 학우들에게 따돌림 당하지는 않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하셨을 텐데 첫 학기를 보내고 난 시점에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 멀리서 굳이 당신들 아들을 보러 왔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우셨을까요. 덕분에 우리는 여관 한 번 기웃거리지 않고 호의호식을 하며 식객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집은 조카 친구들 왔다고 고모님까지 고기를 사들고 오셔서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주시는 집도 있었고, 심지어 한 친구네 동네에서는 마당에 흡사 잔칫상을 차려놓고 동네 어른들까지 우리 얼굴을 보러 오셔서 이 녀석이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느니, 얼마 전 돌아가신 이 녀석 아버님이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이셨다느니 하는 말씀들도 보태시며 그렇게 뿌듯해 하시는 모습에 학교에선 몰랐던 친구들의 가정사와 인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민폐를 끼치더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며칠씩 신세를 지고 그 도시를 떠날 때 어떤 친구는 우리를 따라 나서기도 했고, 거의 예외 없이 친구의 부모님들은 문밖까지 마중을 나와 우리에게 얼마간의 용돈을 쥐어주셨습니다. 그 돈으로 우리는 다음 행선지까지 차비도 하고 현지 당구장과 영화관을 체험해보기도 했으니 전혀 힘든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어차피 언제 돌아오리라는 기약도 없었으니 일정에는 늘 여유가 있었고, 학기 중엔 매일 기숙사 이층 침대나 학교 앞 안암동 쪽방 같은 자취방에서 술 취해 끼어 자던 녀석들이 널찍한 방에 우리를 재워주면서 어깨도 좀 으쓱하는 것 같았죠.

 

그렇게 한반도의 남쪽을 돌아 2주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주머니엔 현금 5만원이 그대로 있었고, 개강한 뒤 서울로 돌아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염치없이 찾아가 털어먹고 갔는지 무전취식에 진상이라며 욕에 욕을 해대기도 했지만 그건 누가 들어도 기분 좋은 너스레고 자랑이었습니다.

 

매년 이렇게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뭐가 그리 바빴는지 졸업 때까지 다시는 못해봤기에 그 한 번의 여행은 더욱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국에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도 나이 들어 염치도 생겼고 서로의 삶이 고달프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민폐를 끼치기는 어려워졌지만, 지금도 아무것도 아닌 나를 멀리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친구들이 참 고맙습니다. 독자분들도 기회가 되면, 스마트폰과 인터넷 말고 주소록에 의지해 여행을 떠나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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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한의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IBM Korea 에 잠시 근무를 했다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성주한의원(경기도 성남시 판교지역) 원장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회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고, CBS 팟캐스트 '스타까토' 에서 정치시사관련 인터넷방송을 한 적이 있으며 국방FM '너를 사랑하기에 전유나입니다' 에서 수요일 고정 코너로 '한성주의 세상풍경' 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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