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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이스팩’ 수거함은 없나요?

김수연( icomn@icomn.net) 2020.07.05 16:46

우리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일은 매주 수요일이다. 부지런한 아파트 주민들로 화요일 저녁부터 아파트 주차장에 재활용 쓰레기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수거차가 오는 목요일 아침이면 거대한 쓰레기 산이 만들어져 있다. 줄지도 않고 오히려 점점 느는 것 같은 쓰레기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매번 생각해본다. 하지만 나의 일상이 쓰레기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기보다 늘리는 데 한몫한 사실을 깨달으면 더 괴로워진다.

 

당장 지겨운 삼시 세끼 밥하기에서 벗어나려 어쩌다 시켜먹은 오늘의 점심이 생각난다. 코로나 이전엔 열심히 보리차 끓여 먹던 물을 요즘은 물 끓이기가 귀찮아 배달생수로 대체할 때도 있었다. 환경에 대한 죄책감과 달리 몸은 반대로 편의를 따라가고 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일회용 숟가락, 젓가락은 음식을 주문할 때 아예 빼달라고 한다. 기름이 잔뜩 묻은 일회용 그릇은 깨끗하게 설거지해서 버린다. 생수병에 붙은 비닐라벨은 일일이 손으로 제거해서 버린다. 그렇게 하니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해도 찜찜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아이스팩’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새벽배송’ ‘당일배송’으로 신선한 식품을 받아볼 수 있다. 우유, 채소, 생선, 고기 등에 딸려오는 건 칭칭 감아놓은 포장박스 테이프와 상자, 그리고 아이스팩이다. 테이프는 다 뜯어내어 쓰레기로 버리고 종이상자는 잘 접어서 재활용으로 내놓는다. 아이스팩은 버릴까 말까 3초 고민하다가 냉동실로 또 직행한다. 그렇게 쌓인 아이스팩이 냉동실 한 칸을 다 차지한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안 좋아하는 체질이라 한여름엔 냉동실 아이스팩이 요긴할 때도 있었다. 젖은 수건에 살짝 녹인 아이스팩 두 개를 감아 목에 두르면 사우나 냉탕이 부럽지 않다. 몇몇 개 아이스팩은 교체용으로 사용하면 되지만 나머지는 처치 곤란이다. 어쩔 수 없이 몇몇 개를 종량제 봉투에 버리면서 한동안 찜찜했다. 아이스팩 안의 젤은 ‘고흡수성 폴리머’라는 화학물질이다. 종량제 봉투 속에서 터져도 고민이고 안 터져도 고민이다.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이스팩을 상상했다가 그 안의 젤이 강물에 흘러 들어가 물고기들이 먹는 상상도 했다가 ‘이제 그만!’을 마음속으로 외친다. 죄책감은 상상을 멈추어야만 끝나니까 말이다.

 

연간 아이스팩 생산량은 2억 개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마트에서 고기를 사면서 점원에게 물었다. “집에 있는 아이스팩 가져와도 되죠?” 물론 괜찮다고 점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질문만 던졌을 뿐 아직까지 실천은 안 하고 있다. 외출할 때 굳이 아이스팩까지 챙겨가며 굳이 바쁜 시간 쪼개가며 마트에 다녀올 일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또 몇몇 개의 아이스팩이 종량제 봉투로 직행했다. 죄책감과 편리한 일상의 무한반복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나 같은 ‘게으른 환경 걱정이’들을 위해 서울 일부 지역과 경기도, 경남 양산시 등에서는 아이스팩 전용 수거함을 만들어 사용된 아이스팩을 재활용하는 데 쓴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수거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땅 위에서 썩지도 않고 버티는 아이스팩을, 고흡수성 폴리머를 먹고 배 아파 꾸불거리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다. 수거함이 만들어진다면 정말 필요한 아이스팩 두어 개만 남기고 1빠로 멋지게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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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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