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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방학(放學)

김현규( icomn@icomn.net) 2020.08.01 14:30

‘놓을 방(放)’에 ‘배울 학(學)’을 쓰는 방학은 여름 혹서기와 겨울 혹한기에 실시한다. 이때 방학을 하는 이유가 과거에는 국가에서 냉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여름은 긴 장마로 인하여 습하고 더운 ‘무더위’로 유명하다. 아프리카에서 온 지인에게 아프리카보다는 그래도 덜 덥지 않냐고 했더니 <한국 더위는 너무 힘들다. 내 고향은 이곳보다 덥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데 한국은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습하고 덥다>고 하소연한 적도 있다. 2016년도 조달청의 공공건축물 유형별 공사비 분석 결과 학교 건물이 가장 저렴하다. 심지어 교정시설보다도 단가가 낮다고 한다. 초등학교 짓는데 ㎡당 166만 원의 예산이 든 반면, 교정시설은 258만 원이었다. 게다가 2019교육통계연보(2019년 4월 1일 기준)에 따르면 학생 수 30명이 넘는 학급은 전국적으로 2만2895개였고 이는 전체 1만1657개교(특수학교와 각종학교 제외)에 있는 학급 23만2949개 대비 9.8%였다. 이를 종합해 보면 가뜩이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우리나라 환경에서 설령 냉난방비를 많이 쓴다 하더라도 낮은 공사비로 단열이 잘 되지 않는 학교 건물과 미어터지는 학생 수 때문에 방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가 무더위로 잠시 배움을 놓은 사이에 다른 집 애들이 열심히 해서 우리 아이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클 수도 있겠다. 더구나 과거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이 꼽는 최고의 여름 휴식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잔소리하는 엄마 없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실컷 하다가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것이라고 하니 방학 동안 그걸 지켜봐야 할 학부모의 속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마 성인 대부분이 들어봤을 것이고 나처럼 어린 시절 부모 말 안 듣고 제멋대로 굴던 분들이라면 수없이 들었을 <대체 저놈이 커서 뭐가 되려고>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속 답답하실 학부모님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사실 공부(工夫)는 불교에서 말하는 주공부(做工夫)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공부란 ‘불도(佛道)를 열심히 닦는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참선(參禪)에 진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공부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정리했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기는 많이 배우는데 그걸 익힐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배우고 익히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논어에서 공자가 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He who learns but does not think, is lost. He who thinks but does not learn is in great danger.

 

- 논어, 위정 제15장

 

사실 기원전 500년경 사람인 공자가 저렇게 말했다는 건 배울 때 사람들이 보통 어떤 실수를 많이 하는지, 또 배우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이 배우는 데만 몰두하다가 별로 익히지 못해 배우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경우가 과거부터 흔했던 것 같다. 소박한 음식을 조금 먹더라도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꼭꼭 씹어서 즐겁게 먹는다면 최고의 식사라 할 수 있겠다. 배움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사회 전반에 학교 교육과 교사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방과후 글쓰기 수업을 학교 교사가 직접 운영한다는 설명에 학교 교사는 믿을 수 없으니 실력 좋은 외부 강사를 섭외할 수 없느냐는 학부모 전화가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도 물론 안타까웠지만 아이가 배운 것을 익힐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기보다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 배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많이 배웠으나 익히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배웠던 것이 모두 사라지고 배우기 전 상태로 돌아간다. 배우는 것을 음식 먹는 것에 비유해 보자면, 음식을 먹고 소화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얻지 못하여 몸에 이로움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적게 배워도 충실히 익힌 사람과 많이 배웠지만 제대로 익히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큰 차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배움을 놓는 때, 즉 방학이야말로 그동안 배운 것을 익히기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콩나물은 사람이 지켜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느새 자란다는 것을 기억하자. 방학을 맞아 우리 학생들 모두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잘 익혀서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할 만큼 훌쩍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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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 오늘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가르치고 또 배우며 사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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