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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운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서운해요

김수연( icomn@icomn.net) 2020.08.08 10:18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단짝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여자 중학교로, 한 학년이 열다섯 반이나 있는 학교였다. 그 친구는 한 반에 쉰 명이 훌쩍 넘어가는 콩나물 교실에서 양갈래 머리로 유독 눈에 띄는 아이였다. 우린 만화책을 즐겨 본다는 공통점 하나로 금방 친해졌다. 밥도 매일 같이 먹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매점도 같이 갔다.

 

만화잡지 동아리를 만들어 방학 때도 공부한다는 핑계로 수시로 모였다. 마치 진짜 작가나 전문 출판인이 된 것처럼 SF 판타지 소설도 쓰고 만화도 직접 그리고 회원 탐방 기사도 쓰며 책의 편집 전 과정을 함께했다. ‘르네상스’ ‘윙크’ ‘댕기’ 같은 만화잡지가 나오는 날이면 각자의 집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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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년은 특별한 문제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만화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고 동아리를 운영하는 데도 의기투합이 잘됐다. 학년이 바뀔 때가 되자 우리는 같은 반이 되기를 진정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은 깨지고 서로 다른 반을 배정받게 된다.

 

학년이 올라가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그 친구가 우리 교실에 놀러 왔다. 처음에는 반갑고 좋았지만 매번 반복되니 슬슬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친구는 내 교우관계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왜 그 아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야?’ 하면서 새로 사귄 친구의 험담을 늘어놓는가 하면 ‘오늘 교실에 갔더니 네가 없더라? 어디 갔었어?’ 하고 나의 동선을 일일이 체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기는 어려워서 할 수 없이 참았다. 내가 뭐라고 하면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사건은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들이랑 함께 복도를 웃으며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저 멀리서 그 친구가 걸어오자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뭐가 심기가 불편한지 내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나를 따로 부른 그 친구는 내게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적반하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분은 별로였지만 한동안은 그 친구의 눈치를 보면서 더 잘해주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별로 관계는 개선이 되지 않았고 그 친구는 계속 서운한 뉘앙스를 내게 풍기곤 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그 친구를 서서히 멀리했다.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면서 만화 동아리 활동도 흐지부지됐다. 학년이 하나 더 올라가면서 나는 ‘제발 그 친구랑 같은 반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소원은 이루어졌고 그 친구는 오히려 거리가 더 먼 교실로 배정됐다.

 

서운하다는 말 속엔 여러 의미가 들어가 있다. ‘상대가 내게 더 잘해줬으면’ ‘내 마음을 더 알아줬으면’ 등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데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서운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그 말을 실제로 입 밖에 내기 전에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상대방이 정말 행동을 잘못하고 있는지, 내가 너무 과한 기대를 하고 의존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우리는 그때 너무 어렸고 그런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서로 잘 몰랐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유독 그때 그 친구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 기억에 그 친구의 생일이 가을에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니 더 생각도 나는 것 같다. 우리는 한때 뜨거웠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점점 식어가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열탕보다는 온탕이 낫겠다는 생각이 부쩍 더 드는 요즘이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는 따뜻한 차가 한 잔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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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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