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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죽은 자의 존엄을 지키려는 산 자의 위엄

[서평]죽은자의 집청소

김경민( icomn@icomn.net) 2020.09.12 00:28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하는 행위는 독서나 글쓰기가 아니다. 나는 청소나 정리정돈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종종 철학적인 상태가 되곤 한다. 이 물건은 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내 집에 있는 걸까. 나는 정말 이 물건을 필요로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예쁘고 비싼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소유한 것들 중 무엇이 내가 죽는 순간까지 남아 있을까. 어떤 것이 ‘유품’으로 의미가 있을까. 과연 그런 물건이 있기나 할까.

 

대략 이런 양상으로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다보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그리하여 결국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새삼스러운 자책이 밀려온다.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 역할은 못할지언정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텐데, 이 물건들이 그 자체로 민폐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엔 당연한 전제 하나가 깔려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듯 병원에서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린 후 곧바로 시신 안치실로 가거나, 혹은 집에서 죽더라도 곧바로 가족에게 발견이 될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 이 믿음이 다분히 낙관적인 이유는 이 세상엔 그렇게 생의 최후를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죽어서 시신이 바로 발견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김영사, 2020)의 저자는 '사람이 홀로 죽은 채 오래 방치된 집’을 청소하는 사람이다. 저장 강박으로 쓰레기 더미가 된 집도 청소하고, 유혈이 낭자한 범죄현장도 청소하지만 주로 ‘고독사’한 사람의 집을 청소한다. 그 고독사는 자연사이기도 하고 자살이기도 하다. 그는 시신만 빠져나온 그곳에 방독마스크와 수술용 장갑을 끼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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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폐색전증 같은 허파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이삼 일만 내버려 두면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체가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잃은 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놓는다. ‘인간의 육체는 유기적인 화학 공장과 같다’는 표현은 상투적이지만 꽤 적절한 비유 같다. 사람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여 온갖 장기가 부풀어 오르고, 풍선이 팽창하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복부가 터지며 온갖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낸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할 때 몸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5퍼센트. 인체의 유기물질과 체내 수분이 함께 쏟아진 뒤 부패하면서, 지하의 창문과 벽을 넘어 골목 어귀까지 이토록 비극적인 냄새를 뿜어댄다.(p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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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책 제목과 인용한 대목만 읽으면 마냥 무겁고 비극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 끝까지 읽는 게 버거울 것 같지만, 막상 읽다보면 그러한 예상은 빗나간다. 그리고 바로 이 빗나감이 이 책의 가장 탁월함 지점이다. 이 탁월함은 죽음에 대한 저자의 시선에서 나온다. 저자는 죽음을 결코 가볍게 보지도 않지만 무겁게 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죽음을 ‘깊게’ 볼 뿐이다. 그의 깊은 시선은 타인의 삶과 죽음을 함부로 재단하고 분류하고 평가하지 않는 태도를 낳는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자신의 일을 ‘특별하다’고 과대평가하지 않고, 남들이 꺼리는 일이라고 비하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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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음식을 치우는 일은 가볍고 쉬운 것, 죽은 사람이 남긴 육체 조각과 혈흔을 없애고 냄새나는 살림을 치우는 일은 무겁고 엄숙한 것이라고 누가 선을 그을 수 있는가. 특수 청소를 하는 것은 남다른 일, 특별하고 어려운 행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 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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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유명 논객이 이런 말을 했다.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어요. 시체 치우려면 짜증나니까요.” 나중에 그 논객은 이 발언을 반성한다며 사과했지만, 나는 그 발언에서 순간 한 사람의 바닥이 보여 서글펐다. 정작 그가 ‘짜증난다’는 형용사로 표현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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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리가 공중에서 윙윙거리고, 살 오른 구더기가 모퉁이마다 꾸물거리고, 송장벌레와 진드기가 기어 다니는 곳에서 ‘특별함’이라는 왜소하고 부질없는 조각들을 찾아서 줍느니, 태풍이라도 소환해서 남겨진 발자국을 지우고 싶다. 누구도 묻지 않은 죄를 스스로 지우도록,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나마 용서의 순례 길을 나서야 한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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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죽음과 자신의 일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저자에게 어떤 위엄마저 부여한다. 죽음이라는 실체를 관념이라는 푹신한 이불과 언어라는 안전한 안경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고 맨눈으로 마주한 육체노동자에게서 나오는 위엄 말이다. 그 사람은 그 위엄으로 죽은 자의 존엄을 지켜낸다. 게다가 이 육체노동자는 논객보다도 글을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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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교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며 꾸준히 읽고 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비롯해 네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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