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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만금에 스쳐 보이는 ‘악의 평범성’

윤창영( icomn@icomn.net) 2020.11.02 10:39

악의 평범성.jpg

 

지구촌 전체가 한 인물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였던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바로 루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다.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전범으로 유대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저지른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 독가스 도입 등 15개 범죄혐의로 기소되었고, 결국 그는 교수형에 처해 진다.

60년전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아이히만.

그는 “나는 신 앞에서는 죄가 있을지 몰라도 법 앞에서는 무죄다. 나는 단 한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 지시대로, 명령에 따른 것 뿐이다”고 당당히 무죄를 주장했다.

지극히 반인륜적인 사건에 대한 재판임에도 이 사건이 세간에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철학자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당시 3차례의 칼럼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해 당시 유대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학계의 충격과 함께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악의 평범성’이 항상 소환되는 이유는 정의란 무엇인지를 논하게 될 때 논쟁의 중심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녀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 소환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시대에 곳곳에서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와 관료주의, 천부인권 등이 충돌할 때마다 집고 넘어가야 하는 핵심적인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항상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역사를 보면서 60년전 아이히만의 사건이 데자뷰된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고 불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존중 없는 행위로 자행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또 새만금이 개발되면 마치 전북도민 전체가 부유한 삶을 살 것이라는 거짓 환상을 선거와 정치에 이용해왔던 정치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정치권의 하수인이 돼 그저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토건업자들의 비판없는 명령수행도 ‘악의 평범성’ 논란에 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새만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저질러졌던 ‘악의 평범성’을 다시 소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또 새만금 해수유통에 대한 찬반논란이 커지면서 어쩌면 왠지 모를 ‘악의 평범성’에 우리 모두가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이기에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극복할 수 있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새만금 현실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방조제라는 거대한 벽을 치면서 새만금 내측 담수호는 썩은 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최근 수중 드론으로 촬영한 내측 담수호의 모습을 보면 참담하다. 어류는 물론 수생식물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임에도, 간척사업을 전북의 미래라 말했던 이들은 이 문제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직접적인 사업을 실행하는 토건업자들의 모습은 참담을 넘어 비참하기까지 하다.

새만금 준설과 복토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으며, 결국 이 곳은 죽음의 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향하고 있는 상태다.

만일 토건업자들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인 준설과 복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임수를 수행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죄가 없다’라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저 돈벌이에 치우쳐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 중요했다면 그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의 중심에 서서 또 다른 아돌프 아이히만이 되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유대인들의 학살과 관련 그들을 이송하고, 감금하고, 처형장까지 보내지는 상황까지 또 다른 완장 찬 유대인들이 했던 일”이라며 동족이 동족을 죽였던 상황을 암시한 아이히만의 얘기가 새만금 현장에서 데자뷰되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 ‘성찰과 반성, 비판적인 사유’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이미 현실은 보여졌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어민들은 한 숨만 쉬고 있고, 방조제를 막아 새만금 내측은 죽음의 땅이 되어가고, 준설과 복토가 이뤄지고 있는 장소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이 상황.

그럼에도 정치권과 행정에서 이에 대한 대안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평범함 속에서 나타나는 악마적 행위로 간주 될 수 있다.

강이 죽고 바다가 신음하는 상황은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고, 비판적 사유없이 그저 명령에 대한 실행만 앞세운다면 그 또한 악마적 행위로 간주 될 것이다.

우리 모두에 앞서 특히 정치권과 토건업자들이 이 같은 악마적 행위에 빠져 들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30년이 아닌 수만년의 내일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환경 영향을 가져오는 사업이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매 순간순간, 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끝나지 않는 내면의 갈등을 해야 할 것이다.

비판적인 생각과 보편적인 질서에 합당한지 돌아보는 자세만이 ‘악의 평범성’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내가 한 명의 아돌프 아이히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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