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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성장현( icomn@icomn.net) 2020.12.29 19:38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제48대 왕 경문왕에 관한 이야기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를 닮았다는 사실’이 왜 비밀인가.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해서 나라에 해가 되거나 왕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다. 단지 왕의 기분이 좋지 않을 뿐이다. 왕의 기분 탓에 ‘왕의 귀가 당나귀 귀를 닮았다.’라는 사실은 비밀이 되었다. 즉, 비밀로서의 가치가 없는 사실도 권력에 의해 ‘비밀’이 되었다.

 

‘왕’의 비밀은 오직 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있을 수 없다. 왕은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를 닮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두건을 써야 했고 이로 인해 두건 장인은 왕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두건 장인은 죽을 때가 돼서야 사람이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속에서 ‘왕의 귀가 당나귀 귀와 닮았다’라는 사실을 외칠 수 있었다. 힘없는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의 비밀을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비밀을 말하고야 마는 것이 사람들의 생리 아닐까.

 

‘왕’은 대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를 싫어해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권력은 ‘비밀’을 만들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대나무 숲’을 ‘산수유 숲’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산수유 숲에서는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가 난다. ‘대나무 숲’을 ‘산수유 숲’으로 바꾼다고 해도 진실까지 감출 수는 없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한다.

 

‘공연히’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뚜렷하고 떳떳하게”라는 뜻인데, 대법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해석한다. ‘공개적으로’라는 말이 더 적당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대법원은 위 ‘공연히’라는 말을 ‘특정 개인이나 소수인에게 개인적 또는 사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행위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 또는 유포될 개연성이 있는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인정한다.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두건 장인은 사람들이 없는 대나무 숲에서 외쳤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숲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라는 소리가 나므로 ‘전파 가능성’이 인정되어서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필자가 위 두건 장인의 변호인이라면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라는 것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닌 ‘가치 판단을 적시’한 것이므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겠지만...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7조 제1항 위헌확인’ 사건(2017헌마1113)을 심리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헌법재판소 블로그(http://blog.daum.net/c_court/1492) 등장하는 이야기의 복건장 할아버지(두건 장인)는 임금의 비밀을 발설한 죄로 대궐로 끌려가지만 결국 “헌재”의 활약으로 풀려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소리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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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헌법재판소 블로그 발췌)

헌법재판소가 위 블로그의 “헌재” 소년과 같이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하여 두건 장인이 마음 놓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수 있게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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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현은 법무법인 광안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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