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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도요·물떼새는 번식을 위해 지구의 남반구에서 북반구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이동을 한다. 저 멀리 남반구의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겨울을 난 후, 봄철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과 새만금 갯벌을 중간 기착지로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머문다. 여름철에는 알래스카와 캄차카반도 등 러시아 북부에서 번식을 한다. 이후 다시 8월부터 10월까지 겨울이 오는 번식지를 떠나 우리나라 갯벌을 찾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로 약 1~2만km의 대이동을 한다.

 

▲2010년 1월 3일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의 조사 장면 <사진 제공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인간은 자동차 없이는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기 어렵고, 고작 수백 킬로미터를 갈 때도 종종 차가 멈춰 발목을 잡힌다. 그곳이 사막이나 북극과 같은 곳이라면 생명의 존립까지 따지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니 도요·물떼새의 여정은 인류에게 항상 경이의 대상이다.

 

새들은 이런 엄청난 비행을 통해 자손을 남기는 과정을 수만 년 동안 해왔다. 새만금이 가지는 생태적 가치를 논한다는 것은 이런 수만 년의 생명이야기를 엮어 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2000년 8월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참담했다. 생명과 철학과 상식이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에게 갯벌이란 고작 공장과 농사를 짓기 위한 땅에 불과했다. 환경영향평가는 강자가 공공재를 가로채기 위한 면죄부일 뿐이다.

 

편집자 주> 새만금 개발이 논란을 계속하자 정부는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이하 조사단)을 1999년 5월 출범하고 해양생태와 수질, 경제성에 중점을 둔 연구를 진행한다. 당초 2000년 4월 보고서를 완성하기로 했지만, 조사단장을 제외한 29명의 민관조사위원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해 보고서 작성에는 실패했다. 결국 조사단장을 맡은 이상은 환경정책평가연권장은 조사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내용을 2000년 8월 국무총리실에 제출했다.

 

당시 조사단은 민간전문가 20명과 정부관계자 9명, 단장 1명으로 구성됐다. 민간전문가 20명은 전라북도와 정부 추천 10명, 환경단체 추천 10명으로 구성됐다. 사실상 새만금 사업에 찬성 입장을 가진 조사단원이 반대 입장을 가진 조사단원보다 많게 구성되었다.

 

입장이 모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사단장이 제출한 조사위원들의 의견은 민간전문가의 경우, ‘계속시행’ 11명, ‘중단’ 9명으로 나왔고, 정부 관계자 의견은 ‘계속시행’ 7명, ‘입장유보’ 2명으로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조사를 해보니 이런 형식적인 환경영향평가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물새 모니터링은 2003년 12월 처음 시작하여 매월 첫째 주마다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벌써 120차(2013년 11월)까지 진행됐다. 3월과 4월, 9월과 10월은 대부분 갯벌에 서식하는 도요·물떼새를 볼 수 있는 곳에서 관찰을 했고, 11월과 12월·1월은 겨울철새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진행했다.

 

갯벌의 소실은 물새의 감소로 이어져

 

새만금 간척으로 인해 대부분의 갯벌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새만금 공사 초기인 2003년 12월~2005년까지 409,982마리(관찰최고치)의 물새를 볼 수 있었던 반면,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2012년~2013년 11월까지는 247,355마리를 볼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39.6%가 감소한 것이다.

 

 

특히 갯벌을 위주로 살아가는 도요물떼새의 감소새는 더 높다. 새만금에서 관찰된 49종의 도요·물떼새는 공사초기 161,817(관찰최고치)마리에서 10년 이후 21,007마리로 무려 87.0%가 감소했다. 이중에서 붉은어깨도요라는 도요새는 관찰 초기 107,794(관찰최고치)마리가 관찰됐지만, 최근에는 1,080마리로 무려 98%의 개체수가 감소했다. 

 

 

도요·물떼새의 군무로 장관을 이루던 옥구염전

 

2004년 4월 새만금 간척공사로 옥구염전이 문을 닫기까지 만경강·동진강 하구의 새만금 갯벌은 수십만 마리의 도요·물떼새를 키워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옥구염전에서는 10만 마리에 가까운 도요·물떼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었다.

 

갯벌과 염전을 오고가며 이루는 군무는 하늘 높이 날기보다는 사람들 바로 위를 날아다니곤 했다. 도요새 무리가 날아가며 내는 바람소리는 어떤 형태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주었다. 가령 가창오리의 경우 사람과 아주 멀리 무리를 형성하여 날아다닌다. 그러면서도 간혹 그들의 날개 소리를 듣게 된다. 도요·물떼새는 갯벌을 낮게 날아 제방에 가까이 다가오면, 곡선을 그리며 약간 날아올라 우리들 머리 위를 10여 미터 위로 지나곤 했다. 이런 경험은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것들이다. 이러한 옥구염전의 군무는 사리 때를 기점으로 약 3~6일간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4년 4월 방조제 공사로 인해 전과 달리 바닷물이 들어오는 양이 제한되었다. 물때는 주변 물때보다 2시간가량 늦어졌다. 매일 바닷물이 들어오던 일부 갯벌은 사리 때만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역으로 바뀌었고, 저서생물 등의 대량 폐사가 국부적으로 일어났다. 이때부터 옥구염전에 도요새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넓은 새만금 갯벌에서 도요·물떼새들은 줄어든 갯벌로 인해 쉬는 장소가 변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머물던 갯벌보다는 인근의 갯벌 곳곳에서 쉬는 무리가 관찰됐고, 시민조사단도 더 이상 한 곳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조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은 최종으로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농어촌공사는 인위적으로 수위를 조절하는 등 갯벌 상황은 아주 빠르게 악화되었다. 갯벌이 마르기 시작했고,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많은 갯벌의 저서생물들이 사라졌다. 곳곳에서 대량폐사를 확인할 수 있었고, 붉은어깨도요와 같은 큰 무리를 이루던 물새들은 많은 수가 관찰되지 않았다.

 

2010년부터 시작된 방수제 공사는 마지막 남은 물새들의 서식지마저 위협하고 있다. 2013년 11월 칠게 무리가 살아있는 남수라 갯벌은 새만금의 마지막 도요·물떼새 서식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10월부터 시작된 남수라 갯벌의 방수제 공사로 인하여 이곳 갯벌의 90% 이상이 방수제 안으로 포함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2010년 1월 3일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의 조사 당시 찍은 새들의 발자국 <사진 제공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사라진 8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는 어디로 갔을까?

 

새만금의 생태 변화는 2006년 봄과 2010년 가을을 기점으로 두 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많은 물새들도 이 시기 서식지를 잃는 등 짧은 기간 동안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우선 8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를 사라지게 한 첫 번째 변화는 2006년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이다. 끝물막이 공사로 인해 바닷물은 단지 방조제 수문으로만 들어오게 됐다. 이로 인해 그동안 있었던 갯벌이 마르기 시작했고, 수면 아래 있던 갯벌이 잠시 드러났다 말라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갯벌이 말라가는 이 짧은 시기동안 인간과 조류에게 갯벌은 손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기는 대부분 3~4개월의 짧은 풍요를 안겨준 다음 서식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봄철 남반구에서 북반구를 돌아 1만Km의 비행을 하는 도요·물떼새들에게 말라가는 갯벌은 많은 수의 저서생물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그해 가을 돌아오는 도요·물떼새들은 이미 말라버린 갯벌에서 먹이를 찾을 수 없어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급기야 붉은어깨도요의 경우 8만 마리 정도의 개체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2013년 현재까지 8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는  그 어떤 다른 지역에서도 관찰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요·물떼세의 대규모 군무를 본 것은 옥구염전에서 2005년 5월경이었다. 이 중 8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는 더 이상 관찰할 수 없었다. 당시 갯벌에 쉬고 있는 무리를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러 명이 경험을 살려 숫자를 헤아리고 여러 사람들이 종합해 기록해야 했다. 또 무리들은 계속하여 날아오르고 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모습이 혹시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로 말로 토해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마지막이 아니길 바랐지만, 가을철 번식지에서 돌아오는 붉은어깨도요 무리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붉은어깨도요 2010년 9월 (오동필 실행위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7년이 지난 최근 정확히 말할 수가 있었다. 새만금 주변의 금강 하구와 유부도 일대, 곰소만을 비롯해 한국의 어느 갯벌에서도 사라진 숫자만큼 관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호주에서는 월동하는 붉은어깨도요의 숫자가 감소했음을 발표했고, 그 사라진 개체가 새만금 갯벌의 상실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 숫자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서식지 상실은 모든 종에 피해를 주고 있고 어느 특정한 종에게는 전멸할 수 있는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느 장소가 사라지면 다른 장소에서 바로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붉은어깨도요의 감소는 그러한 생태질서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새만금사업의 재앙, 갯벌이 마르고 그 위에 수많은 물새 사체들이 있었다

 

새만금에서 물새들을 보기 힘들어진 두 번째 변화는 2010년 12월부터 진행된 방수제 공사이다. 새만금 방조제 안의 수위를 1.6m 내려 유지하게 되면서 2011년 겨울은 새로운 갯벌이 잠시 드러났다. 이 시기 저서생물을 먹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많은 수의 도요물떼새가 관찰되기도 했다. 이중 남수라 갯벌은 말라가며 어민들에게 ‘가무락’이라는 조개를 3개월 동안 내어 주었고, 남수라에서만 그렇게 새로 드러났다 말라간 면적은 여의도의 1.5배에 달했다.

 

새만금은 단순한 갯벌이 아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강 하구로 이루어진 곳이다. 수도 서울의 3분의 2만큼의 넓이가 새만금이다. 그만큼 넓은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갯벌이 사라졌다. 더욱이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은 꾸준히 감소되었다. 2012년 8월 우리나라는 태풍 산바가 지나간 후 크고 작은 산사태를 여러 곳에서 겪었다. 방송에서는 인간의 서식지에 대해 안전한 지 그렇지 않은지 걱정하는 소리가 뉴스로 장식됐다. 하지만 사라지는 생명과 갯벌에 대하여는 어떤 관심도 있지 않았다.

 

 

우리는 도요·물떼새를 통해서  새만금 방조제가 곧 인류와 생태계에 재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 2006년 10월, 우리는 10년 동안 모니터링 과정에서 볼 수 없었던 여려 종의 물떼새들의 사체를 수거하기도 했다. 바로 갯벌은 말라갔고 많은 저서생물은 죽어갔다. 방조제 공사는 더 이상 새만금의 갯벌에서 이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재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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