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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편집자 주]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 활동하다 필리핀에서 1년여간 인권자원활동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김영옥씨가 필리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보고서 형태로 정리해 보내왔다. 약 5회에 걸쳐 연재한다.


1.

필리핀은 민다나오 섬엔 무슬림 게릴라가, 그 외 지역엔 공산주의 게릴라가 오래전부터 활동하고 있다. 두 명의 대통령을 하야시킨 피플파워도 가지고 있다. 6만여 개의 엔지오가 활동하고 있어 엔지오의 아시아 백화점이라고도 불린다. 천연 자연자원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국민의 40%(필 정부발표)가 절대빈곤선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지, 왜 싸우는 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 조직하고 교육하는지 보고 싶었다. 무엇이 변혁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절망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사람들을 보고도 싶었다.


2. 농민들은 왜 산으로 들어가는가


메트로 마닐라만 벗어나면 필리핀 전국이 다 개발이 덜 된,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는 농촌 어촌 풍경을 하고 있다. 넉달동안 마닐라의 매연과 빌딩속에서만 갇혀있다가 이사벨라로 가는 길 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보니 하마터면 필리핀을 제대로 못보고 갔겠구나 싶었다. 묵고 있던 숙소가 수녀원이었던게 인연이 되었을까. 하필 사회운동에 헌신적인 수도회여서 이 수녀들을 따라 나선것이 이사벨라를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이사벨라는 필리핀에서 두번째로 큰 지방이다. 필리핀 경제의 80%가 농업에서 나오므로(필리핀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해외이주노동자들이 보내는 달러를 제외하고) 필리핀은 농업국가라 해야 맞을 것이다. 이중 손꼽는 농업지역이 바로 이사벨라다. 당연 주민들 대부분이 농민이다.

이사벨라에서 내가 접촉한 단체는 가톨릭 교구산하 사회참여행동센터(social action center)로 산하에 정의평화위원회와 여성 농민 청년 그리고 교육분과를 둔 교회단체다. 묘하게도 첫날부터 나는 농민활동가 살인현장에 안내되었다. 방문하기 몇일전 한 마을에 살인사건이 있었다.

프랭클린은( 활동적인 농민활동가,35) 얼마전 치룬 바랑가이 캡틴 선거(우리의 동장에 해당하는데 이곳은 동장도 직접 선거로 뽑는다)에서 캡틴에 당선되었다. 살인사건은 당선 일주일 후 일어났다. 킬러는 밤에 프랭클린의 집에 매복해 있었고 세방을 쏘았다. 프랭클린은 집옆의 강으로 피신에 성공했지만 그의 부인이 그만 머리에 총을 맞고 바로 숨졌다. 그들에겐 3살에서 7살까지의 세명의 자녀가 있었다.

프랭클린의 마을엔 지난 5월부터 군인이 상주해 있다. 이유는 NPA(필리핀 전역에 걸쳐 있는 공산주의 게릴라로 민족주의와 결합한 마오이즘 노선, 1969년 창립, 대체로 농민이 멤버임, 최근 이들을 미국이 외국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발표)를 잡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게릴라는 어제 오늘 있어온 게 아니고 오히려 최근보다 몇 해 전에 더 많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군인들이 온 이유를 지방정부와 농림부가 강행하고 있는 개발프로젝트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묘하게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개발프로젝트에 해당되는 마을들 모두 군대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마을에 머물면서 프랭클린같은 농민활동가 암살사건이 늘고 있다. 더불어 총을 가진 군인들에 의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그러나 군대에선 민간인을 살해하고도 '그들이 게릴라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이사벨라 농민들 많은 수가 자기 땅이 없다. 필리핀 농민운동연합(KMP)에 따르면 필리핀 농민의 빈곤의 가장 큰 원인은 자기땅이 없다는 점이다. 이 역사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스페인이 물러간 뒤 그들의 땅을 소수 필리핀 귀족과 정치인들이 그대로 차지한 것이다. 농민들은 자기 조상 대대로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역시 조상대대로 땅문서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인 시절부터 무장혁명의 주최는 늘 농민이었다. 귀족들이 차지하지 못하고 스페인이 남기고 간 땅은 퍼블릭랜드(공유지)라 불린다. 정부가 땅의 소유자인 셈이다. 정부는 이 퍼블릭랜드에 농민들에게 농사지을 '허가서'만을 준다. 그러다 시시때때로 '개발프로젝트'를 들이대며 농민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간다. 지난 84년에도 필리핀 제일 거부인 코후앙코(산미겔 맥주사 회장)와 이사벨라 지방정부가 집단농장을 만들려 시도했다가 이사벨라 교회(인구의 87%가 가톨릭인 필리핀에서 교회의 힘은 크다)와 농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포기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코후앙코는 '카사바 프로젝트'를 들고 다시 이사벨라 농민들을 찾아왔다. 농민들은 이 프로젝트와 싸우면서 군인들에게도 암살당하거나 납치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최근엔 그나마 소작도 없어지고 농민들은 대규모 플란테이션의 농업노동자가 돼 가고 있는 추세다. 비자야스 섬(필리핀은 루존 비자야스 민다나오 세 섬으로 이뤄져 있다)의 네그로스 옥시덴탈은 대규모 사탕수수 플란테이션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일하는 농업노동자 하루 일당은 100-150페소(2600원, 2-3 달러)다. 노동경제연구소 이본(Ibon)에서 발표한 6인 기준 가정의 하루생활비는 480(지방 기준, 마닐라 540) 페소다.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가정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7-10살의 어린이들이 사탕수수 밭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어린이들이 하루 6시간 일하고 받는 임금은 10페소(260원)라고 한다.

자식들 학교에 보내기 위해, 내년 농사 씨앗 비료 농약을 사기 위해 20-40%의 사채를 얻어쓰는 농민들에겐 느는게 빚이다. 자기 땅이 있어도 농업생산물 값이 너무 낮아 농사를 지을수록 빚은 는다. 빚때문에 집마저도 빼앗기고 떠나야 하는 농민들, 군인들의 횡포에 의해 하나뿐인 까라바오(필리핀에만 있는 버팔로, 기계화가 안된 농사에서 우리나라 소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귀한 존재)를 잃은 농민들, 가족이 살해당한 농민들. 이들은 결국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가 된다.

엔피에이가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지난 8월 미국이 엔피에이를 해외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발표하고 이어 필리핀 현 아로요 대통령이 동의한다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 수를 1만2천여명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인권단체 까라빠딴(Karapatan)에 따르면 그 수가 현재 늘고 있는 추세다. 농민들 노동자들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메트로 마닐라를 제외한 지방에 밀리터리제이션(Militarization, 군대 상주)이 늘고 있다. 더불어 농민 노동활동가들에 대한 암살과 납치도 늘고 있고 이를 조사하러 간 인권단체 활동가에 대한 암살도 벌써 몇 건 발생했다. 그러나 어떤 미디어도 이를 보도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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