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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난달 18일, 7호선 기관사였던 정 모 씨가 자살했다. 지난 1월, 6호선 기관사로 일하던 황 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개월 만이었다. 이로써 올 해만 벌써 두 명의 도시철도 기관사가 자살했고, 지난 10년 동안 8명의 기관사가 목숨을 끊었다. 기이한 것은 자살한 기관사가 모두 서울도시철도 소속 기관사였던 점이다.

 

 

왜 지하철 5, 6, 7, 8호선을 운행하는 도시철도 기관사들만 유독 줄초상을 치르게 됐을까. 의문은 의혹이 됐고, 얼마 가지 않아 사망한 기관사들이 모두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황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노조와 시민사회는 반발했다. 기관사들을 극도의 스트레스와 사망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회사의 통제와 폭압적 조직문화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공고하게 굳어져버린 공사의 조직문화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관사들은 매 해마다 선로에 몸을 던졌고, 지금도 매일 어두컴컴한 죽음의 레일을 달린다. 서울시청 앞, 22일째 이어지고 있는 노조의 철야농성장에는 ‘사람이 희망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현수막이 을씨년스럽게 펄럭이고 있다.

 

외로움과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며 ‘암흑의 구간’을 달리는 기관사들

 

“사람이 한 명 씩 죽을 때 마다 환경은 아주 조금씩 달라져요. 근데 그런 변화가 너무 미미하니까 현장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누구 한 명 더 죽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포자기의 목소리도 나와요. 너무 조금씩 변하니까요. 마치 기관사들의 죽음을 부르는 것 같아요.”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A씨는 동료 기관사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올 해만 벌써 두 번째였다. 기관사들은 가까운 동료들의 죽음을 보며 자신들의 죽음에 둔감해졌다. 이제 더 이상 도시철도 기관사들에게 죽음은 생소한 단어가 아니었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동료의 속내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A씨는 “제가 모든 기관사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이곳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감도 있었겠죠”라며 사망한 동료 기관사들의 심정을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A씨 역시 최근 들어 부쩍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들어온 직장이지만 현장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관사로 취직하기 전에 각종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부터 노가다까지 뛰어본 그였다. 하지만 기관사 일은 그 어떤 업무보다 고되고 열악했다. 현장 전반에 감도는 무기력증도 그의 마음을 좀먹고 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힘들어요. 정말 양심껏 이야기해서 공사장에서 중장비 업무를 할 때보다 힘들어요. 피로도 많이 쌓이고 무기력하기도 하고요.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매일 어두운 터널을 달리거든요. 터널은 그냥 검은 색이 아니 예요. 굉장히 기분 나쁜 회색빛의 어둠이죠. 매일 그 속에 있는 거예요. 햇빛은 출근하기 전날 본 게 다예요.”

 

서울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업무 환경은 이미 고약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이 운행하는 구간은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암흑의 구간’이다. 서울메트로와는 달리 1인 승무제로 운영되는 터라 업무량도, 외로움도 두 배다.

 

서울메트로에서 근무하는 기관사 B씨는 “자살하는 기관사들은 모두 5, 6, 7, 8호선을 운행하는 도시철도 소속 기관사”라며 “메트로는 2인 1조로 근무하는데 도시철도는 1인 승무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이 심하다고 들었다. 특히 지상구간이 없어 골감소증이나 우울증에도 많이 시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상 구간이 있어 햇볕을 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정말 달라요. 제가 아는 동기를 따라 메트로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지상 구간도 있고 창문도 열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지하 구간이라 창문도 열 수 없고 공기도 답답하죠.

 

단독승무에 따른 부담감도 커요. 예를 들어 2시간 반을 운전하고 나서, 약 15분 정도 회차 시간이 있거든요. 그 때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에요. 하지만 그 시간에 쉬고 있으면 승객들은 왜 문을 열지 않느냐고 항의해요. 2인 승무의 경우 서로 봐 주면 되니까 휴식이 가능하거든요. 여유도 있고요. 그런데 저희는 혼자 쉴 여유가 없어요. 운행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각종 민원으로 압박, 봉사활동 경쟁 등 ‘폭압적 조직문화’

 

도시철도에서 승무직군은 그야말로 ‘기피직군’으로 낙인찍혀 있다. 열악한 업무환경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각종 민원 등의 압박과 폭압적 조직문화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메트로의 경우 승무직군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기관사들이 전직 신청서를 제출하는 사람이 많죠. 우리는 (다른 직군으로) 가고 싶다, 보내달라고 해요. 한 사업소의 경우 198명 중 90명 정도가 전직 신청서를 내기도 했어요.

 

한 선배 기관사는 전직 이후 ‘내가 기관사를 하면서 잃어버린 세월을 살았구나. 10년간 내 인생을 빼앗겼구나’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전직 신청이 모두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죠. 도시철도에서는 기관사가 메리트가 없고 특수성을 보장받지 못하니까 이쪽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없으니까요”

 

▲[출처= 공공운수노조연맹]

 

공사는 승객들이 제기한 각종 민원으로 기관사들을 압박한다. 기관사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 민원도 곧 ‘실적’으로 반영된다. 도시철도에서 기관사로 일하다 해고된 C씨는, 회사가 승객의 민원을 기관사들의 ‘통제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승객들한테 춥다, 덥다 하는 냉난방 민원이 많이 들어와요. 하지만 정부의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객실 내에 셋팅이 돼 있는 온도가 있거든요. 기관사가 마음대로 온도 조절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도 냉난방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며 그것을 가지고 실적 관리를 해요. 운행 중에 민원이 몇 개가 들어왔다며 기관사한테 책임을 묻는 거죠. 기관사의 권한에서 벗어나 있는 민원으로 실적을 관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회사 입장에서는 기관사가 다른 집단근무를 하는 사람들보다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적기 때문에, 이런 것을 가지고 기관사들을 통제하는 거죠”

 

기관사에게 업무 이외의 ‘봉사활동’을 강요하는 관행도 심각했다. 개인별로, 각 사업소별로 경쟁을 시켜 업무 외의 시간을 고스란히 외부 봉사활동으로 바쳐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회사의 압박과 동료 간의 경쟁은 심적인 스트레스를 부추겼다. 노조의 반발로 예전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조직차원의 은밀한 압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원래는 1인당 1년에 12시간의 봉사활동을 채우는 거예요. 더 많이 한다고 가점이 주어지거나 하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개인별로, 사업소 별로 과도한 경쟁을 시켜요. 저희사무소의 경우 봉사활동 1등 한 사람은 1년간 9백 여 시간의 봉사활동을 했더라고요. 어느 사무소는 ‘우리 사무소가 제일 저조하다’며 퇴근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데리고 가서 봉사활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재문 서울도시철도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문제제기하기 전까지는 사내전산망에 봉사활동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공개 해 놨다”며 “아직까지 내부적으로 등수를 매겨놓은 데이터를 만들어 놓고 진급에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A씨의 경우 “기관사들이 계속 자살하면서 문화가 조금 바뀌기는 했다”며 “하지만 작년 같은 경우에도 분위기를 몰아가며 은근히 압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재문 위원장은 “올 초 돌아가신 황선웅 기관사의 경우, 스크린 도어 끼임 사고 이후 조직적으로 왕따를 시켰다”며 “한 승무역에서는 기관사가 운행 중 실수를 저질렀다며 관리자가 따귀를 때린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복수노조 설립 이후, 악질적 노무관리 심화
‘예산’ 핑계로 기관사 사망 대책 수용 거부

 

폭압적 조직문화는 복수노조 설립과 함께 그 정도가 악화됐다. 2011년 서울도시철도에 복수노조가 설립되면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상대로 전 방위적인 노조 탈퇴 압박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갈라졌고, 현장 분위기는 경색됐다.

 

 

“황선웅 기관사가 사망한 뒤, 저 쪽 노조에 있었던 동기 한 명이 다시 민주노총으로 가입했어요. 자기 동기가 죽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노조 활동 하면 안 되겠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관리자를 통해 피드백이 왔어요. 다시 저 쪽 노조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모욕적인 상황을 당했다는 걸 알았죠.

 

신입 직원들을 상대로 회사와 어용노조의 공작도 만만치 않아요. 예전에는 신규자들이 임용장을 받으면 곧바로 사무소로 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본사에서 자가용으로 신규자를 데리고 가서 식사를 하며 노조 가입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나서 소장실에 앉혀 놓고 어용 지부장을 불러다가 가입 원서를 줘요. 사무소 전체에서 노조 탈퇴 압박이 심해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전화하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읍소하고, 가관도 아니더라고요”

 

A씨 역시 “우리 사업소에서는 강의실 같은 곳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교육시간이라는 명분으로 기업노조 지부장이 와서 ‘나를 믿고 가자’며 노조 가입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노조가 폭로한 문건에 따르면, 회사는 직원 1,266명을 노조 성향에 따라 A/B/C등급으로 구분해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노조의 선거 당시 노동자들의 투표권 여부과 집행부 경력, 성향 등을 분석한 문건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회사가 노조 선거까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이 같은 노동자 통제, 관리 및 노조탄압 등은 기관사들에게 심적 외상을 남기고 있다. 노조를 비롯한 전문가들 역시 도시철도공사의 조직문화가 기관사 자살의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이재문 위원장은 “작년 3월 이재민 기관사가 사망한 뒤, 7월에 최적근무위원회가 발족했다”며 “당시 위원회 전문가들은 다른 지방의 지하철도 1인 승무제고, 지하노선 환경도 같은데 왜 도시철도만 기관사 자살이 발생하는 지를 조사했다. 결국 악질적 조직문화에 따른 심적인 압박, 스트레스가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사와 서울시는 기관사 처우개선을 위한 기본적인 합의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다. 노조와 도시철도공사는 올 2월, ‘기관사 처우개선’과 ‘도시철도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최적근무위원회’ 등에 대한 노사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공사 측이 처우개선과 관련한 주요사항을 다수 이행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공사는 예산 부담을 이유로 최적근무위원회가 발표한 ‘서울지하철 종사자 최적근무를 위한 권고안’조차 수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문 위원장은 “최적근무위원회에서는 2인 승무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경우 예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특정 러시아워 시간에 시범 실시하는 방안을 내 놓았지만 공사는 이것마저 거부하고 있다”며 “노조는 최적위 권고안 수용, 기관사 처우개선 미합의 사항 이행, 책임자 처벌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투쟁의 수위를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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