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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편집자 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기획취재한 '후쿠시마를 넘어 탈핵으로'를 참소리에서도 연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 쓰나미보다 거센 방사능 오염 후유증
② [기고] 시바타 기요시 신부 (예수회)
③ 원전 피난민, 누가 그들의 고향을 빼앗아 갔나
④ [인터뷰] 하야시 히사시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 사회사도직위원장)
⑤ 원전 없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⑥ [인터뷰] 사와무라 가즈요 (핵발전소 필요없다 시모노세키 모임 대표)

 

2011년 3월 11일 저녁, 이시가와 타카코(가명) 씨는 지진 해일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접하자마자 피난을 결심했다. 그가 살고 있던 요코하마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270㎞ 거리였는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시가와 씨의 가족은 3일 뒤 요코하마를 떠나 교토와 오사카의 친구 집에 머물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1,060㎞ 떨어진 후쿠오카 현에 정착했다. 그리고 1년 후 아예 필리핀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시가와 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피난 생활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피난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국가에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일로 “이제 일본인은 정부의 말을 믿지 말고 항상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년 반 동안 방치된 지진과 쓰나미의 잔해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자연재해의 파괴력은 일본 동북지역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원전 사고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거리를 따지지 않았다. 거주지가 방사능 물질에 오염돼 피난민이 된 사람도, 여러 이유로 후쿠시마에 남거나 혹은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언론과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해 상황을 지켜봐야했던 타지역 사람들에게도 상처는 각자의 몫에 따라 평등하게 가해졌다.

 

▲후쿠시마 현 이이다테 촌에 위치한 피난민 거주시설.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는 “이곳을 지나면서 빈민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케나가 오사무]

 

후쿠시마 현 피난민 15만 명… 자살자 1,648명
“나는 무덤으로 피난을 간다” 유서 남기고 떠난 이도

 

2013년 10월 현재 동북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현의 피난민 숫자는 15만 명에 이른다. 정확히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로 인한 피난민이다. 원전 사고가 없었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진즉 고향으로 돌아가 조금이나마 예전의 삶을 되찾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후쿠시마 현에서는 1995년 고베대지진이 발생하고 3개월 동안 구조와 복구 작업에 120만 명이 자원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주민들조차 피폭의 위험 앞에 선뜻 발을 내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난민 중 일부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많은 수는 후쿠시마 현과 주변 지역에 남아 정부가 제공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울타리 안에 공동주택을 지어 수십 가구가 생활하는 형태의 피난민 거주용 가설주택은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피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난민들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피난민 중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올해 8월까지 관청에 신고된 숫자만 1,648명에 이른다. 후쿠시마 현에서 2011년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해 사망한 1,599명을 넘어선 숫자다.

 

이에 대해 수에다 카주히도 <한겐바츠(핵발전소 반대) 신문> 편집장은 “간신히 지진과 쓰나미를 피해 살아남았지만 이후 힘든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무덤으로 피난을 간다’고 유서를 남긴 피난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현 나미에 정 부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케나가 오사무]

 

정부가 제시한 피폭 선량 한도, 믿을 수 있을까?

 

일본 정부가 정한 공중 피폭 실효 선량 한도는 연간 20밀리 시버트(m㏜) 이상이다. 본래 사고 발생 직후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20㎞ 내 지역에서만 적용됐던 기준인데,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서야 방사성 물질의 확산이 거리가 아닌 유출 당시 풍향과 기후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제야 대피 기준을 변경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대피 기준이 변경된 것을 공지하지 않은 채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피난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때문에 일부 피난민들은 원전에서 거리는 멀지만 오히려 자신이 거주하던 곳보다 더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에서 장기간 피난 생활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서쪽으로 40㎞ 떨어져 있는 이이다테 촌(村)이 그런 지역에 속했다.

 

이렇게 정부와 전력회사가 사고 이후 보여준 무능력한 대응과 정보의 불확실성은 거주제한구역 밖에 살고 있는 후쿠시마 현 주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특히 정부가 공중 피폭 실효 선량 한도로 정한 ‘20밀리 시버트’라는 기준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 따르면, 연간 20밀리 시버트에 피폭되었을 때 암에 걸려 사망하는 비율은 1990년 권고 기준으로 10만 명 당 100명이다.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00년에 발표한 수치는 10만 명 당 200명에 이르렀다. 이를 2011년 기준 OECD 회원국의 평균 암 사망률인 10만 명 당 210.5명과 감안하면, 공중 피폭 선량이 연간 20밀리 시버트인 지역에서는 암 발생 사망률이 두 배 가까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에다 편집장은 “체르노빌의 경우 거주제한구역의 공중 피폭 실효 선량 한도가 연간 5밀리 시버트 이상이고, 1밀리 시버트 이상에서는 거주자에게 피난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왜 일본은 체르노빌보다 약한 기준을 적용해 높은 방사능 오염지에서 사람들을 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힘내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대로 남겨진 후쿠시마 현의 한 학교 칠판에 졸업생들이 찾아와 남긴 메시지가 적혀 있다. 자위대 군인들도 “끝까지 후쿠시마를 지키겠다”는 글을 남겼다. [사진 제공= 이케나가 오사무]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 방사능 영향,
피폭 불안감 크지만 감당은 개인의 몫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현 당국은 지진 당시 후쿠시마 현에 거주하던 18세 이하 청소년 36만 명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현민 건강관리조사 검토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19만 3천 명을 검사한 결과 18명이 갑상선 암 확진 판정을 받았고, 25명이 의심 판정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18세 이하 소아갑상선암 발병률은 100만명 당 1~2명 꼴로 알려져 있는데, 후쿠시마에서는 이보다 발병률이 100배 높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거주제한구역 이외 지역 거주자는 피난을 선택하더라도 정부나 도쿄전력의 지원 없이 개인이 알아서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자발적 피난민에 대한 지원 내용이 포함된 피해자 지원법이 작년 8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국은 시행 방침을 세우기 위한 주민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고, 그나마 1년이 지나서야 발표된 기본 방침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후쿠시마 현 내 행정구역 중 33개 지역만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겐카이 원전 폐지 소송과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 소송에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케나가 오사무 변호사는 “정부와 전력회사가 한 편이 돼서 일방적으로 구제 기준을 정하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선별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원전 사고 이후 군마 현에서 후쿠오카 현으로 이주한 후지이 리코(가명) 씨는 이웃들에게 차마 피난을 간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단지 ‘이사를 가고 싶다’고만 전한 채 살던 동네를 떠나왔다. 원전 사고와 방사능 유출에 대한 보도 통제와 정보 조작 속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피난을 선택한 이유를 그대로 밝히는 것조차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후지이 씨는 “이웃들에게 정직하게 말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분노와 나 혼자만 위험을 피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주변에 피난민으로서의 고립감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속내를 밝혔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후지이 씨와 같은 이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땅으로 흘러들며 오염 면적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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