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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편집자 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기획취재한 '후쿠시마를 넘어 탈핵으로'를 참소리에서도 연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 쓰나미보다 거센 방사능 오염 후유증
② [기고] 시바타 기요시 신부 (예수회)
③ 원전 피난민, 누가 그들의 고향을 빼앗아 갔나
④ [인터뷰] 하야시 히사시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 사회사도직위원장)
⑤ 원전 없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⑥ [인터뷰] 사와무라 가즈요 (핵발전소 필요없다 시모노세키 모임 대표)


지난 여름, 날마다 전력 사용량이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정부를 비롯한 온 국민이 블랙아웃의 공포에 전전긍긍하는 동안 줄기차게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공익광고 하나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당신은 달리는 발전소, 전등불을 끄는 당신은 끄는 발전소, 에너지를 절약하는 당신은 대한민국 발전소입니다.” 전기가 부족하니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절전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발전소’라고 표현한 것인데, 지난 9월 말과 10월 초 취재한 일본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실제로 시민들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는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민이 직접 만드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효고 현에 위치한 다카라즈카 시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스미레 발전소가 나온다. 흔히 발전소라고 하면 위압감이 들 정도로 커다란 규모에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설비들로 가득 찬 건물을 연상하겠지만, 스미레 발전소는 그렇지 않았다. 야트막한 산 중턱에 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검은 태양광 패널 51개를 깔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발전소 간판마저도 나무판자에 그냥 손 글씨로 쓴 것이었다.

 

▲스미레 발전소 대표사원 이노우에 야스코 씨가 전력 생산과 판매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올해 1월 16일에 첫 가동을 시작한 스미레 발전소는 1981년에 결성된 ‘원자력 발전의 위험을 생각하는 모임’을 모태로 설립됐다. 지역에서 핵발전 반대운동을 벌여오던 시민들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충격을 받아 직접 안전한 에너지를 만들어 이용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책임은 도쿄전력과 정부에게 있겠지만, 30년 동안이나 핵발전 반대운동을 해온 우리 같은 시민들이 결국 핵발전을 막지 못한 측면도 있으니까요.”

 

합동회사로 운영되는 스미레 발전소의 대표 사원인 이노우에 야스코 씨는 발전소를 설립한 계기를 설명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부터 꺼내들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대안을 만들려는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모임 구성원들의 뜻이 자연스레 모아진 거죠.”

 

그래서 32명의 시민이 각자 10만 엔씩을 출자해서 320만 엔의 자본금을 모았다. 10년 뒤 11만 엔을 돌려준다는 조건이었다. 발전소를 세울 토지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던 시민이 연 3만 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임대해주었다. 모임 회원들이 부지를 정리하고 태양광 패널을 구입해 설치하는 작업까지 모두 직접 도맡아 함으로써 설치비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설치된 51개의 태양광 패널에서는 시간당 11.16㎾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된 전기는 지역의 전력회사에서 고정된 가격으로 전량 구입한다. 일본에서는 재생에너지지원법에 따라 전기 생산량이 10㎾ 이상인 재생에너지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전력회사가 전량 구매하도록 되어 있다. 스미레 발전소의 경우에는 지난 9월 한 달간 4만 3천 엔(한화 약 46만 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주민들이 에너지 결정권을 갖는 것이 중요”

 

물론 스미레 발전소를 운영하는 목적이 단지 매출을 늘려 수익을 거두는 데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국가나 거대 전력회사가 생산하는 전기의 수동적인 소비자였던 시민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의 적극적인 생산자가 된다는 게 가장 큰 의미다. 또한 이런 발전소가 늘어날수록 핵발전에 대한 의존도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모임 회원들이 앞으로 1호기에 비해 5배가 더 늘어난 규모로 2호기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이며, 일본 곳곳에서 비슷한 시도들이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 연구소’의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은 이와 관련해 “자신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에 대해 주민들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한 전기를 통해 얻은 수입을 어떻게 배분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함께 상의하고 결정하는 것은 단지 에너지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이상의 사회적 의미, 즉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재앙을 단지 불행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의 출발점이자 교훈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사카이 시(市)를 기반으로 하는 ‘에스생활협동조합’ 내에 구성된 탈원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2011년 10월 핵발전의 위험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조합원들이 꾸린 공부 모임으로 시작된 위원회는 탈핵운동에 많은 조합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사카이 시에 거주하는 약 3백 명의 피난민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 보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탈원전위원회 나가하시 마리코 위원은 “후쿠시마 사건 이후 핵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주부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한 게 출발이었다. 생협에 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런 모임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레 발전소 전경. 스미레는 일본어로 ‘제비꽃’을 뜻한다. 발전소가 위치한 다카라즈카 시를 상징하는 꽃이다. ⓒ한수진 기자

 

폐식용유로 만든 바이오 디젤 연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관심 높아져

 

한편, 기존에 계속되어 오던 대안 에너지에 대한 관심 또한 늘고 있다. 사카이 시의 ‘노년 행동 협회(Action Senior Union)’의 바이오 디젤 연료 생산공장과 전국적인 차원의 ‘유채꽃 프로젝트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영어 앞 글자를 따서 흔히 ‘아수(ASU)’라고 불리는 노년 행동 협회 구성원들은 모두 70~80대의 은퇴한 어르신들이다. 이들은 가정에서 버리는 폐식용유를 수거해 디젤 엔진용 연료를 생산한다. 매달 폐식용유 약 1,700리터를 수거하는데, 이중 소량의 불순물을 뺀 95~97%를 연료로 만들어 사카이 시의 쓰레기 수거 차량을 운행하는 데 쓰이고 있다.

 

연료 생산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참기름, 콩기름, 올리브유 할 것 없이 일단 수거된 식용유를 글리세린과 수산화칼슘, 메탄올과 함께 기계에 넣어 불순물을 분리한 뒤 물로 세척하면 깨끗한 바이오 디젤 연료가 된다. 아수 모임 회원 이와이 히데지 씨가 완성된 연료가 담긴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열더니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연료에서는 참기름과 콩기름 사이의 고소한 향이 났다. 이 연료를 차량에 넣으면 1리터에 3㎞를 달릴 수 있는데, 5년째 쓰레기 수거 차량 네 대를 주 5일 운행해왔지만 연료로 인한 고장은 없었다고 한다.

 

▲아수 모임 회원 이와이 히데지 씨가 바이오 디젤 연료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왼쪽부터) 폐식용유, 불순물 분리 단계, 세척 단계, 완성된 바이오 디젤 연료 ⓒ한수진 기자

 

다만 글리세린이 섞인 불순물의 처리가 고민이라는데, 오사카 부립대학 연구팀에 보내 식당 잔반을 발효시키고 쓰레기 소각장의 첨가물로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폐식용유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뤄져, ‘가정 유전(油田) 모임’ 같은 자발적인 공동체들이 생겨난 것도 부수적인 효과였다.

 

현재 일본 전국에는 아수처럼 폐식용유로 바이오 디젤 연료를 생산하는 단체나 업체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운영하는 공장만 해도 700군데 가량 된다고 한다. 그 중 아수는 회수량과 생산량을 기준으로 할 때 전국에서 세 번째 정도 되는 규모로 성장한 상태다.

 

‘유채꽃 프로젝트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그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됐다. 1976년 시가 현에서 시작된 폐식용유로 친환경 비누를 생산하는 이른바 ‘비누 운동’을 모태로 한 유채꽃 프로젝트 네트워크는 오늘날 휴경지에 유채꽃을 재배해 식용유를 생산하고, 폐식용유를 수거해 세제와 바이오 디젤 연료를 생산하는 단계로 성장했다.

 

게다가 비누 운동이 시작된 계기 중 하나가 시가 현의 상수원인 비와호 부근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 폐기 운동이었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소식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012년 8월부터는 후쿠시마에서 유채꽃 재배를 시작했다. 유채 씨앗을 기름으로 짜면 찌꺼기에만 방사능 물질이 남을 뿐 기름에서는 전혀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디어 올해 5월에 처음 유채꽃이 피어서, 7월에 유채를 수확해 이곳으로 가져왔습니다. 10월 중순에 첫 기름을 짤 예정인데, 농지를 내준 주민들이 먼저 그 기름을 먹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식용유로 만들어서 나눠줄 생각입니다.”

 

유채꽃 프로젝트 네트워크의 아야코 후지이 대표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스크린에 띄운 사진에는 지진과 쓰나미의 잔해를 걷어내고 유채꽃을 심은 들판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에는 ‘미리 알다’, 즉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겐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훔쳐서 가져다줄 프로메테우스는 없다. 미리 알고, 먼저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이들이 어쩌면 우리 시대의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유채꽃 프로젝트 네트워크의 생산시설을 방문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활동가들이 아야코 후지이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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