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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쫓겨나보니, 서럽네”

문주현( 1) 2013.07.09 18:30 추천:1

7월 5일 오전 전북도청 기자실. 이날 오전에는 전라북도 행정부지사가 전결로 선임한 남원의료원 새 원장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남원의료원은 최근 ‘제2의 진주의료원’으로 불리며 지역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지방의료원의 적자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인건비 절감 노력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지난해 노조와 병원을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병원이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고 나선 것. 이로 인해 파업과 여러 차례 중재가 있었지만 최근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진주의료원처럼 폐업을 하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 심심찮게 제기될 정도다.

 

이 때문에 노조는 7월 말 임기가 끝나는 정석구 원장의 재임에 반대하고 있다. 급기야 2일에는 이용길 남원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이 남원 공설운동장 40m 조명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전북도의원 2명도 현 원장 재임에 반대하며 4일부터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5일 열릴 예정이던 전라북도 행정부지사의 발표는 앞으로 남원의료원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우선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발표였다. 작년부터 남원의료원 문제를 취재하던 기자도 당연히 발표가 예정된 전북도청 기자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기자실 문을 열고 취재 수첩을 꺼내 취재를 준비하던 순간, 나가 달라는 말을 들었다.

 

“도청 기자실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북도청 지역 기자실에 출입할 수 있는 회원사 소속 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부지사 결과 발표는 취소됐고, 기자들이 남원의료원 문제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있어 담당 국장을 부른 자리라는 것이다. 최소한 행정부지사의 결과 발표 취소에 대한 이유라도 듣고자 했지만, 그 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회원사 소속이 아닌 기자들은 어떻게 취재를 하라는 말이냐며 항변도 했지만, 전북도청 지방지 출입기자단 간사라는 전북00일보 남00 기자는 “자체 취재를 해라. 기자실에 못 들어올 뿐이다”며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출입기자가 아닌 기자들은 다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기자들이 동의한 룰이지 차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간사는 “전북 도내 10여 개 회원사와 비회원사가 다 합의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7년 제정한 ‘전북도청 지역 기자실 운영규약’을 보여줬다. 이것은 기자들끼리 만든 것으로 출입기자들의 취재영역 확보를 꾀하고 기자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만든 것이다. 2007년 당시 이 규약에 서명한 기자들의 명단까지 확인시켜줬다. 그러나 이 규약에 서명한 기자는 고작해야 20여 명이다. 자세히 명단을 확인하려고 사진을 찍겠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충 짐작할 정도다.

 

▲기자들이 정한 '전북도청 지역 기자실 운영규약'. 이 규약에 따라 한국신문협회, 방송협회, 기자협회 회원사가 아닌 언론사 기자는 기자실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전북도내 지역지만 20개가 넘는다. 그런데 고작 20여 명이 사인한 규약을 두고 모두가 합의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것도 이미 7년 전의 합의였다. 어쨌든 약 20여 분간 이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결국 이날 담당국장과 기자들의 간담회는 무산됐다. 내가 기자실 출입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한 기자는 담당국장에게 “조만간 시간을 다시 정하고 연락하겠다”고 언질을 줬다.

 

폐쇄적인 기사실 제도, 권언유착 만들어

 

일부 기자에게만 허용하는 기자실 출입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일부 기득권 언론들과 권력이 서로의 이해에 따라 암묵적으로 이뤄진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은 꽤 오랫동안 제기됐다. 권력은 기자실을 통해 언론플레이를 유도할 수 있으며 정보를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기자실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보다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부스 제공 등으로 기사 송고에 편의도 받을 수 있다. 또한 정기적인 고위직 공무원들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소수 독점적인 정보 확보에도 용이하다. 

 

결국 기자에게 편하게 기사를 쓸 수 있는 장점이 있겠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는 표준화된 기사와 행정 및 권력 지향의 보도로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 작년 2월 시민단체가 전북지역 지자체들이 업무추진비를 밥값과 선물구입비 등으로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시민혈세 낭비를 지적하는 기자회견까지 열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일부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한 사례가 있어 전북민언련의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했다. 

 

또한 각종 촌지수수 의혹과 엠바고, 무료 해외연수 동행 논란 등은 기자실을 비리와 담합의 중심지로 비춰질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전라북도는 2010년 전북도청 기자실 돈 봉투 사건, 2011년 전주시청 기자실 돈 봉투 사건 등 기자실을 중심으로 벌어진 비리로 해 마다 시끄러웠다. 물론 이들 사건은 제대로 보도가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이런 일들은 기자실이 외부에 투명하게 개방된 곳이 아닌 소수의 특정 집단에 의해 밀실 운영되어왔기에 빚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4월 4일에는 한 인터넷신문이 전북의 한 공공기관 임원과 간부의 워크숍 도박 의혹을 보도하면서 일부 신문사와 방송사가 이 사실을 취재했지만, 한 고위 임원이 신문사 등을 방문한 뒤 보도 방침을 철회한 사실을 보도한 바도 있다.

 

이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과연 기자실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20여 분간의 공방, 눈물 나게 서러운 이유는

 

나는 이날 간담회에 ‘취재의 자유와 보장’, ‘기자실은 도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것이다’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모든 것이 기자들끼리 만든 ‘규약’에 흡수됐다. 20여 분간 간사와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공방이 오가는 동안 자리에 있던 약 10여 명의 기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날 간담회는 취소되고 침묵을 지켰던 기자들은 모두 자리를 떴다. 내가 자리를 비키겠다고 했지만, 20여 분이 지났고 다들 바쁜 취재 일정으로 간담회는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가장 서러웠던 것은 기자들의 침묵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노동 현장 등에서 안면이 있었지만, 마냥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내가 괜히 떼를 쓰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기자들의 눈이 ‘별 것도 아닌데 그냥 좀 나가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눈물 나게 서러운 순간이었다. 계속되는 간사 기자의 나가 달라는 요청과 내 자존심 앞에서 흔들리는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기자실 간사와 함께 내게 나갈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한 기자는 “지금은 보도계장이지만 3년 전에 몸담고 있던 신문사가 회원사가 아니라서 약속을 하고 스스로 (기자실을)나갔다”면서 “심정도 알고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약속이고 룰이기에 지켜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구시대적 관행과 독선적인 권력을 누구보다 날까롭게 꼬집어야 할 언론인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6월 18일 전북도의회 앞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이유로 도의회는 청사 정문을 봉쇄했다. 이날 기자는 신분을 밝히고 청사 방문을 요청했지만, 출입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바 있다.

 

“세상에 대한 불신, 어쩌면 언론이 심어준 것은 아닐까?”

 

작년과 재작년 버스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 등으로 오랫동안 파업을 벌였다. 당시 버스노동자들은 거리에서 또는 고공농성을 통해 온 몸으로 자신들이 당했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언론사는 소수였다. 한 언론사 기자는 왜곡보도로 노동자들이 단체로 보낸 항의문자를 받기도 했다. 당시 기자로서 한편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일만 하며 권력과는 동 떨어져 있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며 기자들에게 많은 의지를 한다. 그런 기자들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보다는 파업을 두고 ‘진저리 난다’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자신들의 파업을 보도할 때 느끼는 감정은 분노 말고는 없을 것이다.

 

버스파업이 길어지고 1년 이상 일을 하지 못한 노동자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면 여김 없이 듣는 소리가 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말과 함께 세상에 대한 강한 불신이었다. 이 세상에 대한 불신을 심어준 것은 바로 언론이 아니었을까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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