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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강정 해군기지 군산오름에서 제주의 아픔을 보고 오시길 바랍니다.

채민(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 1) 2013.02.12 20:49 추천:5

예전 조선일보의 칼럼 중에 무장한 평화에 대한 글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핵무기와 같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인해 일본이 항복을 했다고 언급하며 말미에 평화 담론이란 뜬구름 잡는 이야기 하지 말고 평화는 무장한 평화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마무리를 하는 글이었다. 당시 그 글을 보며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중 한 장면. 일본군이 이오섬 곳곳에 동굴을 파서 방어진지를 만들고 해안포 등의 무기로 섬에 상륙하는 미군을 공격하고 있다.

 

이오섬 전투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은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처참한 전투 중 하나였던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각각 일본군과 미군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들이다. 두 영화 모두 미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이다.

 

태평양 전쟁 중반을 넘어가며 힘에 부치던 일본은 연합군의 본토 진격을 최대한 늦춰야만 했다. 이에 일본군은 본국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작은 화산섬인 이오섬 전체를 군사기지화 했다. 일본군은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섬에 수십 개의 동굴을 뚫고 진지 공사를 하여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최후의 한사람까지 저항한다는 명령에 따라 방어전을 준비했다. 연합군 역시 일본 본토 진격을 위해 이 섬을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상륙작전을 시작하며 끔찍한 전투가 시작된다.

 

전투 종결 후,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25,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일본군의 경우는 2만 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하며 전멸한다.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참혹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되는 점이다. 두 영화는 그러한 끔찍한 상황에서 죽어가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군인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내낸 전쟁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지만, 전투가 벌어졌던 이오섬의 모습 역시 눈 여겨 보게 되었다. 일본군이 섬의 환경을 이용해 만든 진지에서 기습공격을 하여 많은 연합군 병사들이 숨지거나 부상을 입게 된다. 섬 전체가 기지화 되며 끝까지 저항을 했던 일본군과 이를 제압하기 위한 연합군의 전투는 매번 참혹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숱한 목숨이 사라져가는 장면에 씁쓸해졌다.

 

지난 1월에 강정마을을 방문하면서 몇 년 전에 봤던 이 영화들이 다시 생각났다.

 

 

제주에도 있는 군산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해발 약 334m의 높이의 군산오름은 굴뫼오름으로도 불리는 제주도의 오름 중에 하나다. 맑은 날에 해가 가장 높이 떠있는 시간에 군산오름 정상에 오르면 해수면의 바다 위의 안개가 모두 사라져 한국 최남단 섬인 마라도부터 강정마을의 앞바다까지 훤히 보인다고 한다. 수평선 먼 곳까지 보이는 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수려한 장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 군산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도 남해. 위쪽 사진의 동그라미로 표시된 섬이 강정마을 앞바다에 있는 범섬이다. 아래쪽 사진에는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맑은 날의 정오에 군산오름 정상에 오르면 마라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를 하던 분의 말에 따르면 군산오름을 비롯한 제주도 곳곳의 오름에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이 방어 진지로 사용하던 진지동굴이 있다고 한다. 군사용으로 만든 동굴이라는 말을 들으며 앞서 소개한 두 영화가 불현듯이 떠올랐고, 군산오름에서 돌아와 진지동굴 사진을 찾아보고는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봤던 이오섬의 방어진지나 기지가 진지동굴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제주에 일본군이 주둔했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이오섬과 같은 방어진지를 제주도의 오름 곳곳에 설치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더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

 

 

일본군의 '결7호작전'과 제주도의 군사기지화

 

앞서 언급한 이오섬 전투 이후에도 일본은 연이은 전투에서 패배를 하며 파국을 눈앞에 앞둔 상황에서 본토방어 작전을 실시한다. 그러한 작전 중 하나였던 '결7호작전'에 따라 일본군은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거점으로 삼고 관동군을 비롯한 약 6~7만 명 규모의 병력을 제주도에 주둔시켰다. 이미 일본군은 1930년대 중반에 서귀포시 대정읍에 해군항공대 비행장(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하고 2500여명의 병력과 전투기 25대를 배치하여 중일전쟁의 전진기지로 제주를 활용하고 있었지만 그 같은 대규모 병력이 주둔한 것은 당시 처음이라고 한다. 당시 제주도민이 25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된다.

 

일본군은 대규며 병력을 증원하는 한편, 제주도 전체를 군사기지화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특히 연합군이 제주도를 공격을 할 경우 상륙 예상지점이었던 서남부에 각종 군사시설 건 열을 올렸으며, 당시 제주에 300개가 넘는 오름들의 대부분에 그 같은 진지동굴과 같은 방어진지를 만들고 해안포 등의 무기를 배치했다. 또한 제주도민들을 이러한 군사시설 건설에 강제 동원하여 혹독한 노역을 시켰다. 이렇게 제주도 곳곳의 오름에 공사를 하여 만든 동굴을 진지동굴이라고 하여 현재 유적지로 전해지고 있다. 시간이 없어 군산오름 곳곳의 진지동굴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진지동굴 사진을 보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 이오섬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을 보여주고 있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한 장면. 제주도의 진지동굴들도 이와 유사한 모양을 띄고 있으며, 이오섬 전투에서처럼 무기를 설치하고 상륙한 적을 공격하는 방어진지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만약 일제가 항복을 하지 않고 태평양 전쟁이 장기화 되는 과정에서 연합군과 일본군이 제주도를 두고 격돌했다면 이오섬 전투 못지않은 참혹한 전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포화를 피할 길이 어려운 섬이라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전쟁의 피해는 제주도민에게 고스란히 쏟아졌을 것이다. 

 

노역에 강제 동원되며 식량까지 징발 당했던 제주도민들이 그 경험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데 전쟁의 불길까지 덥쳤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런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와 한라산을 함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그 곳과 거기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며 스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 제주도 서남부 가마오름에 일본군이 구축한 지하요새를 복원한 모습. 이러한 제주도의 진지동굴은 약 3,500여개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진출처 :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http://www.peacemuseum.co.kr) >

 

무장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일본군은 아마도 제주도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며, 제국주의의 수탈이란 본모습을 감춘채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만들 대동아공영권에 너희들의 희생을 바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십년이 흘러 무장없이 평화는 못지킨다는 명목아래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동아공영권과 제주도의 일본군 기지가 평화의 탈을 쓴 착취와 전쟁의 본 모습이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로 무장한 제주도가 발전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 하물며 엉터리 설계, 불법공사,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란 거짓으로 점철된 해군기지는 어떠하겠는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작년 5월에 제주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하와이의 예를 들며 해군기지가 제주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허나 군사기지화로 인해 전쟁의 참화를 겪을 뻔했던 제주도의 역사를 안다면 경솔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하와이가 군사기지로 인해 극심한 생태 파괴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선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강정마을에서 먹었던 달착지근한 양배추의 맛을 떠올리며 대통령 당선인이 제주도의 진지동굴을 돌아보고 양배추와 딸기를 맛보고 평화와 통합을 구상하면 어떨까하는 별스러운 생각을 했다. 제주도의 아픔을 느끼고 무장한 평화는 평화가 아님을 그이 스스로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던 것 같다. 아니 정말로 박 당선인이 군산오름에 올라 제주의 아름다움과 풍요속에 가려진 아픔을 마주보고 알기를 바란다. 제주의 슬픔을 알고 평화를 지키고자 한 것이 죄가 되어 감옥에 갇혀있는 양윤모 선생의 단식이 더 길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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