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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디디에 신부 선종

16일(화) 10시 장례미사 전주중앙성당

황의선( icomn@icomn.net) 2019.04.13 14:48

‘임실 치즈’의 아버지 격인 지정환(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가 13일 오전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8세.

 

193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지신부는 58년 천주교 사제로 서품받고 이듬해 한국행 배에 올랐다. “전쟁의 땅이 희망을 품게 하자”는 이유였다. 잠시 전동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적응을 한 후 첫 부임지인 전북 부안에서 그는 바닷물을 막아 여의도보다 두 배 넓은 30만평의 간척지를 만들었다.

간척에 참여한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지로 나눠줬지만 고리대ㆍ노름으로 부자들에게 그 땅들이 다 넘어가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다시는 한국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지 신부는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64년 두번째 부임지인 임실성당에서 가난으로 불쌍한 삶을 사는 농민들을 대면하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두부만드는 것을 본 지신부는 벨기에서 치즈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벨기에의 부모님으로 부터 2000 달러를 받아 치즈 공장을 세우게 된다.

 

여러번의 실패 끝에 어려움 속에 있는 지신부의 처지를 딱히 여긴 유럽의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노트에 치즈만드는 비법을 적어 알려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69년에 비로소 제대로 된 치즈를 한국 최초로 생산하게 된다. 이후 치즈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주민협동조합에 모두 넘겨주었다. 현재 임실치즈가 지역사회에 끼치는 경제효과는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 임실치즈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만 20여개, 임실치즈를 쓰는 브랜드만 70여개다. 

 

지 신부는 한국의 민주화에도 관심을 기울여 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에도 항거하던 중 체포되어 국외 추방의 위기까지 갔으나 치즈 산업으로 농촌 경제 육성에 이바지 한 그의 공적을 인정받아 추방 명령은 집행되지 않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들에게 나눠 줄 우유를 트럭에 싣고 혼자 광주로 내려갔다. 당시 경찰들을 만나면 '지정환'이란 자신의 이름이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 지랄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할 정도였다고.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84년에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무지개가족 시설을 열었다.

 

2016년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특별귀화를 허가받았다.

 

빈소는 천주교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인 중앙성당이며 입관 예절은 14일 (일) 17시, 장례미사는 16일 (화) 오전 10시 전주 중앙성당에서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의 집전으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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