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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뉴스 7회 전주인권영화제 참관기 - 문정현 신부

편집팀( svmanz@hanmail.net) 2002.11.12 15:47

[편집자 주] <엄마, 나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의 7회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의 기사에 이어 행사기간 내내 영화를 관람하며 남다른 애정을 보여 줬던 문정현 신부가 이번 인권영화제에 참석한 소감을 밝혔다.



“제7회 전주인권영화제”에 연 3일동안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다. 모두가 도쿠멘다리였다. 어느 조직 혹은 감독 단독이 만든 영화들이었다. 전 영화제와 뚜렷하게 다른 것이 바로 많은 독립영화 출품이었다.

영화 감상 후 단 한편도 실망한 일이 없다. 도리어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는 눈, 숨가프게 뛰는 심장을 심어주었다. 웃음, 분노, 슬픔이 나의 온 몸을 휘어 감았다.

그것은 나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작은 수의 관객이었지만 모두 함께 웃었고 함께 분노했고 함께 울었다. “나도 저 현장 속에 있었어야 하는데.”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터지는 말이었다. 한편 죄책감도 없지 않았다. 역사의 현장은 바로 우리 삶의 터전이 아니던가.

대학1, 2학년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인권영화제에 참석했단다. 인권영화제를 선전하는 일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일까지 이들이 다 했다 한다.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저들이 영화를 통하여 당시 그 현장에 데려다 준 사람들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정말 알았어야 할 진실들을 모르고 살았다. 나는 캄캄한 밤 중에 살고 있었구나! 그에 대한 분노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젊은 이들이 나의 눈을 열어주었다. 지금 세상도 이런 젊은 이들이 있구나! 환락가를 방불케 하는 영화관 밖, 대학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 그 만큼 매마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던 사람들은 모두 진지했다. 7년을 이어온 인권영화제는 점점 더 진지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마다 제 각각 현장이 달랐다. 인도 산간의 우라늄 채취의 현장! 그로 인한 오염으로 기형하가 출산되는 가하면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성치못하였다.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우리 나라,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생존권을 위한 결사적 장애인 투쟁!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사북 탄관 노동자들의 절규! 사실 권력자들은 이 절규를 왜곡하여 국민을 속였을 뿐 아니라 권력안보에 이용하였다. ""이른 바 사북사태로 덕을 본 사람은 전주환뿐입니다."" 피를 토하듯 토해내는 사북노동자의 말이다.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 전 국민적 분노다. 그러나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피를 토하며 땅을 치며 오열하는 엄마의 처절함이 나를 짓눌렀다. 이런 현장들이 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수 많은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감각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인권영화제의 선전이 부족했을까? 언론 매체를 통하여 많이 알렸다는데.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의 기회를 놓쳤을까. 다른 사람들, 수 많은 사람들의 삶, 특히 고통받는 삶에 대한 무관심일까? 혹은 기피하는 것일까! 너무도 아쉽다.


-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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