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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뉴스 처벌이 아닌 '인간존엄'에 민감해져야

평화와인권( onespark@chollian.net) 2002.10.07 16:22

내가 다니는 학교는 두 차례나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 화재 참사가 일어났던 군산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소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여학생회장을 맡으면서 그 끔찍한 참사를 보았다.

최근 윤락행위방지법이 아닌 성매매방지법을 제정시키기 위한 여성계와 각계의 활발한 활동을 함께 하면서 '과연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진부한 성매매 '현상'이 어쩌다 한번 언론에 호되게 된서리를 맞지만 정말 성매매 문제가 새삼스러운가, 성매매 문제는 무엇이 해롭고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성매매 문제를 둘러싼 논리와 온갖 말들에서 결국 성매매의 주체는 '여성'인가, 그리하여 불온한 것도 여성이며 차별을 받아 마땅한 것도 '성매매 여성'이라는 가해자 아닌 가해자가 되어 문제의 본말이 전도되어 온 사실을 발견한다.

성매매 폭력, 남성의 일상 여성의 유린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은 돈을 주고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성적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성매매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 '여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남성의 정체성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구성되지 신체적 기능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남성들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대상화된 육체로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력이나 성적 욕망은 오히려 당연시되거나 장려된다.

이와 더불어 남성은 지배적인 역할에 적합하다고 인정된다. 반면에 여성은 하고 있는 일이나 업적에 따라 평가되기에 앞서 신체적 기능에 따라 '여성'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여성'이란 남성에 의해 점유되고 취득, 소유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이중 규범의 사회에서 여성이 성적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남성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성매매 여성은 그렇게 취급되고 그렇게 대하기를 원하는 남성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성매매 여성은 무엇을 '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한다'는 자체로 비인격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처벌 위한 법률,
여성권에 대한 저열한 가치반영


우리 중 누가 또는 어떠한 집단이 우리를 아무 것도 아닌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내가 거리에서 성추행을 당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그냥 스쳐간다고 생각해 보자면 성매매 여성들에게 이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삶의 경험이다.

성매매가 잘못된 것은 여성의 순결,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성과 같은 사회적 관습에 위배되기 때문이 아니다. 성산업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착취되거나 사회적인 낙인이 찍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성매매가 여성이 사회적 종속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제의 신념들을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남성의 권력 관계 속에 성매매가 존재하는 한, 매춘 여성의 열악한 지위는 여성이 공공의 성적 대상이 될 때의 필연적인 결과물인 셈이며 매춘 여성에 대한 성희롱, 강간, 살인, 폭력, 인신 구속과 매매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연속선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성매매와 관련된 법과 정책의 내용은 이처럼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것은 '대체 이러한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성매매를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이다. 이러한 모순된 정책이 가능한 것은 규제, 폐지, 금지라는 법 자체의 속성에 있기보다는 정책 운영 과정에서 일반인의 인식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극단의 반인륜 범죄를 근절하자

벨기에 어느 장관의 말대로 '문제는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성매매가 인권의 문제와 양립될 수 있는가의 여부이지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할 것인가, 말것인가가 아니다. 합법과 불법의 양쪽 끝에서 취할 수 있는 대안은 아무 것도 없다. 당분간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매매를 통해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극단의 논리 속에서 어떠한 결론에 이르더라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그 피해자는 여전히 '여성' 자신일 뿐이다.

성매매에 대한 규제주의적 경향이 대두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성매매 행위 자체의 불법, 합법 논쟁에 대한 집착보다는 성매매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과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것과 성매매가 왜 인간의 권리와 양립될 수 없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 [기고] 장 지영, 군산대학교 총여학생회장
- 출 처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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