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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03년을 여는 첫날 오후2시.
군산미군기지 정문앞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기아특수강노동자가족, 개정병원, 대우자동차, 베트로텍스, 군산대학교 노동자, 농민회, 사회단체활동가등 매서운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후2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 '군산미군기지 수요집회 지킴이'들이다.

이미 이곳의 사정을 잘 아는 듯 사람들의 복장은 얼굴만 남기고 완전 무장되어 있다. 230만평의 황량한 미군사기지를 넘어 불어오는 바다바람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휭휭소리를 내며 온몸을 감고 도는 바람은 정말 살을 에이는 듯 하다. 거기다 매주 미군을 지키고 있는 전경들을 볼라치면 우리의 슬픈 현실을 보게 되어 추위가 더 느껴진다.

▲가족들이 함께 한 군산미군기지 앞 새해맞이
직장과 사업으로 마음은 있지만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도 이곳을 찾았다. 평소 시간이 없어 오지 못했지만 새해 휴일인 오늘은 작정하고 온 사람들로 "새해를 이곳에서 맞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왔다"며 사람들과 반갑게 악수를 한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띤다.

이처럼 날씨는 춥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새해 첫날 263차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 집회가 시작되었다.

98년 5월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온몸으로 투쟁을 전개해온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 상임대표 문정현신부는 "5년 세월의 치열한 투쟁을 하였지만 소파개정 등 아직까지 실질적으로 이루워진 것이 없고, 미국 역시 안하무인처럼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지난 연말을 달군 촛불시위처럼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 졌고, 세계적으로도 '전쟁을 반대'하는 요구가 드높아 졌다며 올해는 민족의 생존과 위기가 어느 때보다 절박한 만큼 "반전, 자주, 평화 기치를 높여 열심히 활동해 나가자"고 말했다. 또한 "5년을 활동하다 보니 오늘처럼 새해, 설, 추석, 성탄 등 특별한 날에 집회가 있는데 이 자리를 지켜온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고 말한다.

▲수요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시민모임의 상임대표 문정현신부는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이곳을 지켜온 '지킴이'들이 아니었다면 5년에 걸친 수요집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매서운 바람이 부는 새해 첫날.
군산미군기지 앞에서는 가난하고, 고통받고, 정직한 사람들이 모여 '자주와 평화를 여는' 큰 함성을 내질렀다.




수요집회 지킴이, 문정숙 씨 인터뷰
"자주와 평화의 땅으로 만들자"


▲수요집회 지킴이 문정숙 씨
평소 조용하고 말없이 뒤로 물러서 있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문정숙씨를 만났다.

1. 언제부터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가
시민모임 출발 때부터 알았지만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2000년 6월부터 시간을 만들어 참석하고 있다.

2. 제일 기억에 남는 집회는
2001년 봄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미군부대를 돌아본 게 제일 기억이 남는다. 매주 정문에서 집회만 하다가 미군기지 전체를 돌며 철조망을 통해 미군기지를 보았다. 철조망 주변에 잡초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독한 농약 등을 뿌려 풀이 자라지 않았으며, 부대안의 오폐수를 정화 조치없이 바다로 그냥 내보내 갯벌에서는 악취가 심하게 났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가까지 오지도 못하게 미군이 법석을 떨었는데 아마 무기고 인 것 같았다. 눈으로 직접보고 확인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고, 분노가 치밀었다. 50년이 넘도록 이들은 우리 땅에서 마음대로 행세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반미에 관한 이야기 하면 웃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진지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것이 큰 변화라고 느낀다

3. 언제부터 미국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73년에 전북대에 들어갔다.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등을 접하게 되면서 박정희군사독재정권에 대해 할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기독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엄혹해서 감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결혼하여 80-93년까지 고창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농민으로 살면서 우르과이라운드 등 미국의 경제침탈 문제와 접하게 되었고, 농민들에게 말하였지만 농민들이 그것까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자꾸 빚만 지게 되어 자녀 교육 때문에 군산으로 오게 됐고, 군산미군기지 집회를 알게 되어 참석하게 된것이다.

4. 지금 건강이 좋지 않은 걸고 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빠지지 않고 언제나 집회에 참석하여 무슨 이유에서인가
두 딸(이산하17세, 이청산15세)의 어머니이다. 딸들이 커서 미군이 있다면 식민지 딸밖에 되지 않겠는가! 내 딸들을 위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결국 효순이 미선이 같은 일이 발생하기 않았는가 그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 힘닿은데까지 참석하고 싶다. 지난 2002년 1월 암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있을 때 목숨이 붙어있는 한 미군기지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다행이 건강이 좋아져 이렇게 참석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5. 새해 소망이 있다면
희망이라면 이곳 집회에 의식 있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에 있는 주부들이 이것을 깨닫고 참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권유하는데 새해에는 이들과 함께 하는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온 국민의 바람대로 소파가 개정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이 회복되어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힘이고, 힘들지만 때가 되면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봐도 그렇지 않는가. 모두 희망을 가지고 힘찬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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