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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올림픽 외신도 극찬한 한국의 안전, 여성에게는 아닙니다

전북시민사회, "젠더폭력 끝장내지 않고서 성 평등 없다"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8.05.16 23:48

“총기 소지가 불법이고 외국에 비해 소매치기가 별로 없는 나라. 세계가 평창올림픽 당시 안전하다고 극찬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바로 여성에게는 말이죠.”

16일 오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2주기를 앞두고 전북지역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전북대 구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 저녁 전주 풍남문 광장 앞에서 열리는 5·17 젠더폭력 끝장집회를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참가자들의 절절한 발언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또 하나의 미투운동 현장으로 만들었다. 지나는 일부 시민들은 가는 발길을 멈춰 귀 기울였고, 발언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듣고 있는 참가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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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은 전북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여성·시민,노동계 등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미두운동이 사회변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공동 대응을 한다는 취지로 만든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전북시민행동’ 주최로 열렸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열린 전북대는 전북지역에서 미투 운동이 뜨겁게 열린 현장이다. 교양과목 ‘인권의 이해’ 강사진들의 잇단 성추행이 전북대 커뮤니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전북대 페미니스트 동아리들은 공동으로 이 문제를 대응하고 있다.

또한, 전북 지역은 연극계 성폭력 사건이 미투 운동을 통해 고발되면서 지역사회 상당한 울림을 줬다. 전북여성단체연합 등 전북지역 여성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연극계 미투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검찰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까지 결집하여 만든 전북시민행동은 젠더폭력 등 성 평등과 관련하여 지역사회단체들이 마음을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6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는 이러한 경향에 따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과 페미니스트 모임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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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연극계 성폭력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전북성폭력예방치료센터의 조미연 활동가는 지난 4월 21일 전주 서부신시가지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미수 사건을 언급했다. 한 남성이 한 건물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다 가슴에 칼을 찌르고 도주 중 붙잡힌 사건. 여성은 다행히 생명을 건졌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앞두고 지역 여성인권단체들의 충격은 컸다.

조 활동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면서 “화장실을 갈 때는 혼자 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고 신시가지는 특히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신시가지와 화장실, 강남역 화장실만 조심하면 되는 것일까? 지금 현재 여성들이 다니는 모든 곳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위험에 노출된 이유는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 활동가는 “여성을 성적인 욕구를 풀 대상으로 보고 성희롱을 일삼고, 성매매를 당연시하며, 성폭력에 동조하는 가해자들이 있는 한 안전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전주 여성주의독서모임 리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 은정씨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대한민국이 모두에게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고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여성혐오 폭력에 동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한국은 모두에게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은 테러 등의 위협에 시달려왔던 과거 올림픽에 비해 안전한 올림픽으로 큰 점수를 받았다. 특히 외신들은 치안의 우수성에 놀라워했다는 보도가 언론 등을 통해 전달됐다. 이에 대해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는 “밤에 혼자 다녀도 크게 위험하지 않고 이러하 이유들로 대회가 더욱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자평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밤이 안전한 나라. 그러나 은정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밝히면서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를 반박했다.  

“중학생 시절,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저 산책을 나온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그 남자는 내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까지 왔고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아 성폭력을 하고자 했다. 소리를 질렀고 가해자는 도망갔다.”

그 후, 은정씨는 엘리베이터에 누군가가 탈 때마다 공포를 느껴야 했고 뒤에서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끊임없이 운이 나빠 벌어진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여 해프닝으로 넘기고 싶었던 은정씨. 하지만 2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지난 4월 전주 서부신시가지 여성 살인미수 사건을 접하고 깨달았다.

“이 사건들 외에도 무수한 여성혐오 사건이 있어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내가 운이 나빠 강간미수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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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씨는 분명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하는데 왜 여성혐오 사건을 보고 듣고 경험해야 하는지 이 사회에 진지하게 물었다. 누군가에게는 안전하다는 한국이 왜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나라가 되는 것인지...

은정씨는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고 결론을 내렸다. 성폭력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강간과 성희롱을 경험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단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에 은정씨는 안전한 세상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투 운동에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투 운동에 함께하는 전북시민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은정씨의 호소에 답했다. 전북시민행동은 “혐오 범죄는 현 시대의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 존중과 공존을 훼손하는 것이기에 결코 용인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여성,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공포에 떨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성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목소리를 적극 낼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헤카씨는 “미투 운동은 각계각층의 권력 구조를 뒤흔들고,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라면서 “그러나 정작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미투 운동을 단순히 남성권력을 공격하는 여성들의 불만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다”며 여성들의 목소리가 왜곡되고 있는 학교 현장을 지적했다.

특히 전북대는 대학 강사의 연이은 성추행이 알려지면서 더욱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헤카씨는 “그러나 무섭도록 고요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표현했다. 이어, “현재까지도 전북대는 미투 운동, 성 평등과 관련하여 어떠한 대책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면서 전북대 내에서 적극적으로 미투 운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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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일명 아이다호 데이이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여성 혐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전북시민행동은 지난 4월 1일 부활절에 열린 전주시기독교연합회의 전주퀴어문화축제 반대 행진을 언급하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존재를 혐오하고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오는 지방선거에서 일부 기독교계가 후보자들에게 성소수자 혐오성 질문을 던진 것을 비판하며, “존재 자체만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폭력을 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전북 성소수자모임 열린문의 디쟌 활동가가 발언했다. 디쟌 활동가는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 지 28년이 지났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다”면서 “동성애 군인을 색출하여 처벌을 내리라는 군 당국과 실제로 이를 행한 것 등을 볼 때 국가도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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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 전북대 성소수자 모임이 한 단대 학생회의 주도로 퇴출된 것을 언급하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디쟌 활동가는 “성소수자 혐오 및 젠더폭력을 비롯한 모든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앞으로 혐오 세력에지지 않고 외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혐오와 차별 속에서 그 누구도 목숨까지 위협받는 사회가 아닌 성 평등한 사회로의 변화를 열 것”이라면서 17일 저녁 열리는 젠더폭력 끝장집회의 성공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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