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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폭행과 강압 수사로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은 제작됐다"

[재판 참관] 16년 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재심 결정을 위한 1차 심리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5.11.27 17:04

“조서가 서로 안 맞다고 경찰서에 오자마자 형사한테 맞았어요. 뒤통수와 뺨을 맞기도 했고, 형사는 경찰봉으로 발바닥을 마구 때렸어요” <강상현(가명), 36세>


“그때는 맞는 것이 두려웠어요. 억울한 누명만 풀렸으면 좋겠어요” <임수철(가명), 36세>


지적장애를 가진 3명의 청년들이 16년간 낙인처럼 달고 있었던 ‘강도치사범’이라는 딱지를 떼고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16년 전 일어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유죄를 선고받은 3명(강상현, 임수철, 최재필-모두 가명)의 청년들이 다시 법정에 섰다. 이번에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를 얻기 위한 재판이다. 26일 오후 2시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변성환 부장판사)는 1999년 2월 발생한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재심 결정을 위한 첫 번째 심리를 열었다.


“긴장하지 말고”, 강도치사범이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법정에 선 3명의 청년들은 담당 변호사의 말에도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판사석을 응시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손을 움켜쥔 모습은 이번만큼은 억울함을 풀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정말 형사들에게 너희도 한 번 우리처럼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도 당시 맞은 것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려요” <최재필(가명) 36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은 1999년 2월 6일 새벽, 삼례읍 우석대학교 앞 나라슈퍼에서 벌어진 강도치사사건을 말한다. 3인조 강도는 나라슈퍼 주인 최씨 부부와 함께 살던 77살의 유모(여성)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현금과 결혼 패물을 훔쳤다. 이 과정에서 유모씨가 저항하자 제압하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유모씨는 질식하여 사망했다. 경찰은 열흘 가량이 지나 인근 지역의 지적장애를 가진 청년 3명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붙잡았다.


이 사건은 약 7개월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1~3심까지 재판이 진행됐고 대법원은 최종 유죄판결을 내렸다. 최재필씨를 비롯한 3인은 징역 6년을 비롯해 징역 3~4년을 살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 후, 1개월이 지나서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유력한 진범 3인이 부산에서 잡혔다. 검사 앞에서도 여러 차례 자백을 한 이들에 대한 수사는 부산에서 전주지검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자백을 번복했다. 그리고 이들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검사는 지정장애인 3인을 살인범으로 재판에 회부한 검사였다.


최근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와 MBC <PD수첩>,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 <가짜 살인번 ‘3인조’의 슬픔> 등을 통해 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재심 개시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관심을 증명하듯 법정 안은 폭설에도 불구하고 멀리 서울과 수원에서까지 이 사건에 도움을 주려고 찾은 이들로 가득 찼다.


“폭행, 강압 수사와 자백서 허위 작성 등을 볼 때, 재심 사유 충분하다”


판사가 입장하면서 진행된 첫 번째 심리. 박준영 변호사는 100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제출하며 “공판 당시의 수사 기록과 진범에 대한 수사 기록, 재심 단계에서 필요한 새로운 증거와 피해자, 유족의 진술을 제출합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에 따르면 확정된 유죄 판결의 재심은 몇 가지 이유를 충족할 때 가능하다.


박 변호사는 “사실상 자백이 유일한 증거로 채택된 이번 사건에서 사법당국이 시행한 현장검증이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장검증이 명백한 허위입니다”고 말했다. 제420조 1항에 해당하는 이유다.


이날 제출한 자료에는 당시 현장검증 상황을 유족이 촬영한 영상이 포함됐다. 박 변호사는 “이들이 재연을 제대로 못하니까 강요를 하고 폭행과 모욕·가혹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포착 되었습니다”며 “영상검증을 신청합니다”고 말했다. 현장검증이 명백한 허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증거라고 박 변호사는 밝혔다.


이날 재판장에는 당시 영상을 찍은 유족이 찾아왔다. 숨진 유모씨의 사위 박모(56)씨는 재판이 끝나고 “제가 찍은 영상을 보면 정답이 나옵니다. 아이들을 패고 ‘너희는 배우고 나는 감독이다’는 말을 하면서 차마 형사가 할 짓이 못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정황상 지적장애인 3인을 살인범으로 잡아넣은 것은 100% 사기입니다”고 말을 이었다.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의 진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의 재심이 열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점을 들었다. 재심을 청구한 최재필씨를 비롯한 3인의 변호인단이 진범으로 지목한 이들 중 2명은 부산과 익산에 살고 있다. 남은 1명은 올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1999년 2월 6일 새벽 4시. 진범들은 부산에서 살고 있는데, 익산으로 이사를 온 친구를 만나 여관집을 잡아 술을 먹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갈 돈이 없자 승용차를 타고 가정집을 털기로 했습니다. 삼례 나라슈퍼를 털기 전 2차례 다른 곳의 범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사기 위해 나라슈퍼를 들어왔고, 이곳에서 강도와 함께 할머니를 질식사한 것이 이 사건의 진실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변호인단이 진범으로 지목한 이들이 1999년 11월 부산지검에서 자백했다. 당시 나라슈퍼의 주인이었으며 범인들의 목소리를 들은 피해자 최00(50세, 여성)씨는 기자와 간단한 인터뷰에서 “저는 반드시 범인을 잡아달라는 마음으로 당시 상황을 경찰에게 말했어요. 이 가짜 범인(재심을 청구한 3인)들이 작성했다는 조서를 봤어요. 그런데 제가 말한 내용 그대로였어요. 형사들이 제가 한 말들을 범인은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범인을 조작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진범들의 진술을 보면 더욱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한 진범은 ‘내가 살인을 했다고 하는데 전주지검에서 아니라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반문을 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재심을 청구한 3인은 당시 한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들이 자백했다며 본인들이 작성한 자백서를 당시 재판에 제출했습니다. 그 자백서는 형사들이 작성하고 이들에게 똑같이 그리게 한 것입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 이유)의 5항과 7항에 해당하는 이유다.


나라슈퍼 강도 피해자 최00씨는 “당시 상황을 잊을 수 없어요. 지금도 밤에는 어디 나가지를 못합니다. 이 청년들의 억울한 문제도 풀리고 진범이 밝혀져서 돌아가신 분의 한도 풀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래야만 제 일(당시 사건)도 끝난 것 같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한편,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진범들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할 수는 없다.


박준영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과 이 사건의 진범을 밝힐 명백한 증가가 있습니다. 재심이 진행되어 이 사건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면서 “당시 강도 피해자와 유족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 어느 사건에서도 있을 수 없었던 일입니다. 또한 전북대 로스쿨 학생들과 많은 변호사들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모두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반드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진범을 풀어준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처벌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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