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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북 연극인 미투, "자책 아닌 책임을 묻겠다"

극단 '문화영토 판' 대표로부터 받은 성폭력 피해 고백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8.03.07 10:51

“이제 시대가 변해 범죄를 저지르고 당당히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6일 오후 전북 전주의 극단 ‘문화영토 판’ 소속 단원이었던 A씨가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며 이날 기자들 앞에 섰다. 전북성폭력예방치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A씨는 자신이 속했던 극단의 대표이자, 전주시립극단 단원인 백민기 대표로부터 받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증언과 미투(#Metoo, 나는 말한다)운동은 연출가 이윤택씨의 성폭력이 알려지면서 연극계로 퍼졌다. 당시 A씨는 이윤택씨의 성폭력 사건을 뉴스로 접할 때는 심장이 떨려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를 향하는 댓글과 왜 이제야 이야기를 하느냐는 댓글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그때마다 A씨는 스스로 그 비난의 답을 냈다. 

“이제라도 이야기하지 못하면 평생 마음의 짐으로 저는 자괴감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할 테니까요. 이제라도 이야기하지 못하면 그들은 저 뿐만이 아닌 또 앞으로 있을지도 모른 제2, 3, 4의 피해자들을 술자리 안주거리쯤으로 삼을 테니까요.” 

이날 A씨는 기자들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의 응원과 진실을 믿어주며 함께 싸우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도 A씨를 지지해주는 지인들과 함께 자리에 섰다. A씨는 그 덕분에 자신 혼자 감당해야 했던 성폭력 피해를 고백했다. 

백 대표로부터 당한 성폭력은 지난 2012년 12월 5일 새벽, 극단 관계자들과 함께한 술자리 후에 벌어졌다. 평소 백 대표는 항상 엄하고 무섭고 자기 주장이 강한 선배였다. 그래서 후배들은 그의 일탈을 상상하지 못했다. 항상 옳은 이야기만 하는 연기 잘하는 선배였기에 후배들은 백 대표를 존경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A씨는 말했다.

그래서 그를 의심한 적이 A씨는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처럼 극단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 A씨를 백 대표가 잡았다. A씨는 “혼자 집게 가려고 하는데 계속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서 저를 밀치며 택시에 탔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혼자 내린 뒤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따라 내리면서 집에서 술을 마시자며 저를 질질 끌고 집으로 갔어요”라고 말했다.

A씨는 여러 차례 뿌리치려 시도 했지만 백 대표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집에 들어가면 큰일 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겨우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을 해야 했다. 백 대표를 어떤 말로라도 설득하여 제정신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며 다그치는 백 대표를 거역할 수 없었고 함께 택시를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모텔이었다.

A씨는 “처음에는 극단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라며 “그런 그를 뿌리치고 설득도 했지만 순식간에 이뤄졌어요. 처음부터 성폭행할 생각이었던 겁니다.”며 당시 상황을 어렵게 꺼냈다.

A씨는 성폭력 이후, 백 대표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제가 물었어요. 왜 저한테 그러시냐고 제가 만만해 보이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요즘 너무 머리가 아프고 곧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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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라는 낙인”... 2차 가해는 자해로 이어졌다.

사건이 있고 A씨는 도망치듯 극단을 그만뒀다. 당시 준비 중인 공연도 있었지만 도저히 무대에 설 자신이 없었다. 공연 포기에 따르는 비난의 화살도 참고 견디며 도망쳐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 A씨에 대해 ‘배신자’, ‘무책임하게 나갔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다. 

왜곡된 비난과 백 대표에 대한 두려움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해가 시작됐다. A씨는 작년까지 지난 5년 동안 자해를 멈추지 못해 손목 등에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괴로움은 술로 견디는 날이 많아졌고 백 대표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쏟아 부었다.

“날카로운 것만 보면 충동을 어찌 못해 자해하고 저를 괴롭혀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혔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약을 먹을 때만 잠시 좋아질 뿐이었어요. 괴로운 마음 상태로 생긴 마음의 병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A씨는 순간순간 자신을 자책한다고 한다. 사건 당시 도로에라도 뛰어 들어 사고를 당해서 그 위기를 빠져나왔어야 했다고 수만 번을 생각했다. 그러나 서지현 검사가 직접 나와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를 증언한 것을 계기로 많은 미투 사건을 접한 것이 도움이 됐다. 자신에게 쏠린 분노의 화살을 돌릴 수 있게 해줬다.

“정확하게 가해자에게 (그 화살을) 되돌리고 싶어요.”

최근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서 백 대표가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자신에 대한 소문을 확인하고 결백을 이야기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백 대표의 모습은 A씨를 이렇게 기자들 앞에 서게 만들었다.

극단,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A씨는 성추행과 성희롱과 같은 성폭력 피해자가 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백 대표 외에 다른 이들의 성추행과 성희롱도 있지만 아직 이를 말할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연극계의 위계 문화, 서열도 한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사건이 있고 나서 선배들에게 말을 꺼낼까 생각도 했지만 무서워서 당시에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A씨의 미투 선언 이후, 극단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극단은 “미투를 통해 용기를 내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리면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순 없지만 함께 공연한 선배, 동료, 후배들로서 그 아픔에 대해 모든 단원들은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상처받고 아파했을 모든 시간들에 대하여 함께 연습했던 극단 선배, 후배, 동료로서 부끄럽다”면서 “이런 일들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며 미투 관련에 용기 내어 사실을 외친 분에게 모든 단원들은 뜻을 함께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예정된 극단의 모든 지원사업과 공연을 취소하고 극단을 해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백 대표에 대해서는 한국연극협회에 제명 조치를 요구했다. 

현재 백민기 대표는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SNS 계정도 삭제했다. 전주시립극단은 6일 사직했다. 그런 가운데, 극단 '문화영토 판'은 해체에 앞서 극단 내 진상조사 및 위계문화 등의 점검을 진행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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