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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농가일기>우리집 꽃샘추위

이민영( 1) 2008.05.05 12:41

봄비가 내리고 사람을 설레게 하는 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냄새와 소리 바람 끝에서 계절을 내 안으로 전해주고 있어서 그 흐름에 생활이 맞춰지고 그렇게 바쁘거나 한가한 일상에서 세상의 시름을 자주 잊게 됩니다. 우리 집의 봄은 집 앞 물 흐르는 소리에 힘이 붙고 건조한 바람이 미친 듯 방향을 못 잡고 회오리치며 잠잠했던 숲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시작합니다.

아이들 손잡고 집 주변을 배회하고 길어진 해를 보며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속에서 아이들에게 봄을 이야기 하면서 함께 기다립니다. 이곳의 봄이 늦어 기다리는 재미도 더 좋고 그만큼 더 짧아서 귀한 봄을 맞이하는데 우리 집 꽃샘추위는 올해도 외지에서는 찾기도 힘든 네비게이션에는 나오지도 않는 이 골짝까지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습니다.

올 봄이 오기 전 저는 2박3일을 틈틈이 울며 보냈습니다.

두 딸아이를 품에 안고 숨죽여 울기도 하고 남편의 가슴을 치며 울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혼자 울기도 하고 TV에서 자주 나오는 눈물 장면은 다 해본 것 같습니다. 마음은 머리에 하얀 끈이래도 동여맨 채 폭신한 이부자리하나 차지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 싶었지만 처지가 처지인지라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애들하고 놀아주며 정말 틈틈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일은 잠깐 쉬던 중이었습니다. 눈물의 사연은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남의 땅에 농사짓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그런 일이었는데 또 더한 일도 많았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던 ‘맥’이 풀려버린 기분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울고 또 며칠을 기운 없이 지내다가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올해가 7년째니 10년만 채우고 안 되면 그만두고 돈 버는 일 해. 자기 하고 싶은 일 그만큼 해 봤으면 가족위해 다른 일 할 수도 있잖아.” 남편은 들은 체도 안했습니다. 사실 남편이 돈 벌 수 있는 일은 그리 흔치 않고 그 돈으로 우리 가족이 행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래도 분위기상 거짓말로라도 대답할 수 있는 일인데 또 여자는 거짓말일지언정 하늘의 별이라도 따 주겠다면 속없이 좋아하는데 특히 나는 더 그러는데 절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에 눈멀어 귀농이랍시고 맨 몸으로 따라 들어와 저도 나름대로 고생 많았습니다. 인생극장에 명함 내밀 만큼은 아니래도 여하튼 그 드라마 섭외전화도 딱 한번 받았었습니다. 제가 워낙 시골체질이라 이렇게 잘 적응하고 살고 있는데 남편은 전혀 쳐 주질 않습니다. 처음에 귀농한다 했을 때 애 좀 먹일 것을 제가 워낙 단순해서 한번에 OK한게 이제야 잘 못했다 싶습니다.

장롱도 들어가지 않는 집에서 시작해 지금은 살림이 많이 늘었습니다. 집도, 땅도, 두 딸도, 소도 다섯 마리, 그리도 빚도. 농사지으며 살아보니 직업에 따라 여러 권리들이 주어지는데 농사꾼은 저리도 빚 얻어 쓸 의무와 권리는 확실히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맘대로 뛰노는 아이들 바라보며 그 뒤로 밭에서 일하는 남편 뒤로 봄이 꽉 찬 풍경을 바라 볼 때는 세상에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이 잠깐이 있어 귀농은 아직 행복합니다. 올 봄에는 네 식구 함께 놀이하듯 감자도 심었고 첫째아이 생일선물로 전주동물원도 다녀오고 뒷산에 올라 아마 불법이겠지만 진달래 몇 그루 캐서 삭막한 집 앞에 심어놓았습니다.

혹독한 꽃샘추위를 거치고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괜한 짜증에 불편한 맘을 다잡지 못하고 이 봄을 즐기고 있지만 내년에는 연보라빛 진달래로 화사해진 우리 집 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꽃샘추위는 절대사절입니다. 입춘이 오기 전 푯말이라도 부쳐놔야겠습니다. 꽃샘추위 절대사절

혼자 속으로 온갖 찌개를 끓일 때 잠깐 위안이 되었던 문구를 찾았습니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명상하고 느끼며 꿈꾸기 위해서만은 아니다(카알라일)’
귀농에 대해 나는 후자에 대한 동경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다른 누구의 노동에 기대지 않고 지금 나의 삶을 가꾸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 나의 노동이 어디론지 새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천재는 혼자서 몇 천명을 먹여살린다는데 저는 과연 내가 나를 먹여 살리고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혹, 그 천재가 내 것을 가지고 인심 쓰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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