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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찾았을 때는 작은 시냇물 옆에서 꿩 한 마리가 잡혀 먹였는지 깃털만이 널부러져 있었다. 봄철과 가을철에 번식지인 일본 홋가이도와 월동지인 중국 남동부 지역까지 오고 가는 산새들이 날씨가 흐릴 때 잠시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로 보였다. 이런 새 종으로는 유리딱새, 검은머리딱새, 촉새, 검은머리촉새, 쑥새 등이다.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니, 여름철에만 사용한다는 텅 빈 수영장 옆으로 멀리 앞에 보이는 섬까지 갯벌이 넓게 들어나 있었다. 그런데 갯벌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 말로는 몇 년 전부터 토사가 계속 쌓여 갯벌면적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로 겨울철에 죽합(주민들은 ‘맛’이라고 부름)과 백합을 잡아 판매한다고 말했다.

갯벌을 걸으면서 둘러보니 전형적인 모래갯벌이었다. 물기가 적셔진 연흔이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군데군데서 엽낭게가 구멍 안에서 갯벌 흙을 꺼내면서 집을 수리하고 있었다. 멀리 아지랑이가 일렁여 잘 볼 수는 없었으나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갯벌 가장자리에선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보였다. 다음날 밀물 때 다시 찾아가 확인한 바로는 괭이갈매기 6마리, 갈매기 86마리가 있었다. 혹시 검은머리물떼새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보이지를 않았다.

▲동쪽 해안도로 난간에 서 있는 바다직박구리

다시 마을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 언덕빼기에 다다랐을 때 그물을 뒤집어 쓴 초분 하나가 보였다. 그런데 그물로 뒤덮여 있었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풀을 뜯어 먹도록 방목을 하는데 이들 소들이 가끔씩 초분에 씌워진 지푸라기를 뜯어 먹는단다. 그래서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물을 뒤집어 씌웠단다. 자손들이 설날 세배를 했는지 솔가지도 몇 개 꽂아져 있었다. 초분이 몇 개 더 있다고 들었는데 더 이상 찾을 수는 없었다. 검은 천막으로 덮여 있는 부안 계화도 초분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예쁘게(?) 남아있었던 군산 무녀도 초분과 비교해 보면 이곳 초분은 그래도 잘 보존되고 있었다. 주변엔 언제 만들었는지 작은 묘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었다. 육지의 묘들보다 대체로 작았다.

점심을 먹은 후, 어제 밤에 수달을 보았다는 지역을 확인하기 위해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해안도로 난간에 바다직박구리 수컷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점점 다다가자 달아났다. 1km 정도 만들어 놓은 해안도로는 바닷가에 3m나 높은 콘크리트 벽을 쌓아 올렸다. 해안을 절개해서 만들어 군데군데가 계속 허물어져 내렸고 길바닥엔 돌까지 떨어져 있었다. 이곳을 따라 주민들이 운동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 지역을 지나갈 때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길과 절벽 사이에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 수로에 수달이 놀았는지 발자국이 보였다. EBS팀 말로는 야밤에 텐트를 치고 기다렸는데 “수달이 도로를 따라 도망가다 수로로 숨어버린 수달을 4초 정도 촬영했다”고 말했다.

▲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 할머니
다시 길을 되돌아 나와 마을 앞 몽돌 밭으로 나갔다. 젊은 여자 분이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섬에 배를 타고 들어올 때 같이 타고 들어온 아기 엄마다. 바지락이 대나무 바구니에 절반 정도 담겨 있었다. 몇 마디 물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 많이 바뀌었다. 해안도로를 내니까 시골 같지 않다. 자갈도 하얗고 투명했는데... 바지락도 별로 나지 않아요. 지금은 결혼을 해서 해군인 남편을 따라 여수에서 살았다가 지금은 진해에서 산다. 개마항까지 승용차로 4시간 걸렸다. 매년 두 번씩은 왔는데 근래엔 2년 만에 왔다. 예전엔 자갈이 많았는데 많이 깎여나갔다. 바지락도 많이 작아졌고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바다 쪽에선 가마우지가 가로 질러 날아가고 있었고, 불논병아리 한쌍이 보이기도 했다.

바닷가 옆에는 최근에 지었는지 2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어촌계장으로 들은 말로는 어촌계에서 지었으며 “1층은 마을회관이고, 2층은 여름철에 주민에게 임대를 주어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민박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젯밤에 밤을 새서 그러는지, 오후 5시가 되자 피곤해서 더 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민박집으로 와서 1시간반을 잤다. 무슨 소리가 들려 일어났더니, 건너 방에 마을 주민들이 3-4명 와 있었다. 집 주인의 마음씨가 좋아서인지 마을사람들이 사랑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저녁에도 주민들이 찾아와 술잔을 들이키기도 했다. 주민들과 함께 KBS 1TV에서 8시25분에 방영하는 ‘미우나 고우나’를 함께 보았다. 어떤 주민이 매일 본다면서 “제목은 모른다”면서 “백호 나오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섬 주민들이 밤 여가시간을 드라마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모양이다.

다음날 금요일엔 주민들과 함께 EBS 하나뿐인 지구 제작팀이 제작한 ‘느린 것이 아름답다, 청산도’를 8시55분부터 보았다. 섬의 생태뿐만이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느릿한 화면 속에서 잔잔하게 펼쳐졌다. 방송제작 담당 PD는 “외주 제작팀이다. 그동안 ‘EBS 하나뿐인 지구’라는 방송내용이 환경고발 중심이었다면, 앞으론 주로 어느 지역의 살아있는 자연생태와 그 속에 사는 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면서 “생태친화적인 주민들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내용으로 다룰 예정이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러한 관점으로 새만금지역의 생태와 주민생활문화 조사, 대안사회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잠자리를 옮겨 촬영감독과 함께 스콧니어링 부부의 대안적인 삶, 라다크, 티벳에 대한 얘기, 쿠바, 튀니지에 갖다온 얘기들, 그리고 새만금사업과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얘기를 밤 12시반까지 나누었다.

28일과 29일에도 섬에 서식하는 조류 관찰과 마을주민들의 생활모습 확인, 주민들과 대화가 계속되었다. 28일엔 약한 황사현상이 발생해 개마항 뒷산과 위도, 무안지역의 섬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선을 타고 칠산도로 가기로 했지만 파도가 높아 갈 수가 없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소이도 보건소는 신축된지 얼마 안 되었는지 깨끗하게 보였다. 담장을 1km 넘게 높이 쌓여 있어 별로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몸이 불편하데도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면서 섬주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는 장경선 송이도보건소장
마을주민들이 어떤 질병에 주로 고생하는지, 보건소 운영에 어떤 어려움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보건소장을 만났다.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라고 여쭙자, 보건소장이 “들어오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진찰실로 안내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보건소장은 한쪽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보건소장이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일행 3명에게 커피와 유자차를 타서 주었다.

보건소장과 1시간쯤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내월초등학교 소이도분교 선생님이고, 애들은 딸 둘인데 올해 초까지 이곳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2월에 소이도분교가 폐교되면서 마을 애 둘은 육지에 있는 법성초등학교로 나갈 예정이고, 남편과 딸 둘은 내월초등학교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분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월초등학교는 육지 쪽이 아닌 서쪽 바다 쪽으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더 나가야 하는 안마도에 있단다. 보건소장은 얼마 전 허리를 수술 받았는데 혼자 재활치료를 하면서 그동안 쓰지 못한 수필을 짬짬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장경선 송이도보건소장은 몇 년 전에 ‘영호남수필가협회’ 회원으로서 수필을 쓰고 있다고 했다. 보건소장을 만나고 나오는데 보건소 건물 입구에서 여자애 둘이 무슨 놀이를 하고 있었다. 보건소장 딸이냐는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와 떨어져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안쓰럽기 까지 했다.

바닷물이 어느 정도 빠질 때가 되어 ‘큰내기’라는 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시멘트 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주차하고 바닷가로 걸어갔다. 이곳에서 파도가 바위를 뚫어 놓은 ‘해식애’를 볼 수 있다는 말 때문이다. 바닷가엔 호박돌 크기의 하얀색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외쪽 절벽에 구멍이 뚫린 바위가 보였고, 전체적인 모습을 보니 코끼리의 코 모양처럼 보였다. 해식애 안으로 들어가 바다 쪽으로 보니 바다 쪽으로 촛대처럼 곧게 솟아 오른 바위가 햇빛을 받아 훤하게 보였다. 이곳 해변이 북서방향이어서 인지 제법 바닷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래서 그런지 춥기까지 했고, 해식애 주변엔 큰 나무들이 보이지 않았다. 바닷가로 흘러내려오는 계곡엔 갈대군락이 서식하는 습지대도 보였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후박나무를 볼 수 있었다.

▲올 2월에 폐교된 학교 교정과 모래사장에서 흙 장난을 한 모습
다시 숙소로 되돌아 와 점심을 먹은 후 폐교된 학교로 갔다. 정문엔 명패가 떼어진 채 시멘트 기둥만이 남겨져 있었다. 학교 안은 텅 비어있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철봉과 그네는 녹이 슨 체 주인을 잃었고 달리기하는 모습을 한 어린이 동상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서 있었다. 뒤로 보이는 교실 창문은 벌써 깨진 채 뻥 뚫려 있었다. 운동장 한켠에 자리한 모래판은 누군가 흙장난을 했는지 벽돌과 나뭇가지 등이 가지런지 놓여 있었다. 아마도 보건소장의 딸들이 놀았던 모양이다. 학교 뒤편 언덕으로 가보니 산을 일부 절개해서 만들었는지 급경사를 이루었다. 학교가 60여전년에 세워졌다는 것을 보면 당시에 마을 사람들의 교육열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큰 마을’ 뒤편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예전에 당집터가 있던 자리를 보기 위해서다. 오르는 길에 여러 그루의 팽나무를 만났다. 제법 큰 팽나무였고, ‘담장이 넝굴’이 휘감고 올라가고 있었다. 나뭇잎이 우거지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 같았다. 눈이 내린다면 한편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것이다. 언덕배기 중간에서 아래쪽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등산로 주변에서 딱새와 박새가 지저귀고 있었고, 건너편 언덕배기엔 하얀 염소 두 마리가 배를 깔고 앉은 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숨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등산로에 깃털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깃털을 자세히 보니, 꿩이 분명했다. 아마도 수리부엉이나 말똥가리가 잡아먹은 모양이다. EBS팀이 전날 밤에 내가 송이도에 들어오기 전에 비디오로 촬영한 것을 보여줬을 때 분명히 수리부엉이 모습이었다. 그래서 수리부엉이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큰 마을 뒤편 당집에 오르는 길에 서 있는 커다란 팽나무

가파른 오르막길엔 나무 몇 그루가 서있었는데 ‘당장이 넝쿨’이 너무 무성해 나무를 죽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됐다. 당집 터에 도착하니 제법 큰 돌들로 만든 원형의 모습이 보였다. 당집이 있을 때 담장을 돌로 만든 모양이다. 칠산어장 한가운데 자리한 이곳 송이도가 더 이상 어업에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집터만이 섬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 말로는 몇 년 전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다고 말했다. 당집 주변엔 커다란 왕소사나무와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예전에 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얼마나 신성시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나무 줄기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겨울인데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글 이어집니다

· <칠산바다 탐방③>생명 잉태 봄을 기다리는 섬




기자소개
-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 환경운동가
- ‘새와 생명의 터’ 자문위원, 새만금생명평화전북연대 공동집행위원장
- 전북대학교 새만금생활사연구단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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