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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쪽을 바라보니, 갯벌이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EBS팀이 어제 이곳에서 낙조를 촬영했을 땐 아주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황사현상이 있어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정말 아쉬웠다.

마을로 내려와서 혼자 새들을 관찰했다. 10여 마리의 직박구리들이 봄동 배춧잎에 내려앉아 열심히 쪼아 먹고 있었다. 어떤 마을 주민들은 아주 귀찮은 새들이라면서 욕을 해댔다. 사람이 다가가면 주변 나무에 앉아 있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더 멀리 날아갔다. 일정하게 안정한 거리를 유지해 가면서 도둑 식사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섬 지역에서 나는 봄동 배추는 비타민이 많고 봄철 식욕을 돋우는 좋은 채소다. 참새들도 덩달아 뒤집어진 개 밥그릇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먹을 것을 훔쳐 먹고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개집 옆에서 개들이 이를 모르는 척하면서 낮잠에 취해 있었다.

▲마을내 밭에 있는 봄동배추잎을 쪼아 먹고 있는 직박구리들

마을 안 길을 둘러보는데, 폐가가 된 집 마당을 밭으로 일구어 놓으신 나이 드신 할머니가 앉아서 풀을 매고 있었다. 녹색을 띤 봄동 배추와 시금치, 파가 할머니의 손길에 더욱 싱그럽게 보였다. 할머니에게 다가가 한참 틈을 들인 다음 조심스럽게 몇 마디 여쭈었다. 남편과 같이 산다는 할머니는 “얼마 전에 허리를 수술해서 돌아다니기에 불편하다. 남편도 아파서 수술을 했는데 먹고 살려고 오늘 일하러 나갔다”면서 “예전엔 칡을 캐먹으면서 참 힘들게 살았다. 애들은 육지에 모두 나갔다. 딸 둘은 출가해서 자기들 먹고 살기에 바쁘고 아들자식은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연락이 잘 안 된다”고 쓸쓸히 말을 이었다. 순간 괜히 여쭈어 아픈 마음 한구석을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할머니가 찾아와 “건강하십시요”라고 안부 인사를 드린 다음 그곳을 빠져 나왔다.

민박집으로 되돌아오니, 집 주인 아주머니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는 지 집 앞에 있는 밭아서 봄동 배추를 뽑고 계셨다. 부엌으로 따라 가보니,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았던 것을 손질해 말려두었던 것이라며 냉동고에서 생선들을 꺼냈다. 민어, 장대, 물매기를 손질해 말린 것들이다. 저녁상엔 장대와 민어 매운탕이 끊여져 나왔고, 죽합 (주민들은 ‘맛’이라고 부름)은 초장에 찍어 먹기 좋게 살짝 대쪄서 내놓으셨다. 다른 날엔 무채와 함께 죽합이 버물려져 나오기도 했다.

3일째가 되는 날도 파도가 거세 예정되어 있던 칠산도행을 포기했다. EBS팀 차량에 넣을 기름을 배편으로 가져오신 한 주민이 “내일은 파도가 더 거세진다”면서, “오늘 여객선을 타고 육지로 나가지 않으면 월요일 이후에나 나가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일단 칠산도행을 포기하고 1시반배로 나가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여객선이 올 때까지 마지막으로 마을 안길을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폐가도 많고, 마을 중간엔 두 개의 열녀비도 있었다. 굴비 한 꾸러미가 처마 밑에 달린 집도 있었다.

마을을 돌아보는데 소 한마리가 열린 문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누군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코뚜레를 킨 것을 보니, 집 주인이 논갈이에 활용하는 모양이다. 소여물로 쓰려는지 외양간 옆엔 볏짚이 비닐로 덮인 채 가득 쌓여 있었고, 그 옆에 쟁기도 기대어 놓았다. 소 앞으로 다가가니, 새끼 한 마리가 큰 눈망울을 하고 어미 소 옆에 붙어서 내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어미 소 뒤로 숨었다. 잠시 후 어미 소도 안쪽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을 중앙엔 하얀색을 한 교회가 빛이 바랜 채 당당히 서 있었다. 주민들 말로는 전도사 한분이 있는데 마을 주민들 중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다시 EBS팀과 함께 마을 뒤편에 있는 식수원 댐 밑의 습지대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새들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엊그제 확인했던 새들과 별다른 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숙소 주인이 준비해 놓은 점심을 먹은 다음 여객선을 타기 위해 승용차를 탔다. 마을을 빠져 나와 해안가에 다다르자 새 한 마리가 몽돌 위에 버려진 꽃게잡이용 틀에서 깜짝 놀라 달아났다. 차에서 내려 꽃게잡이용 틀 안을 보니, 쥐 한마리가 뜯겨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황조롱이가 잡아서 먹다가 달아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잠시 후 황조롱이가 되돌아 와서 가까운 전봇대위에 앉더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면 다시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마침 멀리 뒷산 위에서 말똥가리 네 마리가 날개를 펼친 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두 분의 할머니가 한 켠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육지 나들이를 하는 모양인지, 바로 앞에 짐이 잔뜩 쌓여있었다. 잠시 후 섬에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온 젊은 부부와 애 둘이 짐을 챙겨들고 나가왔다. 꼬마 애 하나는 보자기로 감싼 채 어머니 등 뒤에 업혀 있었다. 여객선 도착시간이 되었지만 늦어졌다. 그래서 포구 한 켠에 쌓아 놓은 어구들을 둘러 봤다. 주꾸미 통발인 소리팽이들을 곧 사용하려는지 가득 쌓여 있었고, 김양식장에서 사용하던 김 떨이용 기계는 뒤편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부표를 매 단 어구들이 그물에 덮인 채 잔뜩 쌓여있었다. 선착장 내려다보고 있는 동상을 둘러본 다음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예정시간 보다 늦은 오후 1시50분경 여객선이 ‘뽕짝’ 음악소리를 내면서 나타나더니 선착장에 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에 모였고, 트럭들도 여객선에 실렸다. 마침 마을 어촌계장이 어제 들어왔다가 나가는 길인 모양이다. 여객선에서 만나 1시간가량 송이도 주변에서 하는 어업과 소득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송이도를 벗어날 때는 파도가 제법 커서 배가 좌우로 크게 요동을 쳤다. 다행히 개마항에 가까워질수록 배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예정 항해시간 보다 늦은 2시간 18분에 개마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전남 영광군 내월면 송이도에 대한 조류서식 조사와 마을주민들의 생활문화조사를 마치게 되었다. 겨울철이라 많은 새들을 만나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과 만나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몇몇 주민들로 부터 영광핵발전소에서 흘러나오는 온배수로 인해 어업피해를 얼마나 입고 있는지, 현재 송이도 주민들의 삶은 어떤지, 전통문화는 얼마나 계승되고 변화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괭이갈매기와 노랑부리백로가 여름철에 번식지로 이용하고 있는 칠산도 전경

그런 후 3월 7일, EBS팀과 함께 영광 법성포 근처 포구에서 어선을 타고 칠산도를 찾았다. 괭이갈매기의 집단번식지이자 천연기념물 제361호인 노랑부리백로의 번식지가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전9시경, 우리를 태운 어선이 포구를 출발했는데 바닷물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배 밑바닥이 닿았다. 선장은 조심조심 엔진을 돌려가면서 수로를 힘들게 빠져 나왔다. 나오는 길에 물 빠진 갯벌에서 몇몇 어민들이 그물설치 작업을 했다. 실뱀장어 잡이를 하기 위해서란다.

수로를 벗어나자 제법 큰 파도가 몰려왔고, 바닷물이 계속 튀었다. 선장님은 이 정도는 문제없다며 스릴 넘치게 파도를 가로지르며 항해를 계속했다. 칠산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괭이갈매기 5천여마리가 칠산도 앞바다에 잔뜩 앉아 있었다. 배가 가까이 다가가자, 집단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날아올랐다. 장관이었다. 영상과 사진 촬영을 한 다음 섬에 내렸다. 내린 곳은 갯벌이 들어나 있었다. 섬엔 큰 나무들이 보이지 않고 풀들만이 보였다. 산에 올라 확인을 했으나, 둥지를 만든 새는 아직 하나도 없었고 작년에 둥지를 튼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산위에 오르자 거센 북서풍 바람이 불어 왔다. 바람을 타고 파도도 거세게 밀려와 섬 북쪽 편을 강타했다. 그래서 바위로 된 절벽이었다. 다른 봉우리에 오르자 말똥가리와 바다직박구리 각각 한 마리씩이 놀라 달아났다. 이곳이 괭이갈매기 집단서식지라는 곳을 알리는 안내판이 위태롭게 서 있기도 했다.

다시 섬을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빠져 나왔을까 갑자기 엔진 방향타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칠산도로 올 때 보다 파도가 더 크게 쳤다. 불안했다. 선장님이 엔진 방향타를 손으로 직접 잡고 속도를 느리게 한 채로 출발했던 포구로 향했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배는 좌우로 크게 흔들거렸고, 배 속도는 느리기만 했다. 나올 때 15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를 40여분 걸려 포구에 도착했다. 바닷물이 벌써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렇게 송이도와 칠산도는 막바지 겨울을 보내면서 생명 잉태의 계절인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민들 또한 변화된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과 대응에 바빴다. 우리 모두가 섬과 바닷가 주민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곳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 바래 본다.

(3월 21일 금요일, 오후 8시50분부터 40분간 ‘EBS 하나뿐인 지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바랍니다)



기자소개
-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 환경운동가
- ‘새와 생명의 터’ 자문위원, 새만금생명평화전북연대 공동집행위원장
- 전북대학교 새만금생활사연구단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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