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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그 시대의 거울이다. 종교가 건강하면 그 사회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종교는 건강한가? 건강하지 않다면 왜 그럴까? 지금 우리 사회의 일부 종교는 자기 종교만이 최고라는 오만함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 일부 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종교의 환멸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평화를 깨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종교가 세상 사람들의 평화를 깨고 있는 현실을 참회하고자 종교인들이 모였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여러 공연을 보며, 열린 대화를 통해 친교와 화합을 이루는 축제가 벌어졌다.

산사에서 열린 종교인 한마당 잔치

지난달 28일(금) 오후 6시, 연대의 발걸음들이 송광사(전북 완주)로 모여 들었다. 멀리 강원도 스님들과 바다 건너 제주도 목사님들. 하얀 수도복의 수녀님들과 검정 치마 흰 저고리의 교무님도 나비처럼 산사를 찾았다.

노란 국화꽃이 화사한 산사의 저녁은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휘영청 보름달빛 아래 바라춤과 행위예술, 시와 노래의 아름다운 향연을 시샘하는 날씨였다. 폭풍이 불어와도 꽃이 피듯이 종교인들의 대화와 소통의 한마당 잔치는 멈출 수 없었다. 대웅전 마당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을 뒤흔드는 복병 같은 비바람에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 8시, 성공회 수녀님과 개신교 언님의 종교와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로 생명평화 종교인 한마당이 문을 열었다. 스님과 교무와 수녀들이 피우는 아름다운 조화의 꽃, 삼소회 회원들의 맑은 영혼의 기도였다. 우리밀과 우리 농촌 살리기, 녹색연합 공동대표 등을 엮임했고,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인 이병철 선생(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의 개회사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연대 오 카타리나 성공회 수녀와 개신교 수도자 언님, 황대권 선생과 이원규 시인


동신대학 다학과 추민아 교수가 광주 비로다회 소속회원과 함께 우리 전통차를 준비하고 있다며 사회자(필자 최종수 신부)가 소개했다.

“한자 ‘차 다(茶)’ 자를 풀이하면 풀과 나무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차를 마시는 일은 나무와 풀의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마시는 일이라 합니다. 그래서 ‘다도’라 말하는가 봅니다. 생명의 차 한 잔이 영혼을 목마르지 않게 할 것입니다. 오늘 종교인 한마당 잔치는 차가워지기 쉬운 우리 삶과 영혼에 녹차처럼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굿은 영어의 좋은 뜻과 한을 푸는 살풀이 춤의 이중적인 뜻을 지녔다. 연극배우이자 전위예술가인 춤꾼 한영애 선생의 퍼포먼스가 첫 무대에 올랐다.

공동체를 상징하는 배를 들고 등장했다. 폭풍이 불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도 되었다. 등에 진 십자가가 되기도 하고, 청중과 함께 하얀 천을 찢듯 한을 승화시키는 행위예술. 역동하는 생명과 평화의 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이어졌다.

▲공동의 십자가 한영애 선생의 전위예술


불교 교리로 천주교 전교는 옳지 않다?

다음은 구미유학생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무기를 선고 받고 13년 감옥살이 중에 쓴 ‘야생초 편지’로 유명한 황대권 선생(생명평화결사 교육위원장)이었다. 생명의 평화의 종교 정신을 어떻게 종교 간에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단상을 고백했다.

“대구교도소에서 천주교 심신단체 활동을 하던 때의 일입니다. 평소에 잘 따르는 후배에게 천주교를 전교했습니다. 후배는 천주교를 믿을 수 없다며 ‘저희 어머님이 열심한 불교신자인데 전 천주교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불교에 심취했던 터라 후배에게 불교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전 그게 진정한 선교라고 생각했는데, 심신단체에 보고하자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일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너를 데리고 멀리 도망칠 텐데


1급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내가 만일’이라는 시를 쓴 전위예술가 강성국(퍼포머), 몸이 불편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것조차 해줄 수 없는 것을 아파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사랑에 대한 핸디캡을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이 무대에 올랐다.

한 사람의 영혼을 한 차원 승화시키는, 함께 손잡은 영혼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가슴 뭉클한 감동은 생명과 평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거룩한 눈물을 훔쳤다.

유성운씨의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 공연은 비에 젖은 비둘기처럼 무거워진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밝은 태양 같은 열창이었다. 앙코르 곡으로 '행복의 나라'까지 유쾌한 박수를 치며 함께 불렀다.

▲유성운 가수의 열창


1998년도부터 구례 섬진강변에 살면서 지리산을 노래하는 이원규 시인, 2004년 도법스님과 수경스님과 함께 지리산 순례를 시작으로 생명평화순례 1만5000리를 걷기도 했던 이원규 시인의 ‘다시 한 번 묻겠다’는 시 낭송을 들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4년째, 2만 5천리를 걸으며 5만 명이 넘는 가슴에 꽃등을 껴놓고 있는 도법스님과 김경일 신부(생명평화결사 종교위원장)로부터 종교인 한마당 잔치를 마련하게 된 동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60억의 인구,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우주왕복선과 슈퍼컴퓨터 등 상상도 할 수 없이 발전하고 편리해진 시대,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좋은 세상은 왜 오지 않는 것일까?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한 세상은 왜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정의와 평화의 꿈은 왜 꿈으로만 그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순례를 시작해서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그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뿐인 내 생명의 삶, 평화로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진정한 물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나 자신을 찾고,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원하거든 내가 먼저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살라는 생명평화결사의 구호를 사는 삶이 되길 희망합니다.” (도법 스님)

▲도법 스님, 김경일 성공회 신부, 송영섭 목사


'지킴의 평화'가 아니라 '나눔의 평화'를...

중요무형문화재 50호 범패 전수자, 전주 전통술 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다음 선생. 9월 15-18일까지 영국 탬즈 페스티벌에서 바라춤 공연을 했고, 대영박물관 역사상 전시가 아닌 최초의 옥외 공연에서 ‘추석’이라는 주제로 밀랍매화를 전시해서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왔다.

포은 정몽주 선생님이 전주 남고산성에 고려 멸망을 안타까워하며 쓴 칠언팔구의 시, 석벽제영. 날지 못한 꿈인 부재는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산사, 보름달빛 같은 빔 프로젝트가 연출하는 매화꽃 그림자와 영상 위에서 하얀 나비처럼 너울거리는 바라춤을 연출했다. 겨울의 지조인 매화, 우국충정의 석벽제영 시와 바라춤이 연출하는 환상의 무대였다. 대영박물관에서의 감동이 산사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1부의 마지막 순서. 동양의 하와이 아름다운 제주도, 태풍 나비가 쓸고 간 폐허는 무분별한 개발이 부른 인재였다. 생명과 평화의 경시가 부메랑처럼 재앙으로 들이닥친 제주도에서 달려온 송영섭 목사.

"'지킴의 평화'가 아니라 '나눔의 평화'를, '뺏고 빼앗는 평화'가 아닌 '주고 또 주고 마침내 목숨까지 내어주는 평화'. 강물을 팔아 생수를 사고, 하늘을 팔아 빌딩을 사고, 곡식과 들판을 팔아 비행장을 사고, 펄떡이는 물고기와 대양을 헤엄치는 돌고래를 팔아 잠수함과 항공모함을 사려는 어리석음에서 돌아서게 하옵소서."

미래 세대의 희망을 팔아서 전쟁기지를 만들 수 없다는, 항공모함까지 들어올 수 있는 기지 건설은 서해안을 대중국 전초기지화하려는 미국의 속내를 반영하고 있다는 성직자의 고발은 정의의 예언자가 울부짖는 시편이었다.

▲2부 종교인 평화선언문 마련을 위한 종교인 평화토론회


밤 10시, 종교인 평화선언문 마련을 위한 종교인 평화 토론회 2부가 이어졌다. 자기 고백과 성찰이 포함된 선언문, 기득권의 이익에 따라 진리가 왜곡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정도를 제시하는 선언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띤 토론은 자정이 되어서야 소위원회를 꾸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종교인 한마당 잔치는 불교와 원불교, 천주교와 개신교와 천도교의 5개 종단의 성직자들과 여러 출연자들과 청중들 150여명이 함께 연출한 무대였다.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맑은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마음껏 발산하고 영혼 깊은 곳에 지핀 꺼질 수 없는 혼불이었다.


-최종수 신부
-생명평화결사 종교인 대회 사회를 맡았습니다.
-필자주...이 글은 오마이뉴스 10월 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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