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아래글은 2007년 9월 29일 부터 10월 5일까지 진행된 올해로 11주년을 맞는 한일 노동자 교류 활동에 참여한 활동가의 글입니다.

해외로 나간 적이 없는 나는 국제선을 처음타고 29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멀미의 고통을 겪었다. 힘들게 도착한 일본은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언어적 장벽으로 6박 7일 동안 일본의 노동운동과 한국의 노동운동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서술 할수는 없지만, 비교적 느낌으로도 알수 있는 노동운동의 분위기에 대해 쓰려고 한다.

처음 참가한 커뮤니티 유니언대회에서 한국 방문단에서 준비한 어설픈 율동으로 신고식을 했지만, 뜻밖의 일본 노동자들의 호응에 율동을 준비해간 한국방문단이 더 당황했었다. 일본의 집회는 대부분이 실내에서 이루어지고, 또한 문화공연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 했을때 옥외집회가 한번 있었는데 공원 한켠을 점유하고, 또한 해가 지고 난후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분명 한국에서와는 다른 집회문화였다. 일본의 분위기는 개인주의적이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밥을 먹을때도 한국에서는 서로의 음식에 침범이 가능하지만, 일본에서는 개개인의 음식에 절대 손을 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집회문화가 점잖은(?) 것도 이러한 일본의 문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차이로 받아들여지기 보단 노동자들의 당당해야 할 요구가 왠지 자신감 없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일본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자본주의가 공공영역까지 상당히 진행된 일본은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서 시위를 한다는것 조차 어렵고 한국과 같이 시위대가 전투경찰들과 대치하는 일도 없다. 그만큼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현재 한국에서는 상상 할수 없을 정도라 한다.

노동조합 건물에 대한 압수수색도 다반사다. 심지어는 일을 늦게 끝내고 사무실에서 숙직을 하다가도 경찰에 끌려가 검문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심한데도 노동조합의 깃발은 모두 붉은 색이라는게 의아했다. 한국에서는 레드컴플렉스 때문에 붉은색의 깃발을 내걸고 집회에 참가하는 노동조합을 보는게 힘들지만, 일본에서는 붉은 깃발은 노동자의 피 라는 의미에서 노동조합 깃발에 붉은색을 사용하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그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레드컴플렉스는 한국의 특수한 경우임에 불과하지 않았다.

비록 한국의 노동운동보다 전투적이지는 못하지만, 몇층으로 된 한 건물이 노동조합의 건물이고 많은 문서꾸러미가 쌓여져 있어도 정리정돈 잘된 사무실 그리고 수많은 상근자들....모두가 수십년간 쌓아온 노력들 일것이다.

일본에는 운동을 30년 이상씩 해온 노령의 활동가들이 많은데, 그렇다고 젊은 활동가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의 연령층의 폭이 한국보다 넓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위계질서라는 것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토론회에 참가한 사람들도 활동경력이 몇십년 된 활동가부터 몇 달되지 않은 조합원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명료하게 자기의견을 말했는데, 한국에서와 같이 대중 속에선 강한 확신에 차있지만 개인 일때 자기의 주장이 약한 모습들과는 다름을 느꼈다.

일본 방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평생을 운동하며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모습이었다. 난 과연 저 나이 들때까지 운동하며 살수 있을까?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그들처럼 새로움과 교류하며 배우는 자세로 살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운동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은 자신감 보다 실력보다 끈질긴 놈이 승리한다 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 살아보지 않은 나로써도 어떤 일에 끈질기게 매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운동을 하는 때에 세상이 바뀌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지치는 시기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을 하면서 지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한 방법들도 시간이 지나면 바닥이 나게 마련인데, 운동을 삶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일본의 나이든 활동가들에게는 운동이 뭐 그리 대단한것, 자만할 것도 없었다.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와 연대 이상 이하도 아닌 겸손과 깊이있는 모습은 앞으로의 운동을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그저 여유롭게만 보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