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작은 자매의 집'은 정신지체 아이들의 보금자리이다. 오늘(24일)은 작은 자매의 집을 설립한 문정현 신부(70)가 은퇴미사를 끝으로 자매의 집을 떠나는 날이다. 오전 8시 전주에서 서양란 화분 하나 싣고 출발했다. 아침햇살에도 녹지 않는 서리가 들판을 덮고 있어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오전 9시, 은퇴미사치고는 이른 시간이다. 문 신부는 애초 은퇴미사를 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지인들이 미사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이날 자매의 집 식구들과 드리는 미사에는 문 신부의 동지들과 지인들도 함께 했다. 특히 멀리 안동과 의정부에서까지 온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20여 명이 자리를 같이 했다.

문 신부는 조작된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시신을 사수하다가 무릎 연골이 파열되었다.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도 없이 제단에 오른 문 신부, '성부와 성자와…' 떨리는 목소리는 이내 말을 잇지 못했다. 42년 사제생활의 반인 21년을 작은 자매의 집 아이들과 함께 살지 않았던가.

집에서 키우던 꽃 한 송이 피고 진자리도 허전한데, 손자처럼 보살펴온 아이들이 아닌가. 모자란 데가 많아서 더 안쓰러운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아이들로 인해 웃고 행복했던 날들, 사서 한 고생 또한 얼마나 많았겠는가.

신부님의 은퇴미사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천사의 눈물, 아이들도 할아버지 신부도 헤어짐이 아프다

▲이별을 모르는듯 아이는 웃고 이별이 아픈 할아버지 신부는 운다.


"4명의 아이들을 먼저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이별이 무언지 잘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자주 말을 잇지 못한다. 사랑한 만큼 눈물도 많은 것일까.

"은퇴미사를 한다고 하니까 많은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부분의 지인들이 '은퇴를 해도 작은 자매의 집에 계시는 거죠'라고 말하더군요.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이 순리죠. 몇 달간 우리 아이들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떠나가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4명의 아이들을 먼저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죽는 순간의 초롱초롱한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장애자입니다. 누구나 부족한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질이 못 돼 먹어서 장애자입니다. 저는 떠나가지만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해 오셨지만,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 보고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수녀님과 선생님들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을 간직하고 그 사랑 안에서 서로를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제단에서 내려와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앞자리 아이들의 두 볼을 쓰다듬기도 하고 꼭 안아주기도 하는 할아버지 신부의 눈가에 그렁그렁 이슬이 열렸다. 이 미사가 당신과 드리는 마지막 미사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이 더 많기에 붉은 동백꽃잎 같은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른다.

제단에서 축성된 성체를 아이들 입에 넣어준다.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어미 새의 사랑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보살펴 왔다. 자신의 몸을 인류 구원을 위해 바친 예수처럼 사제 삶의 반 21년을, 아이들에게 바친 희생적인 삶을 성체로 나누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도 이러했으리라.

▲어미가 먹이를 먹이듯 사랑의 성체를 먹이는 할아버지 신부

▲생활재활교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렇게 빨리 이별이 올 줄이야…"

작은 자매의 집을 대표해서 송연정 생활재활교사가 몇 번을 망설이다 떨리는 음성으로 송사를 읽어내려 갔다. 여기저기서 눈물 꽃이 피어났다. 등 돌리고 떠나는 이별도 많고 손 한 번 흔들고 헤어지는 이별은 또한 얼마나 많던가. 떠나는 사람도 손수건을 놓지 못하고 보내는 사람도 눈알이 빨갛다. 이별이 아름다워서 거룩할 뿐이다.

"언제나 늘 우리들 곁에 함께 계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이별이 올 줄 몰랐습니다. 사제관 앞의 꽃밭과 바둑이, 등교할 때면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 한바탕 웃게 하신, 버릇없이 수염을 잡아당겨도 허허허 웃으시는 환한 얼굴,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신 모습들을 신부님이 떠나셔도 저희들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신부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품었던 사랑을 저희들이 나눌 것이니까요….

신부님께서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를 믿으며 서로 신뢰하라고요. 온실 속에서 사랑 받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벌판에서 혹한을 견뎌내는 작은 들꽃이 있다는 것, 세상에 사랑 없이 태어난 것 아무 것도 없으니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도, 사랑한다는 일이 힘들고 괴로워도 마지못해 살아가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의미는 뿌리를 살찌우기 위한 대자연의 섭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셨습니다.

신부님에게 받았던 선물들을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나누겠습니다. 저희들은 기도 가운데 신부님을 기억하여 주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 편히 언제나 늘 그렇듯…. 신부님! 다녀오세요!"


▲미사 중에 송사를 한 송연정 생활재활교사가 배웅을 나온 길에서 두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비의 날개처럼 가시는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선 수녀와 교사와 직원들, 손도 시린 줄 모르고 서서 이별을 기다리는 작은 천사 아이들. 하늘도 이별의 아픔을 아는 듯 콧날이 싸할 만큼 쌀쌀하다.

신부가 교사의 손을 잡아주자, 바람 한 자락에 툭 봉오리를 터트리는 목련처럼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아이들은 못 보낸다며 붙잡을 듯이 작은 품에 흰 수염의 할아버지 신부를 끌어안고 운다. 발걸음마다 눈물 자국이 깊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다고 했던가. 멀지 않아 작은 자매의 집 마당에 목련이 하얗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새로운 젊은 신부와 환하게 웃을 것이다. 흰 수염 할아버지 신부의 사랑을 오래 오래 기억하며….

참고로 천주교 신부는 70세가 되면 은퇴를 한다. 문 신부님의 경우 은퇴를 한 후 특별한 일을 맡지 않을 거라고 한다. 떠나지 않고 작은 자매의 집에 머물러도 되는데 후배 신부를 위해 떠나시기로 했다.

▲못 보낸다는 듯이 허리를 끌어안고 우는 아이들. 할아버지 신부는 떠나지만 아이들의 영혼 속에 살아 있을 사랑을 보는 것 같다



-최종수 신부
-필자주...이 글은 1월 25일자 오마이뉴스에도 보냈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