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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북대무형문화연구소, "문화재청이 적폐 노릇을 하고 있다"

정부가 유네스코 심사기구 NGO몫 임의 교체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7.12.07 17:35

“문화연구계의 적폐가 드러난 문제입니다.”

지난 11월 27일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 관계자들이 기자들 앞에 섰다. 국내에서 무형문화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한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화재청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구자 입장에서 행정당국은 ‘갑’의 위치에 있다. 그동안 ‘을’의 위치에 있었던 연구자들이 행정당국인 문화재청의 일부 세력을 ‘적폐’라고 표현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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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 관계자들이 문화재청을 비판하고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를 결정하는 심사기구의 한국 측 후보를 문화재청이 임의적으로 바꾸면서부터다.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는 지난 10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심사기구’(이하 유네스코 심사기구) 후보로 추대되어 후보로 등록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초 문화재청은 자신들의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재재단을 후보로 임의 교체했다.

유네스코 심사기구는 세계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심의⦁선정하는 기구다. 각국의 약 50여개의 무형문화유산 후보를 1년 동안 심사하고, 선정한다. 유네스코 심사기구는 구성원 12명(기관)으로 그 중에 6명을 유네스코가 인가한 NGO에 배당하고 있다. 다시 6명의 NGO는 지역별로 나뉘며, 아⦁태 지역은 1개 기관을 배정받았다.

내년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새로운 아⦁태지역 심사기구 NGO는 한국 포함 세 나라의 NGO가 경합 중이다. 지난 12월 4일부터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제12차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번 정부간위원회는 제주도에서 진행 중이다.

무형문화연구소 측은 “유네스코의 정책 방향이 무형문화유산이 시민사회가 힘이 되어 지속발전 가능한 미래발전의 유산으로 재창조되어야 한다는 기조로 바뀌고 있다”면서 “그 일환으로 NGO 배당 심사위원을 확장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후보 바꾸는 과정도 비밀리에 진행”

국내에서 평가기구 후보 선정은 지난 8월에 시작됐다. 유네스코가 인가한 국내 NGO는 무형문화연구원, 세계무술연맹, 세계탈문화연맹, 국제무형유산도시연합, 한국문화재재단까지 5곳에 불과하다. 이 중 한국문화재재단은 문화재청 산하기관으로 ‘국내 유네스코 인가 NGO협의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연구소 측은 “재단에서 협의회 가입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NGO협의회는 8월말 무형문화연구원을 후보 기구로 선정한다. 무형문화연구원은 4개 기관 중 유일한 학술연구기관으로 38명의 박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형문화연구원은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가 NGO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무형문화연구원 정성미 박사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무형문화유산 관련 연구를 사실상 유일하게 수행하고 있다”면서 “특정 분야를 넘어서 여러 무형문화유산을 조사, 연구, 기록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까지 내놓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무형문화유산 관련 기관들과 협업을 하고, 국제적으로 알리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은 연구원이 유일하기에 선정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원은 이치피디아라는 플랫폼을 개발하여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을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치피디아에는 모두 약 7만여 무형문화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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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박사는 “평가기구로 선정이 되면 전 세계의 무형문화유산 관련 방대한 자료들도 이치피디아에 등재할 예정이었다”면서 “각국의 언어로 된 문화유산을 번역하여 시민들과 공유할 예정이었는데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심사기구를 바꾼 것을 서류 문제라고 말하면서 연구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처음에는 무형문화연구원으로 신청하고 최종 후보 등록을 무형문화연구소로 했는데, 두 기관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유네스코 인가 NGO는 무형문화연구소인데, 처음에 무형문화연구원으로 신청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를 이유로 든 문화재청은 후보를 바꾸는 과정에서 무형문화연구소 측에 알리지도 않았다. 무형문화연구소를 추대한 NGO협의회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무형문화연구소 측은 “11월 10일께 유네스코의 한 관계자로부터 문화재재단이 후보로 등록된 사실을 듣게 되었다”면서 “문화재재단이 정부의 산하기관이라 NGO로 보기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들었다”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부랴부랴 사실 확인에 나섰고, 그제서야 문화재청은 후보를 바꾼 사실을 알렸다.  

“시민사회 몫을 정부가 빼앗아”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연구원과 무형문화연구소가 다른 기관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처음 후보 의사를 밝힌 무형문화연구원은 유네스코 인가 NGO가 아니기에 문화재재단이 최종 후보로 결정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이런 문화재청의 해명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무형문화연구원은 문화재청이 설립 인가를 한 사단법인으로 정관에도 무형문화연구소의 NGO 활동을 계승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후보 등록 과정에서 유네스코 측에 연구소와 연구원 중 어느 기관으로 후보 등록을 해야 하는지 문의를 하였고, 연구소가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받아 등록했기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유네스코에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문화재청과도 별도의 논의를 진행했고 최종 후보 등록을 연구소로 마쳤다”면서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후보를 바꾼 것을 알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7일 기자들 앞 선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소 소장 등 관계자들은 서류 문제를 이유로 대며 후보를 교체한 문화재청을 대표적인 문화 적폐라고 소리 높였다.
이종구 전북대 교수는 “시민사회가 할 일을 정부가 뺏어간 것 아닌가”라면서 “박근혜 퇴진까지 부른 촛불이 요구한 적폐 청산은 바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세력들에 대한 청산을 의미한다. 평가기구에 대한 일방적 교체는 문화계의 적폐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바꿔 후보 평가기구가 된 한국문화재재단은 산하기관이다. NGO협의회 가입을 망설인 것도 민간기구라기 보다는 공공기관의 성격이 높았기 때문이다. 연구소 측은 “재단은 문화재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정부의 산하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재단이 평가기구로 선정이 되면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연구 등의 활용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연구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문가 집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문화재재단이 맡게 되면 연구소를 비롯한 NGO들은 재단의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연구소는 우려했다.

무형문화연구소 함한희(전북대 문화인류학) 회장은 “유네스코가 국가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다보니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면서 “그러나 이를 어느 정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민간 NGO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문화재재단이 선정된다면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바를 정부 스스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네스코 심사기구는 오는 8일께 최종 선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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