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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환영받지 못한 도서관 나들이

여은정( 1) 2009.08.03 11:24

종일 아이 둘과 낑낑대느니 바깥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낫지 싶어 7개월 된 작은애를 유모차 태우고 큰애랑 근처 도서관에 갔다.

유모차 끌고 오려니 도서관 오르막길이 상당히 힘들다. 더구나 도서관 앞은 계단뿐이고 유모차나 휠체어가 갈 곳이라곤 건물을 뺑 돌아 뒷문 주차장 쪽이다. 주차장에서 차가 나오면 부딪치게 생겼다.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나 장애인은 오지 말라고 건물이 말을 하는구나싶다.

뒷쪽 입구에 서서 비켜줄 생각도 안하고 얘기에 정신없는 두 남자 직원에게 “잠깐만요.” 하고는 유모차를 밀고 간신히 도서관에 들어갔다. 일반실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니 거기 있는 여직원이 무시하는 투로 “아동실은 저쪽이니 저기로 가라.”고 한다.

나는 도서대출증을 만들러 왔다 했더니, 귀찮고 퉁명스럽게 주소지는 여긴지 묻는다. 주소는 여기가 아닌데 사는 곳은 여기라 만들 수 있다 들었다고 했더니 직장인이나 학생들만 가능하고 나 같은 주부는 안 된단다. 기분이 좀 나쁘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어쩌겠나싶기도 하고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듯한 그 직원의 태도에 발걸음을 돌렸다.

땀 삐질삐질 흘리고 온 게 아까워서 아동실에 들러 책을 몇 권 뽑아 들고 아들 성겸이랑 읽었다. 깨어나 우는 호겸이를 업고 성겸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도서관에 빌리려던 심리치유서랑 육아서를 찾으러 다시 일반실로 들어갔다. 그 쌀쌀한 여직원은 없었다.

큰애는 유모차에 두고 책을 찾는데 큰 애가 나를 부른다. 되돌아와 주의를 줬지만 책을 훑어보는 내내 성겸이는 지겨웠는지 엄마하고 조그맣게 자꾸 부르고 책을 읽던 한 여자가 우릴 계속 쳐다본다.

결국 남직원이 “저는 괜찮은데 다른 분들 불편하니 좀 조용히 하래요. 엄마들은 서운하다 말하지만 이해해주세요.” 말한다. 나는 책을 덮고는 부랴부랴 나왔다.

뒷문 출입문 쪽에서 나가려고 유모차 햇빛 가리개를 덮고 있는데 공부하러 온 듯한 남자가 지나가면서 “한석봉 나오시겠네. 대단하시네.” 하며 비아냥거린다.

참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얼른 여길 나가야겠다 싶어 뒷문을 여는데 잠겼는지 안 열린다. 경비실로 가니 아저씨가 나와서 열어달라고 말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며 문을 열어준다.

애 키우는 엄마들에 대한 배려가 정말 안 되어있다고 했더니 그렇지도 않단다.

시설이 이러니 엄마들이 오고 싶어도 왔다가도 다시는 안 오지. 지역 도서관이니 주민들이 쉽게 이용하게 만들어야지. 내가 꿈꾸던 도서관은 이게 아니었는데, 다시는 안 간다.

환영받지 못한 도서관 나들이. 나도 아이들도 지쳤다.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모욕감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 날이었다.

[덧붙임]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여은정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후원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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