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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편집자 주] 지난 7일 객사앞 촛불시위에 함께 해 낭독했던 박남준 시인의 효순이 미선이 추모시를 여기에 게재한다.

지난 여름 월드컵 축구가 한창일때 두 여중생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인터넷을 뒤져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다운받아놓고 무언가 써야할텐데 뭔가 해야할텐데 하며 조바심을 내보기도 했지만 우물쭈물 거리다 한줄 쓰지 못했다.

결국 월드컵의 열기에 파묻혀 그 참사의 소식들 이내 파묻혀버렸었다. 그때 초여름이었고 아랫마을로 내려가다 피어있던 흰 접시꽃들 바라보며 갑자기 그 흰접시꽃 송이들이 미선이와 효순이로 보였다.

흰접시꽃 두 송이,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그날 유월 푸른하늘
햇살아래 눈부신 흰빛으로 피어나던 접시꽃을 보았다
그날 유월 십삽일
미군의 궤도차량에 난도질처럼 으깨어진 흰접시꽃 두송이가 있었다
살아서 세상의 작은 등불이었을 어린 꽃들이
붉은 피 흘리며 죽어 이땅의 한사람 한사람
까맣게 잊고 살던 우리들을 일깨우는구나
여기 이렇게 우리들의 손에 들린 촛불이 되어 타오르는구나

죄가 있다면 이 잘못된 조국,
자국민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짓밟으려는
못난 조국에서 태어난 것이리라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 분단된 땅을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둔 것이리라
사리사욕에 물든 이나라 정치꾼들이
역대 군사독재 정권들이 너희들을 죽였다
미국에 빌붙어 눈치만 살피는 이나라 대통령들이 너희들을 죽였다

아니다 내가 너희들을 죽였구나
힘없는 이땅이 너희들의 참혹한 죽음을 불러일으켰구나
지켜보거라 미선아 효순아
세상의 곳곳에서 저지르는 미군과 제국주의 미국의 만행을
똑똑히 지켜보아라 학살당하는 모든 민족의 고통을
기억하리라 이제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결코 너희들의 죽음 헛되지 않고 낱낱이 기억되리라
미선아 효순아
몸은 비록 죽었으나 죽지않고 우리들곁에 살아
아직은 가지 말고 두눈 꼭 부릅뜨고 일어나 보거라
피어나리라 죽음을 넘어 피어나리라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리라

멈추지 않으리라 꺼지지 않으리라
산과 들녁 이땅 우리 민족, 자주자존의 올곧은 정신이되어
다시 피어나리라 깃발이 되어 휘날리리라 흰 접시꽃 두송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 소파개정협정이 아닌 미군철수의 그날까지
분단된 조국 통일의 함성이 이땅 구석구석 메아리칠 그날까지
손을 잡고 함께 나가리라 온몸으로 달려가리라

살인미군 처벌하고 부시는 즉각 사죄하라!
살인미군 무죄판결 소파협정 개정하라!
분단조국 고착하는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 * * * *
온나라가 미선이와 효순이 두 여중생의 죽음에 들끓고 있다.

서울의 달동네 낙골교회 어린이집 철거로 인해 새로운 공부방을 마련한다고 기금마련 공연이 서울대 앞 관악문화회관에서 있었다. 그일로 서울에 갔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 날 덕수궁 대한 문 앞을 지나다 그곳에서 피켓과 플랭카드를 들고, 손에 손에 풍선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이들을 어른들을 청년들을 보았다.

양키 고홈, 퍼큐 유에스에이, 소파개정, 부시는 사과하라...

오랫만이어서였는가. 처음에는 구호를 따라하기도 손을 들어올리기도 사뭇 어색하기만했다. 한동안 그렇게 구호를 따라 외치다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 되어 빠져나왔다.

맡겨놓은 짐을 찾아서 들고 교보문고 앞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렇게 매일매일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는구나. 거기 어린 중고등학생들도 보였다. 오십대의 중년도 보였다.

키타를 치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던 사람이 말한다. 한시간도 더 넘게 이렇게 서 있었는데 여러분 힘들지요. 모두들 대답한다. 아니요 힘들지 않습니다. 거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사회자의 말이 이어진다. 앞사람의 어깨를 두드려주라고. 다시 뒤로돌아 뒷사람의 어깨를, 이번엔 옆사람의 어깨를... 한손엔 종이컵을 씌운 촛불을 들고 한손으론 서로의 등과 어깨를 다독여주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저렇게 서로의 지친 등을 다독여주는 것. 거기 작은 희망이, 따뜻한 사랑이 피어나고 번져나가는 것이다.

어찌 몇자의 글, 몇줄의 시 한편으로 두 여중생의 죽음을 다할까. 12월 7일 토요일 6시 전주객사앞에서 촛불집회를 참석하기위해 급히 몇줄의 시를 써서 객사로 나갔다. 최인규목사가 손짓을 하며 마치 알고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야 이런때 추모시 한편 낭송을 하면 좋을텐데 말한다. 아 그래요 나 시써왔어요. 급히 쓴것이라서 좀 조악하기는 하지만요...

최목사의 제안이 집행부에 받아들여졌고 객사에서 코아앞으로 이동을 한후 오랫만에 정말이지 80년대이후 오랫만에 집회장의 마이크를 잡았다. 어린 중고등학생들의 눈망울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그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시낭송을 했다. 그자리에 모인 사람들 비록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14일엔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를 메우리라 광장을 메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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